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합의’ 과대평가…核폐기 진입 못해”

북핵 ‘2·13 합의’ 이후 영변 핵시설에 대한 폐쇄·봉인과 불능화 단계로의 진입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북핵 폐기 단계로의 진입에는 한계가 노출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평가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난해 말까지로 정해진 핵프로그램 신고 기한을 넘긴 것과 관련, 북핵 문제가 또다시 장기적인 교착 상태가 빠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미 효용 가치를 상실한 영변 핵시설을 불능화한 것만으로 북한의 핵 폐기 의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지난해 2·13 합의가 발표됐을 당시 언론의 과대평가와 당국자들의 장미빛 전망이 더해져 현실적인 한계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또한 올해에는 남한의 새 정부가 출범하고, 미국에서도 대선 레이스가 펼쳐짐에 따라 북한이 한미 양국의 정세를 관망하며 시간 끌기 작전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도 제기됐다.

2·13 합의가 나온 지 13일로 꼭 1년이 되는 지금, 국내의 북한 전문가 6인에게 2·13 합의에 대한 평가와 향후 북핵 폐기 전망을 들어봤다.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군비통제연구실장

“2·13 합의와 10·3합의는 2007년을 장식한 주요 성과 중 하나다. 그러나 당초 안겨줬던 기대와 달리 지난 1년간의 실적은 이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합의 자체가 무너졌다고 볼 수는 없다. 2008년에도 합의 사항들은 유효할 것이기 때문에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북한이 2008년에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다양하다고 볼 수 있다. ▲핵을 포기하고 이에 따른 반대급부를 얻는 완전한 타결 ▲북핵 문제를 완전히 원점으로 돌리는 정면 돌파 ▲현상 유지 세 가지 전략이 있다고 봤을 때 올해에는 현상유지 쪽으로 나가지 않을까 예상한다.

북한은 한국의 새 정부와 정책적으로 조율할 시간이 필요하다. 부시 행정부도 임기를 1년밖에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적 입지가 약화됐기 때문에 북한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때문에 2·13합의와 10·3 합의의 시행문제로 시간을 끌면서 올 한 해를 다 보낼 것이다. 물론 ‘농축우라늄프로그램(UEP)’과 ‘플루토늄’ 추출량 신고와 같은 본격적인 핵 폐기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마디로 미국이 북한의 전략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년 동안 북한에게 계속 끌려 다닌 셈이다. 애초에 2·13합의는 우리 나름의 희망에 기초한 것이었다. 당시 언론에서도 2·13합의를 과대평가했고, 당국자들도 자신감을 표시했지만 실질적인 진전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불능화가 실제로 대단한 조치는 아니다.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는 고철 원자로를 폐쇄 한 것에 불과하다.

북한이 당장 협상을 깨진 않진 않겠지만 미국이 바라는 만큼의 과감한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시 행정부의 남은 임기 1년 동안은 그냥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지금 시점에서는 하나의 조치나 협상에 대해 일희일비해서는 안 되고 북한이 핵개발과 관련해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재평가해봐야 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

“2·13합의의 이행 과정에서 북핵 신고가 완료되지 않았고 미국의 대북테러지원국 삭제도 이뤄지지 않았지만 북핵 시설이 불능화 되는 등 상당히 의미 있는 진전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제네바합의’ 당시에는 동결에 이은 폐기 문제는 논의조차 되지 못했는데 지금은 북미 간에 핵 폐기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 줄만한 성과다. 그러나 완전한 비핵화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북은 상대방이 원하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핵신고와 관련한 동력을 상실한 상태다. 핵문제의 진전을 위해서는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방북과 같은 새로운 동력이 필요하다.

오는 26일 평양에서 열리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도 북핵문제 진척에 있어 좋은 분위기를 내오는데 효과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미북간 협상 진척에 있어서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2·13합의가 최근 신고문제의 문턱에 걸리며 소강국면에 빠져있지만 완전히 결렬됐다거나 희망이 없다고 보기는 이르다. 성과라고 한다면 불능화와 관련해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는 것이다. 핵무기가 늘어나는 것을 막고 플루토늄 추출을 어렵게 했다는 점에서 급한 불을 껐다고 볼 수 있다.

2008년에는 남측의 정권교체로 인해 동력이 떨어지긴 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임기 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을 북한도 알고 있기 때문에 쟁점 부문에서 합의가 이뤄지면 진전을 이룰 수 있다.

뉴욕필의 평양 공연을 통해 분위기를 잘 조성하면 4월 남한의 총선 이후 또 한 번의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인영 서울대 명예교수

“2·13합의가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 느리게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려는 성의를 보이고 있지만 북한은 표면적으로 거부만 하지 않을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이른바 파키스탄 모델을 따라가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미국에게 현재의 핵은 건드리지 말고 타결하자고 요구하는 것이다. 북한은 또한 미국의 국내외(이라크, 대선) 상황을 주시하며 지연전술을 쓰고 있다.

현재 북한은 핵프로그램 신고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 북핵 해결이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화근이 될 수 있는 신고 목록을 대충 넘어갈 수는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하고 투명한 신고를 요구할 것이다.”

전봉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핵프로그램 신고가 약속한 시한 내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북한 핵시설이 폐쇄되고 불능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굉장히 긍정적인 진전이다. 지난 17년간 북한의 핵협상 과정을 볼 때 이런 정도는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오차범위가 아니었나 싶다.

신고 조치가 조속한 시일 안에 끝나고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대북 조치가 이루어지면 향후 북핵 폐기 과정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과도기적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2008년 상반기에는 본격적인 북핵 폐기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

현재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 문제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데 현재까지 70~80%까지의 신고가 이루어졌다면 우선은 거기에 따른 보상을 해주고 나머지 미진한 부분에 대한 해소는 추가적으로 6자회담을 개최해 해결해가는 것도 방법 중 하나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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