24년만에 간첩혐의 벗은 서창덕씨

“가슴에 맺힌 한(限)은 풀렸지만 잃어버린 청춘은 누가 돌려줍니까”

전북 군산시 옥도면 개야도 출신의 납북어민이었던 서창덕(62.군산시 중동)씨가 간첩 혐의를 벗고 24년 만에 비로소 ‘완전한 자유인’이 됐다.

전주지법 군산지원이 31일 이른바 ‘서창덕 간첩사건’에 대해 “서씨가 동료 선원과 함께 북한 경비정에 피랍돼 반국가단체의 지령을 받고 귀환해 국가기밀을 탐지하고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했다는 공소사실은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

가난 때문에 14살 때부터 뱃일을 시작한 서씨는 1967년 5월 군산에서 조기잡이 배를 타고 동료 선원 7명과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는 바람에 북한 경비정에 피랍됐다가 124일 만에 풀려났다.

그는 귀환 직후 반공법(1968년)과 국가보안법(1969년) 위반 등으로 두 차례 처벌을 받았으나 보안대는 17년이 지난 1984년 다시 간첩 누명을 씌워 서씨를 구속했다.

보안대는 간첩교육과 특수지령을 받고 귀환한 뒤 찬양고무와 국가기밀을 탐지했다는 혐의로 서씨를 구속했으며 서씨는 징역 10년에 자격정지 10년의 중형을 받고 복역하다 7년 만에 석방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이 사건을 ‘납북어부 서창덕 간첩조작의혹 사건’으로 규정하고 무죄 취지의 재심을 권고했다.

이날 무죄를 선고받은 서씨는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보안대가 불법으로 수사했으며 이를 은폐하기 위해 안기부 수사관 명의로 서류를 작성하는 등 (나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허위 조작한 사건”이라고 분개했다.

그는 “보안대 수사관들이 가족과 변호인의 접견을 차단한 채 영장도 없이 33일 동안이나 불법 구금상태에서 몽둥이로 때리거나 잠을 재우지 않는 등의 가혹행위를 했다”면서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 허위로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서씨는 “어렸을 적부터 뱃일을 시작해 겨우 이름만 쓸 정도로 한글도 제대로 모르는 데 복잡한 암호를 해독하고 국가기밀을 탐지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서 “고문 후유증으로 손발이 저리고 간경화가 심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공소장에는 “간첩활동이 잘되고 있으면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자금이 필요하면 ‘남진의 가슴 아프게’를, 접선이 필요하면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를 라디오 가요 프로그램에 희망곡으로 신청하라는 내용까지 있었다”고 소개했다.

장애인 및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돼 매월 50만 원의 지원비로 생계를 꾸리는 서씨는 “‘간첩 아버지를 둔 적이 없다’며 20여 년 전부터 연락을 끊은 아들과 형제(4남3녀)들을 한 번만이라도 만날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는 “내 청춘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식과 형제의 인연을 억지로 끊게 한 국가가 원망스러울 뿐”이라며 재판장을 총총히 빠져나갔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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