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파병된 북한 군인들이 우크라이나군과 교전했고 사상자도 발생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 군인들은 사실상 ‘총알받이’에 불과하며 북한 당국도 이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군인 신분으로 러시아 건설 현장에 파견돼 건설 노동자로 일했던 탈북자 정모 씨(가명)는 최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러시아에 파병된 군인들은 출국 직전까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 씨는 “북한군(軍) 내부에서는 러시아에 건설 노동자로 파견되는 군인 노동자들의 해외 송출도 ‘파견’이 아니라 ‘파병’으로 지칭하는데, 군인 노동자들에게도 출국 직전까지 군에서 공식적으로는 파병지를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그는 자신의 경험에 빗대 전쟁 지역에 파병된 군인들이 자의에 의해 파병을 지원한 것이 아니라 군에서 강제적으로 대상자로 선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에 파견되는 군인 노동자들조차 군 내부에서 공식적으로 지원자를 모집하고 선발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는 게 그의 말이다. 대체로 표창을 받은 적이 있는 모범 군생활자 등을 대상으로 상부에서 일방적으로 파견자를 선발했다는 것이다.
이에 미뤄볼 때 현재 전투 지역에 파병된 군인들, 특히 하전사의 경우에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 파병됐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정 씨는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해외로 파병되는 모든 북한 군인들은 모두 전장에서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내용의 선서를 한다”며 “어떤 상황과 조건에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명령을 끝까지 관철하겠다는 점을 결의하고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에 건설 노동자로 파견될 때도 출국 직전 ‘전장에서 목숨을 잃을지라도 최고지도자의 명령을 따르겠다’는 공개 다짐을 한다는 설명이다.
북한 군 당국이 해외로 출국하는 모든 군인들에게 이를 지시하는 것은 해외에서 군인들이 주둔지를 이탈하거나 명령에 불복하는 일이 없도록 단속하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그런가 하면 정 씨는 북한 당국이 전쟁 지역에 자국 군인을 파견할 때 최소한의 대가만 지급할 뿐 월급이나 특별 보상금을 지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에 건설 노동자로 파견된 군인들이 하루 10시간 이상 고강도 노동을 해도 군복무를 노동으로 대체하는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최소 생활비라고 할 수 있는 한 달 100달러(약 14만원)만 지급했다는 게 정 씨의 말이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29일 국회 정보위원회가 비공개로 진행한 국정감사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 중인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군인의 월급이 2000달러(약 280만원)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 씨는 “전쟁 지역에 파병된 군인들이 개별적으로 2000달러를 받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한국에서 용병에 대한 대가를 바라보는 시각과 북한 내 실제 군복무자에 대한 대가 지급 개념은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 씨는 파병된 군인들이 특수 훈련을 받은 정예 군인이라 할지라도 실제 전투에 투입되면 총알받이가 될 수밖에 없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는 “최정예 특수부대 폭풍군단 병력이라고 해도 그들이 훈련받은 환경은 산악 지형인데 지금 러시아에서 교전이 일어나는 지역은 허허벌판”이라며 “북한도 처음부터 군인들의 교전 능력을 기대하고 파병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정 씨는 “북한은 러시아에 파병 보낸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한 명이라도 살아 돌아오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며 “그들이 돌아와서 내부 주민들에게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발설할 경우 체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이 전투 지역인 쿠르스크에서 교전을 치렀고 다수의 북한군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대응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더 많은 북한군이 러시아에 배치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