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괴벨스, 김정일의 ‘선전통치’ 심리학

김정일의 방중 후 개혁개방 노선에 입각한 정책이 나올 것이라는 정부의 기대감이 높다. 물론 북한의 개혁노선을 촉구하는 중국을 고려해 경제특구 지정 등의 정책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정운영 전반을 개혁개방으로 이동시키는 신(新)노선의 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다.

이번 김정일 극비 중국방문, 대대적인 개혁개방도시 시찰, 귀국 후 북-중 친선 집중보도는 김정일이 직접 연출과 주연을 한 선전 드라마로 볼 수 있다. 중국과 유대를 강화하고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켜 개혁개방 의지를 과시한 것이다. 김정일 특유의 비밀주의와 허 찌르기, 깜짝 놀라게 해 효과를 두 배로 높이는 등 그의 선전술이 충분히 동원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일이 개혁개방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그의 통치스타일과도 관계가 깊다. 그는 국가운영은 포기하면서 오직 자신의 심복과 독재기관을 유지하는 데만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김정일의 통치술은 공포와 용인술, 이해타산 능력에 근거하고 있다.

인민들에게는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겁을 주고, 권력 핵심기관 간부들이 김정일의 말과 행동에만 집중하도록 하며, 권력유지를 위한 이해타산에 밝아 철두철미하게 통치하는 것이다. 이런 통치스타일을 유지해온 김정일이 경제건설을 지휘하고 개방과정에서 나오는 인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할 수 있다고 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가정이다. 김정일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사코 개혁개방을 거부하고 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김정일은 먼 앞날을 내다보는 능력은 없지만 목전의 이해관계를 타산하는 능력은 뛰어나며 대화에서 상대방의 약점을 포착하여 공격하는 능력도 강하다”고 말했다. 김정일은 정치철학이나 마르크스의 유물변증법에도 아무런 흥미를 갖지 못했다. 그는 오직 정치적 전략전술 문제에 대해서만 큰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이를 테면 테러나 스파이 공작 같은 문제에는 각별한 흥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김정일이 시대를 보는 안목도, 인민에 대한 애정도 없기 때문에 지도자로서는 낙제점이다. 그러나 시류를 파악하고 독재를 하는 데는 비상한 능력이 있어 국가 파산상태에도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김정일 독재유지의 힘은 조직장악능력과 선전능력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TV나 라디오에서는 김정일의 육성을 전혀 내보내지 않는다. 김정일을 찍을 때는 카메라를 상향식으로 비추는 경우가 많다. 신비화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신비하고 베일에 쌓인 인물로 포장해왔다. 김정일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박수를 치며 열광하는 인민군대의 모습은 이러한 선전기법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선전술 통해 인민의 지도자로 이미지 메이킹

김정일은 김일성 우상화를 통해 자신만이 유일한 계승자라는 점을 내세웠다. 김정일은 북한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 모든 영역을 김부자 우상화로 일색화 해버렸다. 그리고 자신은 21세기의 태양, 탁월하고 영명한 지도자, 불세출의 천재라는 수식 형용사를 사용하면서 인민위에 군림했다.

김정일은 선전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대중연설을 하지 않는다. 같은 독재자이지만 이 점에서 히틀러와 크게 차이가 난다. 그를 드러낼수록 그는 인간에 불과하며, 살찌고 배가 나왔다는 인상밖에 주지 못할 것이다. 김정일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김정일이 늘 점퍼를 입는 것도 자기 연출의 일환이다. 점퍼는 ‘혁명하던’ 시대 사람들의 옷이다. 그리고 인민복이라는 느낌도 준다. 그가 인민복을 입는 말 못할 사정은 바로 짧은 신장과 튀어나온 배 때문이다. 이를 위장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정보기관 출신 탈북자의 전언이다.

늘 베일에 싸여 연막 전술을 펼치던 김정일이 대외 언론에 가장 많은 모습을 보여준 계기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었다. 당시 김정일은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을 영접하기 위해 직접 공항에 나와 비행기 바로 앞에서 손을 맞잡음으로써 파격적인 행보의 첫 장을 열었다. 김대중의 감격이 어느 정도이었을지는 쉽게 알 수 있다. 김정일은 준비된 행사와 멘트를 잘 소화해냈고 임기응변의 유머까지 과시했다. 그의 기획과 연출능력이 어느 수준인가를 잘 보여준 정상회담 일정이었다.

