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베이징 합의, 뚜껑 열면 터지는 ‘폭탄상자’

13일 베이징에서 합의된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에 대해 우리 정부는 낙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반면 상당수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는 뚜껑만 열면 바로 터질 수 있는 ‘폭탄상자’와 같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1991년 ‘한반도 비핵화선언’,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9·19 공동성명 합의’ 등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수차례 합의를 맺었지만 지키지 않았다. 91년 최초 한반도 비핵화를 약속한 지 16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됐다.

당장 합의문에는 북한이 이미 확보한 핵무기와 플루토늄, 고농축 우라늄 처리문제, 핵확산금지조약 복귀, IAEA 사찰, 핵시설 불능화(disabling) 구체조치 등에 관한 언급이 아예 없다. ‘2·13 합의’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놓고 격론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 합의문 1조 = “참가국들은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단계적으로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해 상호 조율된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했다”는 대목을 놓고 ‘선(先) 행동’ 문제가 논란이 될 수 있다. 당장 60일 내 중유 5만톤 제공이 먼저냐, 핵시설 폐쇄·봉인이 먼저냐도 논란이 될 수 있다. 북한은 5만톤이 도착해서 접수 후 폐쇄(북은 ‘임시 가동정지’ 주장)한다고 요구할 수 있다.

북한은 ‘9·19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조속한 시일 안에 NPT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안전조치에 복귀’하면 ‘적절한 시기에 경수로 제공문제에 대해 논의한다’고 약속한 것을 놓고 ‘선(先) 경수로 제공’이란 엉뚱한 해석을 들고 나와 6자회담을 교착시켰다.

◆ 2조 1항 = “궁극적인 ‘포기’를 목적으로 재처리 시설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을 ‘폐쇄·봉인’하고”라는 문구에서는 일단 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동결’(freeze)에서 ‘폐쇄’(shutdown)와 ‘봉인’(seal) 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일부 진전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IAEA와의 협의에 따라 모든 필요한 감시 및 검증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IAEA 요원을 복귀토록 초청한다”는 표현에 대해선 그 해석을 놓고 논란이 일 수 있다. 우선 합의문에는 ‘감시’(monitoring)라고 표현하고 있어 IAEA가 북한에서 강제력이 있는 ‘사찰’(inspection)을 할 수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감시’ 수준인지 명확하지 않다. IAEA 방북도 ‘권한 발동’의 의미가 아닌 ‘초청’(invite)이라고 명기했다.

◆ 2조 2항 = “9·19 공동성명에 따라 포기하도록 돼있는 사용 후 연료봉으로부터 추출된 플루토늄을 포함”이란 표현부분에서는 2002년 2차 북핵 위기의 빌미가 된 ‘고농축우라늄’(HEU)이 빠져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은 당연히 HEU도 신고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북한은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문제는 “9·19 공동성명에 명기된 모든 핵프로그램의 목록을 여타 참가국들과 협의한다”고 했는데 9·19 성명 어디에도 북한 핵프로그램에 대한 구체적 목록이 명기돼 있지 않다는 것. 북한은 제네바합의 뿐 아니라 이번 2·13 합의 당시에도 HEU 문제를 명기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강하게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향후 이 문제를 둘러싼 공방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에 대해 지난 94년 1차 북핵위기 당시 미 클린턴 행정부의 국방정책을 지휘했던 윌리엄 페리 전 국방부 장관은 “HEU 문제는 (6자회담) 협상 결렬 요소로 등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HEU 문제를 성실히 신고하지 않는다면 6자회담이 아닌 새로운 국면을 초래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 2조 3항 =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으로부터 해제하기 위한 과정을 개시하고, 북한에 대한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을 종료시키기 위한 과정을 진전시켜 나간다”는 표현은 김정일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특히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를 위해선 미 의회의 승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은 ‘북미관계 정상화 워킹그룹’에서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나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 해제를 대북 적대시정책의 변화를 가늠하는 척도라며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미국은 북한의 퇴로를 막고 핵포기의 전략적 결단을 촉구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를 시도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으나 그 가능성은 아직 크지 않다. 합의문에서도 “과정을 개시” 즉 논의를 시작한다는 정도로 표현하고 있다.

