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최근의 헌법 개정은 북한 사회 전반에 새로운 변수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데일리NK는 북한 내부 취재를 통해 당국의 제도적 선언이 실제 주민들의 삶을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 그 실태를 연속 추적해 보도합니다. |

북한의 한 시장에서 장사하는 주민 A씨는 장사를 시작하면서 시장관리소에 등록하고 등록증과 매대증을 발급받았다. 처음 장사 자리를 얻는 데 300달러가량을 냈고, 이후에도 매일 시장관리세로 북한 돈 5000원, 매달 자릿세로 3~4만 원과 별도의 집금 비용 1만 원을 낸다고 했다.
이런 절차를 거쳐 장사를 시작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내 장사’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는다. 최근 데일리NK와 인터뷰한 A씨도 장사를 위해 마련한 재봉기와 자전거 등을 자신의 재산으로 여기고, 장사를 통해 번 돈 역시 ‘내 돈’이라고 생각했다.
북한 내부 소식통은 북한에서 이렇게 개인이 직접 돈을 투자해 상품을 생산·판매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건물과 설비, 원료를 개인 자금으로 마련하고 한 달 250~300달러의 순수입을 올려 일부는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는 저축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업종과 영업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이미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자신이 마련한 밑천과 합법적인 경제활동을 통해 얻은 수입을 ‘자기 것’으로 보는 인식이 상당히 자리 잡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올해 개정된 북한 헌법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북한은 개정 헌법 제21조에서 “개인이 합법적으로 얻은 수입도 개인소유에 속한다”고 명시했다. 개인소유를 국가가 보호하고 상속권을 보장한다는 원칙도 유지했다. 종전 헌법은 ‘터밭경리를 비롯한 개인부업경리에서 나오는 생산물’과 ‘그 밖의 합법적인 경리활동을 통하여 얻은 수입’을 개인소유로 규정했지만, 이번에는 이를 ‘개인이 합법적으로 얻은 수입’이라는 포괄적인 표현으로 정리했다.
류지성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데일리NK에 “장마당 상거래와 개인 서비스업, 운송업 등 현실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경제활동을 법의 영역으로 편입하고 사적 소유의 유형을 다변화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라고 평했다.
다만 생산수단의 전면적인 사적 소유까지 인정한 것은 아니다. 개정 헌법도 생산수단은 국가와 사회협동단체가 소유한다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으며, 중요 공장·기업소와 은행 등은 국가만 소유하도록 하고 있다.
류 연구위원은 “주민이 장사 수입으로 마련한 재봉기나 차량, 생산설비가 모두 개인소유로 보호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 “구체적인 범위는 향후 하위 법령과 행정조치를 통해 정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결국 핵심은 ‘합법적으로’라는 표현이다. 무엇을 합법적인 경제활동으로 인정할지 결정하는 권한은 여전히 국가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등록이 핵심…등록해서 비용 내고 남은 돈은 ‘내 돈’
취재를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는 ‘등록’이 자리하고 있다. 시장 장사의 경우 시장관리소에 등록해 등록증과 매대증을 받고 시장관리세와 자리 사용료 등을 낸다. 국가가 개인의 장사를 관리하면서 일정한 비용을 받고 공식적인 경제활동의 틀 안으로 편입시킨 구조다.
최근 당국이 시장 상품에 대한 등록 관리를 강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데일리NK는 지난 7월 일부 시장관리소가 판매 물품의 생산지와 가격, 판매 허가 여부 등이 적힌 ‘품목검사표’를 게시하도록 하고, 미등록 물품을 판매할 경우 전량 몰수한다는 방침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시장에서 물건 팔려면 ‘품목검사표’ 게시해야…시장 통제 강화?)
2024년에도 개인이 운영하는 미용실과 식당, 식자재 판매점, 술집, 운송·배달업소 등이 늘면서 인민위원회 상업부 등에 돈을 내고 영업허가증을 발급받는 사례가 확인됐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개인 사업 통제 완화됐지만, 돈 뜯어내려는 간부들에 ‘헉헉’)
다만 모든 개인 경제활동이 같은 방식으로 관리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집에서 하는 소규모 가내 영업은 별도의 등록 없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지만, 국가 건물을 이용하거나 사업 규모가 커지면 승인과 등록이 사실상 필수적이라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즉, 북한의 개인 경제활동은 전면 허용도, 전면 금지도 아니다. 업종과 규모, 영업 장소에 따라 관리 강도가 달라지며 그 경계를 결정하는 핵심 장치가 ‘등록’인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등록 체계가 국가에는 관리 수단이지만 주민에게는 자신의 경제활동을 인정받는 장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A씨 역시 세금성의 각종 비용을 내고 남은 돈은 국가나 시장관리소의 돈이 아니라 자신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돈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올해 들어 북한이 개인 명의의 자동차 등록을 지방으로까지 확대하도록 한 것도 이와 맞물려 있다. 과거에는 기관·기업소 명의를 빌려 사실상 개인 차량을 운용했다면 현재는 아예 개인 명의로 등록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北 지방에서도 개인 자동차 소유 가능…주민 사회 분위기는?)
시장 매대와 영업허가증, 차량은 서로 다른 대상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국가는 등록을 통해 개인의 경제활동을 파악하고 관리하고, 주민은 등록 절차와 비용 납부를 마친 뒤 이를 ‘내 장사’, ‘내 돈’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통제 가능형 사경제…합법의 영역은 국가가 결정
그렇다고 이를 온전한 사유재산권의 확립으로 보기는 어렵다. 개인이 돈을 투자했더라도 국가 소유 시설을 이용하면 권리는 제한된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말 북한 당국은 공장·기업소 건물을 빌려 개인이 운영하던 상업시설을 조사해 국가 상업망에 편입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주택 역시 비슷하다. 법적으로 개인 소유 부동산은 아니지만 현실에서는 돈을 주고 집을 사고팔며 입사증 변경 등의 행정절차를 통해 사실상의 거래가 이뤄진다. 결국 개인이 돈을 투자하고 수입을 가져갈 수 있다고 해도 국가 소유 건물이나 기관 명의를 이용하는 순간 영업의 존속과 재산 처분은 국가의 승인과 관리에 종속될 수 있다.
북한의 개인소유 확대는 따라서 서구적 의미의 사유재산권 도입이라기보다, 국가가 정해 놓은 범위에서 등록하고 각종 비용을 납부하는 대신 그 안에서 벌어들인 수입과 일부 재산의 권리를 인정하는 ‘관리된 개인소유’에 가깝다.
류 연구위원은 이를 국가가 관리할 수 있는 범위에서 사경제를 인정하는 ‘통제 가능형 사경제’로 평가했다. 그는 “개인의 수입을 인정하더라도 합법의 범위는 국가가 정하고 등록과 규제도 함께 강화된다”면서 “사경제의 양성화가 국가 주도의 통제 강화로 이어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결국 올해 개정 헌법 21조에 담긴 “개인이 합법적으로 얻은 수입도 개인소유에 속한다”는 문구는 새로운 변화라기보다 지난 수십 년간 시장화 과정에서 형성된 주민들의 경제생활을 헌법이 뒤늦게 따라간 측면이 커 보인다.
소식통은 “헌법이 이제 와서 적어놓은 것이지 주민들은 예전부터 자기가 번 돈은 자기 돈이라고 생각해왔다”면서 “다만 장사를 어디까지 허용할지, 무엇을 합법으로 볼지는 여전히 국가가 쥐고 있다”고 말했다.
데일리NK 기획취재팀=이상용 기자(AND센터 디렉터), 황현욱 AND센터 책임연구원/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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