북한 당국에서는 김정일의 통치스타일을 선전하면서 ‘광폭정치’와 ‘인덕정치’를 강조한다. ‘광폭(廣幅)’은 통이 크고 대담하다는 이야기이고, 인덕(人德)’은 어질고 아량이 넓다는 소리다. 이것은 김정일이 실제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그런 인물로 선전을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평양 서성구역 연못동에 있는 ‘3대혁명 전시관’에는 “조선이 없는 지구는 필요 없습니다. 김정일’이라는 글귀가 있다. 이를 보고 청소년들은 김정일을 민족의 지도자로서 통과 기질이 크신 분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선물공세로 ‘자상한 지도자’ 연출

김정일은 인덕정치 일환으로 선물공세를 한다. 자신의 체제를 지켜주는 군 장성에게는 특히 유별나다. 북한군에 별을 단 장성이 넘쳐난다. 김정일은 선물공세를 통해 ‘통 크고 덕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정적(政敵)에 대해서는 인덕정치가 적용되지 않는다. 김정일은 이해타산에 밝게 움직이기 때문에 인정에 이끌려 권력 유지에 누가 되는 일을 방치하지 않는다. 김정일이 개혁개방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측근 중심의 밀실정치를 한다. 그래서 마피아 정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김정일은 간부회의 때도 자기가 말을 많이 하고 참석자들은 자기 말에 찬성하도록 하다. 정책결정 시 간부들의 의견을 존중한 김일성과 대조된다. 김정일은 단독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고, 자기의 정책이나 노선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가 공식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무시하는 이유는 그가 소수의 측근들을 통한 정치를 해왔기 때문이다. 대부분 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및 선전선동부 책임일꾼들과의 담화형식이며 자신의 의향을 하달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김정일은 소수의 엘리트 그룹에 의존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밀실정치’를 선호한다. 김정일이 실권을 장악한 이후 공식적인 당 의결절차가 모두 무시된 것도 이것 때문이다.

김정일이 자신의 측근을 관리하는 데 비밀파티를 주로 활용했다. 이 파티에 참석하는 사람들 중 비교적 ‘부부장 급’이 많은 이유도 김정일이 1970년대 당 내 주요 자리를 자기 사람들로 채우기 위해 이 파티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김정일이 계속 ‘관리’해야 할 대상들도 비밀파티에 참석하도록 만든다. 현재 김정일이 직접 관리하는 북한의 주요 인물들은 대략 200명 정도로 관측되고 있다.

김정일은 고위간부들을 대상으로 ‘상’보다는 ‘벌’을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다. 그는 아예 쓸모가 없다고 판단되는 간부들은 ‘출당’시켜 정치적으로 매장시켜 버린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혁명화 교육’을 시키면서 재평가 기회를 갖는다. 일부분은 완전히 숙청하고 나머지는 생명을 구해주는 은혜를 베풀어 자기 사람을 만든다. 곤경에 처했다가 김정일에 의해 구제된 사람은 모두 김정일의 심복이 된다.

결국은 역사의 심판대로 끌려 나올 것

김정일은 간부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루 아침에 지방의 한직으로 보내 정신개조 기회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들의 동태를 감시해 평가한다. 평가기준은 ‘충성심’이다. 이 때문에 숙청된 간부라 할지라도 김정일이 언젠가 불러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끝까지 충성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공동화장실을 청소하고 복권된 이양숙 경공업위원회 위원장, 20년만에 군에 복귀한 최광 총참모장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도 ‘김정일은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이한영은 “무슨 일을 잘못했으면, 솔직히 까놓고 김정일에게 잘못했다고 이실직고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웬만한 사람은 그가 쏘아보는 눈길을 받아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콤플렉스가 심한 사람일수록 자신과 비슷한 유형의 사람을 싫어한다’고 한다. 평소 거짓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고 볼 수 있다.

황 전 비서는 “김정일은 북한 사회를 마음대로 통치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쳐 있지만 북한 사회를 망치게 만든 자기 과오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으며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정일은 아직도 통치 능력만 가지고는 정치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결국 그가 믿는 그의 통치력이 결국은 그와 그의 주변사람들을 역사의 심판장으로 데려올 날도 멀지 않았다.

데일리NK 기획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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