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발전 정책 그 후①] 北 지방 은행 활성화에 박차

지방 은행들 유휴 자금 확보에 총력…개인 예금으로 확보한 돈 다시 공장·기업소에 대출

<편집자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제14기 제10차 최고인민회의에서 ‘지방발전 20×10 정책’이라는 새로운 역점 사업을 발표했습니다. 매년 20개 시·군에 현대화된 지방공업 공장을 건설해 10년 안에 인민들의 물질문화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리겠다는 것인데요. 이후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간 북한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데일리NK는 북한의 이러한 시도가 지방발전 20×10 정책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2월 29일 평안남도 성천군에서 지방공업공장 건설 착공식이 28일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착공식에 참석해 직접 연설을 하고 첫 삽을 떴다. ‘지방발전 20X10 정책’은 매년 20개 군에 현대적인 공장을 향후 10년간 건설해 지방 주민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겠다는 내용이다./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이 ‘지방발전 20×10 정책’을 본격 시행한 지 4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해당 정책을 발표하고 “매우 절박하게 나서는 국가의 중대사”라고 밝힌 만큼 정책의 초점이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한 지방공업 공장 건설에 맞춰지고 있다. 실제로 현재 북한의 20개 시·군에서 공장 건설 사업이 진행 중이다.

북한 당국은 지방발전 20×10 정책의 성공을 위해 시·군 간 경쟁을 독려하고 군인들을 대거 건설 현장에 투입하고 있지만, 사실 이 정책의 성패는 ‘자금’에 달려 있다. 공장 건물이야 ‘자력갱생’으로 건설한다 해도 김 위원장이 진정으로 원하는 지방 발전을 위해서는 공장에 자동화 설비와 신식 기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북한 당국도 자금 융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국이 부족한 자금을 끌어내기 위해 특히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경제 정책 중 하나는 ‘지방 은행 활성화’다.

사실 북한이 지방 은행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여러 정책을 시도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에도 주민들의 유휴 자금을 끌어내기 위해 지방은행들이 새로운 저축 상품을 출시한 바 있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北 지방은행, 주민 유휴자금 끌어내려 새 저축 상품 내놔)

당시 원산 지점을 비롯한 강원도 내 은행들은 예금 이자율은 4~9%로 상향 조정하고 ‘고객이 원할 때 언제든지 적금을 해지하고 예금을 찾아갈 수 있게 하겠다’는 조건을 내걸며 주민들의 적금 가입을 유도했다.

공장·기업소에서는 ‘저금이 곧 애국’이라며 직원들에게 반강제적으로 은행 저축 상품에 가입할 것을 압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은행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도가 워낙 낮아 자발적으로 은행 적금 상품에 가입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지방발전 20×10 정책 시행 이후 지방에서는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가 포착되고 있다. 은행에 자발적으로 저금하는 주민들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은행에 대한 신뢰도 역시 다소 높아진 것으로 파악된다.

본보의 취재에 따르면 지난 4월 신의주시에서는 한 주민이 돈을 찾기 위해 은행을 방문했다가 ‘현금 부족’을 이유로 출금하지 못하자 시(市) 당위원회에 신소(신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시당은 은행 관련자를 정직 처분하고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는 약속까지 내놓는 등 유례없는 신속한 대처에 나섰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맡긴 돈 못 찾자 불만 폭주…北, 은행 신뢰 회복에 ‘안간힘’)

그러자 주민들은 “언제든 돈을 찾아갈 수만 있다면 이자도 높은데 저금을 안 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며 은행 예금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최근 북한 지방에서는 자금 유동성을 높이기 위해 주민들의 은행 적금 가입을 유도하는 여러 가지 정책도 내놓고 있다. 양강도에서는 도내 은행과 공장의 재정과가 함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돈은 은행에 맡기는 것’이라는 내용의 금융 교육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의무적으로 은행 계좌를 개설하게 하고 있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北, 공장 노동자 은행 계좌 개설 및 카드 발급 의무화…왜?)

북한 지방 은행들은 이러한 개인 예금을 바탕으로 기업 대출 한도도 확대하고 있다. 22일 데일리NK 북한 내부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북한 지방 은행들은 북한 돈 수십억원에 이르는 거액의 자금을 기업에 대출해주고 있다. 달러 환산하면 10만 달러 이상의 금액을 대출하고 있다는 게 이 소식통의 말이다.

특히 북한 당국은 기업과 개인의 은행 업무가 해당 지역 은행 내에서만 이뤄지도록 명확한 경계를 세우고 각 지방 은행의 자율권을 확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 은행이 자체적으로 주민들에게서 예금을 확보하고 이를 다시 해당 지역의 기업들에 대출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의 자력갱생을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지역 내에서 끌어낼 수 있는 유휴 자금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초기에는 은행 예금 확대로 자금원이 증가한 것으로 보이지만 노동자들의 소액 예금으로 자금을 유동성을 끌어올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정작 큰 자금을 쥐고 있는 돈주나 돈데꼬(환전상), 도매상들은 여전히 거액의 자금을 은행에 맡기는 것을 꺼리고 있다.

북한 내에서 경제적 부유층에 해당하는 한 소식통은 “미국이 망하지 않고 중국이 망하지 않는 한 딸라(달러)와 비(위안)를 국고에 국돈으로 환전해 넣을 수는 없다”며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적금하는 것 같아도 계속 은행 이용자가 많을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