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보수 명목의 자갈 준비 지시 내려져…“언제까지 우리 몫인가”

25㎜ 규격 자갈 25㎏짜리 마대 3개 준비해야…생활난 허덕이는데 또 사회적 과제 내려지자 아우성

북한 양강도 혜산시 시내 모습. /사진=데일리NK

최근 북한 양강도 주민 세대들에 봄철 도로 보수에 필요한 자갈을 준비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겨울을 지나며 땅이 얼고 녹는 과정에서 파손된 도로를 정비한다는 명목인데, 또다시 주민들에게 보수 비용이 전가되자 “언제까지 우리 몫이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27일 데일리NK 양강도 소식통은 “최근 혜산시, 보천군 등 도내 시·군 지역 인민반 세대들에 도로 보수용 자갈 보장 과제가 인민반 회의를 통해 내려졌다”면서 “겨울이 지나면 포장도로가 군데군데 갈라지고 패여 보수를 해야 한다는 이유”라고 전했다.

북한에서는 매년 봄마다 겨울을 나며 파손된 도로를 보수·정비하는 사업이 진행된다. 올해도 예외 없이 도로 보수·정비 사업이 예견되는 만큼 봄철을 앞두고 각 주민 세대에 미리 자갈을 준비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지시는 인민위원회에서 동사무소를 거쳐 인민반장들에게 전달되고, 최종적으로 각 세대는 인민반 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수량과 규격을 통보받는다.

실제 지난 20일 혜산시의 한 인민반에서는 저녁 시간대에 회의를 소집해 각 세대가 25㎜ 규격의 자갈로 25㎏짜리 마대 3개씩 준비할 것을 포치(지시)했다. 보천군을 비롯한 다른 군의 주민 세대에도 이와 동일한 지시가 내려졌으며, 특히 자갈 규격을 반드시 지키라는 점이 강조됐다는 전언이다.

봄철 도로 보수·정비 사업이 진행되기도 전에 이 같은 지시가 내려진 것은 25㎜라는 규격을 맞추려면 큰 돌을 망치로 깨야 하고, 여기에 적잖은 시간이 들기 때문이라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주민들은 생계유지도 빠듯한 상황에서 또다시 사회적 과제를 떠안게 되자 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먹고 살기도 바쁜 상황에서 세외부담이 끊이지 않는다”, “하루 종일 장마당에 나가 벌어도 하루 벌이가 어려운데 과제까지 해야 하느냐”, “몸은 하나인데 도대체 몇 가지 일을 시키는지 모르겠다”, “이런 게 언제까지 우리 몫이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요즘은 쌀값도 쌀값이지만 나무값도 비싸 산에 가서 풀대를 주워다 불을 피우는 세대들도 적지 않은데, 이런 형편에 자갈까지 내야 하니 불만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자갈만 내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보수 작업까지 맡길 텐데, 결국 자재 준비부터 시작해 노력 동원까지 부담이 끊이지 않아 더 아우성”이라고 했다.

도로와 같은 기반 시설 유지·관리·보수는 국가가 책임질 영역임에도 사실상 말단 주민들에게 떠넘겨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주민들의 생활난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체감하는 부담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에서는 이런 사회적 과제에서도 계층 간 격차가 드러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식통은 “잘사는 세대는 1년치 정해진 돈을 이미 인민반에 내고 이런 사회적 과제를 하지 않거나 과제가 내려질 때마다 돈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으니 걱정 없겠으나 하루하루 근근이 장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시간과 노력을 바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돈으로 과제를 해결하는 세대는 충성분자나 모범가족으로 평가받고, 형편이 어려워 과제를 하지 못하는 세대는 늘 비판 대상이 되는 것도 문제”라며 “가난하다는 이유로 ‘문제 세대’로 낙인찍히는 것이 지금 여기(북한)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주민들은 이번 지시를 돈벌이 기회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벌이가 여의찮거나 특별히 정해진 장사 종목이 없는 주민들은 규격에 맞는 자갈을 미리 마련해 두고 있다가 상납 시점이 다가올 때 돈을 받고 팔아서 수익을 낼 궁리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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