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정상회담이 열린 지 일주일만인 지난달 26일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북한상품 박람회가 열렸다. 조선국제무역촉진위원회가 개최한 이번 박람회는 북한의 경제부문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기획되었다고 한다. 박람회에는 70여 개 북한 기업이 생산한 식품과 의류, 건강용품, 공예품, 악기 등이 전시됐다.
필자는 당시 박람회 모습을 담은 영상을 현지 관계자로부터 입수할 수 있었다. 많은 관람객이 찾아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는 일부 외신 보도와는 달리 영상 속 박람회장 모습은 그야말로 한산했다. 더욱 놀랐던 건 바로 북한이 전시한 상품이다. 과자와 사탕을 판매용으로 전시해 둔 건 그야말로 이곳이 상품 박람회장이 맞느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매대마다 전시된 상품은 북한에서 주민들에게 공급한다며 열리는 소비품전시전에서나 볼 법한 상품들이었다. 비누, 치약, 주방세제를 비롯해 김, 까나리 등 식품류에 이르기까지 북한경제의 열악한 경제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상품에 지나지 않았다. 명색이 국가 간 정상회담을 마치고 첫 후속 조치로 이루어진 경제협력 사업이 고작 생필품 전시회 정도의 교류라는 점에서 북한의 대외 의존성을 다시 한번 가늠해 보는 대목이었다.
그중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대북제재 위반과 관련된 상품이 버젓이 전시, 판매되었다는 점이다. 유엔 대북제재 결의 2397호와 2375호는 각각 북한산 식품·농수산물 거래와 북한산 섬유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이번 박람회에는 만수대창작사가 제작한 작품도 전시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만수대 창작사가 벌어들인 외화가 북한의 핵 개발에 사용될 수 있다며, 2017년 8월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 2371호를 통해 만수대 창작사를 대북제재 명단에 올렸다.
이번 박람회에 그림을 판매하는 매대를 자세히 살펴보면 북한 화가 오영성의 이름이 내걸려 있다. 1985년에 평양미술대학을 졸업한 오영성은 현존하는 북한 화가 중 최고의 화가로 손꼽히는데, 만수대창작사 소속의 공훈예술가다. 이번 박람회를 통해 그림을 판매하는 목적을 넘어 그동안 만수대창작사가 해외에서 대형 조형물이나 동상 등을 설치하고 외화를 획득한 만큼 대규모 사업을 수주하려는 의도가 있다. 이는 매대마다 안내 책자를 준비하고 전자메일과 전화번호까지 상세히 게재해 두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또한 백호무역회사 간판이 내걸렸는데, 북한 국방성 산하 ‘백호무역회사’는 EU가 2022년 4월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으며, 우리 정부도 지난 2023년 7월 독자 대북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곳이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 이후 공동언론발표에서 푸틴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주도한 무기한 대북제재는 뜯어고쳐야 한다”라고 언급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 북한은 해외 파견 노동을 ‘충성의 외화벌이’라고 부르며 자금을 모으고 있다. 대북제재로 인해 현재 중국, 러시아 등 일부 국가에만 북한 노동자들이 남아 있는데, 이번 북·러 정상회담 이후 대북제재에 아랑곳없이 북한이 러시아에 인력을 보낼지 관심이 모아진다. 무엇보다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의 열악한 인권침해 실태가 끊임없이 지적되었고 대북제재의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한 문제다.
이번 북한상품 전시회에서 여실히 드러난 북한경제의 열악한 실태는 곧 북한 주민의 곤궁한 삶과 직결된다. 그런데도 연일 미사일 발사와 군사적 도발을 일삼는 북한 당국의 행태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살길은 오직 하나, 바로 비핵화와 개혁개방임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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