◆ 2조 4항 = “북한과 일본은 ‘불행한 과거’와 ‘미결 관심사’의 해결을 기반으로 양자대화를 개시한다”며 일북 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불행한 과거’는 과거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를 가리킨다. ‘미결 관심사’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자 문제다.

일본은 이번 6자회담에서도 자국민 납치문제 해결 없이 그 어떠한 대북 지원에 동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러한 입장에 대해 북한은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의 사과가 먼저라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일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워킹그룹에 대해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다.

◆ 2조 5항 = “참가국은 9·19 공동성명의 1조와 3조를 상기하면서 북한에 대한 경제·에너지·인도적 지원에 협력”이란 표현에서 공동성명 1조와 3조가 눈에 띈다. 먼저 1조에는 “NPT와 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공약”한다고 적고 있다. 따라서 이 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북한의 NPT 복귀나 IAEA 안전조치 복귀를 촉구할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 워킹그룹에서 어떻게 진전시키느냐가 관건이다.

3조에는 “대한민국은 북한에 200만kW의 전력공급에 관한 2005년 7월 제안을 재확인했다”고 명기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경제 및 에너지 협력’ 워킹그룹에서 북한은 남한에 정동영 통일부 장관 시절에 북한에 제안한 200만kW 전력 지원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북 전력 지원을 위한 발전소 건설에만 1조5000억~1조7000억원이 필요하고, 약 10년간 운영한다고 했을 때 운영비에만 10조 원가량이 소요된다고 통일부는 판단하고 있어 우리 정부에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 3조 = “모든 실무그룹 회의를 향후 30일 이내에 개최”하게 됨에 따라 5개의 분야별 워킹그룹이 구성될 예정이다. 2·13 합의의 특징이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서로 주고받게 돼 있다고는 하지만 구체적 로드맵은 워킹그룹에 일임한 형국이어서 협상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북한이 60일 이내에 북한이 초기조치를 이행할 경우 상응조치로 중유 5만t을 한국이 제공하게 된다. 이후 다음 단계인 핵프로그램에 대한 북한의 불능화 조치 이후 95만t에 대한 지원을 어떻게 할지 결정되지 않았다. 북한의 조치에 따라 95만t도 각각 나눠서 제공할지 아니면 모든 조치를 취한 이후 중유 95만t 상당의 경제‧에너지 지원을 한꺼번에 할지에 대한 해석도 분분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경제 및 에너지 협력’ 워킹그룹에서는 이번 합의문에 거론되지 않은 경수로 문제가 언제든 돌출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핵폐기 단계로 넘어가기 전 경수로 지원을 들고 나와 경수로 완공시기와 북핵 폐기를 연계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될 경우 북핵 폐기는 요원해진다. ‘한반도 비핵화’ 워킹그룹에서 ‘비핵화’라는 표현을 놓고 미북간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이 연장선에서 6자회담을 ‘핵군축회담’으로 전환시키자고 할 가능성이 있다.

◆ 4조 = “모든 핵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신고와 흑연감속로 및 재처리시설을 포함하는 모든 현존하는 핵시설의 ‘불능화’를 포함하는 다음단계”라는 표현에서 “모든 핵프로그램”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불명확하다. 9·19 공동성명에도 이에 대한 명기된 적이 없어 지난 94년 북한이 IAEA에 신고했던 13건의 핵시설만 신고할 경우 6자회담 진전은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은 북한이 이미 8~10기 정도의 핵무기를 제조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고, 추출된 플루토늄도 40~50kg 정도인 것으로 보고 있다. 또 HEU의 존재도 확신하고 있어 이러한 부분에 대한 신고가 미진할 경우 2·13 합의문은 종이쪽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가 가장 큰 성과라고 주장하는 “불능화”에 대한 표현의 해석도 엇갈리고 있다. 이번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북한은 이미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불능화’를 ‘임시 가동정지’로 바꿔 보도하고 있다. 만약 북한의 초기단계 이행조치가 성공리에 마무리된다고 하더라도 다음단계인 ‘불능화’ 조치에 대한 해석을 놓고 미북간 충돌이 예상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