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합의 ‘核시설 폐쇄’ 약속시한 넘길듯

2.13 합의에 따른 영변 원자로 폐쇄 시한(14일)이 9일 남았지만 북한이 초기조치 합의를 이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6자회담 당사국인 한중 양국 정부에서 직접 거론되고 있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우다웨이(사진) 외교부 부부장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의장국으로서)가능한 60일 시한에 얽매이지 않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북한 모두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양측의 각자 해결책에는 격차가 있다”고 전하는 한편, 마카오의 법률적 문제도 북한 자금의 조기 이체에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인도를 방분한 송민순 외교부장관은 “BDA 문제가 기본적으로는 (시한 내에) 처리될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안 될 수도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당국자 입에서 처음으로 BDA 북한자금 송금문제에 난관에 부닥친 것을 인정한 발언이다.

북한은 2.13 합의에서 60일 이내에 ‘영변 핵시설 폐쇄’와 ‘모든 핵프로그램의 목록을 여타 참가국들과 협의’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5일 현재까지 이행된 것이라고는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 6자회담과 5개 워킹그룹 가동이 전부다.

합의에서 ‘IAEA와의 합의에 따라 모든 필요한 감시 및 검증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요원을 복귀토록 초청한다’는 약속에 따라 지난달 13일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이 방북해 5개의 핵시설을 폐쇄·봉인하기로 결정했다. IAEA 사무총장 방북 때까지만도 핵 폐기 프로세스가 급물살을 타는 듯 했으나 지금은 잠시 주춤한 상태다.

2.13 합의가 이행되지 않는 이유는 북한이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자금 송금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초기조치 이행에 돌입할 수 없다며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6자회담에서 BDA에 동결됐던 북한자금 2500만 달러를 모두 풀어주기로 했으나, 북한자금을 송금하려던 중국은행(BOC)에서 계좌이체를 거부해 지금까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BDA 북한자금 송금문제가 미국 재무부의 BDA에 대한 ‘돈세탁 기관’으로 지정된 것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 이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도 2500만달러를 현금으로는 찾을 수 없다며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 국무부의 톰 케이시 부대변인은 4일 ‘2.13 합의 60일 시한’이 며칠 앞으로 다가온 데 대해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면서 “모든 당사국들이 이행사항을 마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BDA 북한 자금 전달이 늦어지고 있는 데 대해 “이 문제는 궁극적으로 마카오와 중국, 북한이 풀어야 할 문제”라면서 “우리는 그 돈을 통제하고 있지도 않고, 그 돈을 통제할 권한도 없다”고 말했다.

결국, 표면적으로 보면 BDA로부터 북한의 불법자금을 받아들일 은행이 나서지 않을 경우 2.13 합의 로드맵은 전체적으로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미군 유해송환문제 논의를 위해 오는 8∼11일 북한을 방문할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를 통해 김정일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에 제기되고 있다.

이와 함께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4일(현지시각)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며 “어떠한 장애물도 이겨낼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는 한국과 중국이 BDA 해결과 북한의 초기단계 이행조치에 어두운 전망을 내놓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는 “언제나 예측불허의 장애물에 부딪히게 마련”이라며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일본 6자회담 수석대표인 사사에 겐이치로 외무성 아시아 국장은 “북한의 시한 준수가 어려울 것 같다”고 전망했다. 사사에 국장은 “그렇다고 우리가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면서 “(초기조치 이행이) 연기된다해도 중요한 것은 2·13 합의 내용을 실천하는 것이며, 이는 여전히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희망섞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BDA 파장과 북한의 예측 불허의 행동이 2·13 합의의 모멘텀을 유지하는 데 먹구름을 드리울 꺼라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파행국면이 길어질 경우 합의문이 가진 구속력을 상실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