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내에서 강제실종 범죄가 단계적으로 체계화돼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 담긴 보고서가 공개됐다.
인권조사기록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은 31일 ‘존재할 수 없는 존재: 북한 강제실종범죄 조사’ 보고서를 발표하며 북한 내 강제실종 범죄의 패턴과 이를 집행하는 관할 기관들을 구체적으로 밝혀냈다.
이번 조사는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62명을 심층 면담해 총 66건의 강제실종 사건과 113명의 실종 사례를 분석했다.
강제실종된 주민들 대부분이 국가보위성 등 북한의 주요 기관에 의해 통제된 후 실종됐으며, 특히 중국에서 북송돼 북한 내 수용소로 이감되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것으로 보고서는 밝혔다.
이와 관련해 TJWG는 주민들이 강제실종에 이르게 되는 경로를 지도화하고, 종교 활동 혐의에 따른 강제실종, 탈북 시도자들의 실종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강제실종 범죄는 3대 세습 체제에서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다. 김정일 정권하에서 다수의 실종이 일어났으며,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강제실종 범죄가 이어졌다. 실제 조사 결과 113명 중 35명이 김정은 정권하에서 강제실종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조사에서 10세 미만의 아동 실종자가 13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는 등 연령대가 어린 실종자들도 적지 않았다.
강제실종의 이유로는 탈북 관련이 39.8%로 가장 많았는데, 구체적으로 ▲탈북 후 송환(21명) ▲탈북 시도(12명) ▲탈북 준비(7명) ▲탈북 도움(5명) 등으로 파악됐다. 연좌제로 인한 실종도 25.7%에 달했다. 이 밖에도 한국과의 접촉 혐의, 김정은 일가와 체제 비판 혐의, 종교 혐의 등이 실종 원인으로 조사됐다.
보고서의 주요한 결론은 북한 강제실종 범죄의 상당수가 국가보위성 등 특정 기관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사에 따르면 실종된 133명 중 국가보위성 단독으로 체포·연행된 경우는 62명에 달하며, 체포된 이후 국가보위성의 통제하에 실종된 비율은 전체의 약 81.4%로 드러났다.
국가보위성 외에도 북한 국경경비대, 중국 공안부, 북한 인민군 보위국, 사회안전성, 비사회주의검열그룹 등이 강제실종 범죄에 관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TJWG는 이 같은 강제실종 범죄의 책임이 김정은 정권에 있으며, 국가보위성을 중심으로 한 통제 구조가 이러한 범죄를 조직적으로 수행하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서를 통해 지적했다.
또한 TJWG는 이번 보고서에 북한 내 강제실종 피해자들의 가족과 탈북민들이 경험한 좌절과 고통을 담기도 했다.
실종된 가족을 찾으려 했던 탈북민들은 “더 이상 찾지 말라”는 북한 기관원의 경고에 큰 공포와 좌절감을 느꼈고, 북한 주민들이 북한 정부와 사회적 억압 아래 고통을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압박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고 TJWG는 전했다.
TJWG의 박송아 조사기록담당관은 “이 보고서는 북한 주민들과 탈북민들의 눈물과 좌절감, 그리고 소망을 담고 있다”며 “이 조사에 참여한 탈북민들은 문제 국가에 더 강한 압력을 가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또 함께해주길 소망했다”고 말했다.
TJWG는 이번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강제실종 범죄가 초국가적 범죄임을 주장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책임 또한 무겁다는 점도 언급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자국에서 탈북민을 체포·송환하거나 북한 기관들이 납치 활동을 벌이는 것을 방조해 강제실종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TJWG는 북한 강제실종 범죄에 대해 국제사회가 초국가적 범죄로 인식하고 대응해야 하며, 관련 국가들이 더 강력히 문제를 제기하고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