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은 수많은 선택과 도전의 삶을 살아온 ‘콤플렉스와 야망을 지닌 승부사’이다. 그는 2019년 2월 또다른 승부사 트럼프와의 하노이 정상회담 대참패(no deal) 이후 ‘강대강 정면돌파전’ 노선을 표방하며 핵능력 고도화, 자력갱생, 중·러 진영외교 등을 통해 위기를 타개하고자 절치부심해 왔다.
이런 그가 올해 들어 ▲민족과 통일, 선대 유훈을 부정하고 2개 국가론과 전쟁불사론(이른바 ‘헤어질 결심’)을 양손에 쥐고 흔들며 ▲백년 숙적 일본에는 유화 제스처(‘대화할 결심’)를 보내는 예상치 못한 또 하나의 승부수를 던졌다. 이 같은 행보는 과연 체제 유지·발전을 위한 장기적-전략적 복안일까? 아니면 갑작스럽게 결정된 돌출행동일까?
김정은 집권 이후 정책 스타일
김정은은 40세의 젊은 지도자이지만 어느덧 집권 13년차를 맞고 있다. 이제 노회한 지도자 반열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정권의 정통성 기반이 여전히 취약하고 주민 사상이완·생활난을 비롯한 수많은 난제(難題)도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지난 시기를 뒤돌아 보면, 김정은은 분명히 ‘큰 그림’을 가지고 다양한 전략전술적 액션을 배합해 나가고 있다. 북한 통치체계의 바이블(bible)인 유일사상체계 확립 10대 원칙 개정(2013.6)을 통해 ‘백두혈통으로의 영구승계’를 조기에 명문화한 사실, 그리고 핵개발 올인, 한·미·중·러와의 정상회담, 코로나19 선제 대처 및 한국과 국제사회의 수원(受援) 거부와 같은 정책적 행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결심이 아니다.
지금까지 당규약·정책지시 등을 종합해 본 결과 김정은의 대전략은 ①정권 안정과 백두혈통으로의 영구승계 기반 공고화 ②사회주의강국 건설 ③핵을 기반으로 한 전 한반도 무력 편입 노선이 핵심이다.
이 같은 대전략은 ▲집권 이후 5년마다 소집(2016.5, 2021.1, 2026.1 예정)을 정례화한 최대 정치행사인 당대회를 계기로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있으며 ▲당 전원회의·최고인민회의와 같은 정책회의를 통해 경제·국방발전 5개년 계획, 2개 국가론, 지방 발전 20×10 정책 등과 같은 중장기 전략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시행 과정에서는 내부 정치 일정, 미중 패권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내외 환경을 충분히 고려하여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최근 특이동향
국내외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강경 발언과 행보에 대해 체제 위기설,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과 같은 판단을 내놓고 있다. 물론 북한이 말 폭탄과 전략전술적 도발로 긴장을 조성하고 있고 내부적으로도 과거에 볼 수 없었던 민심 이반 현상과 강경 대응 조치들이 이어지고 있어 국면이 위기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부 현상을 너무 확대해서는 안 된다. 옳고 그름의 여부를 떠나 김정은을 비롯한 당·정·군이 다양한 해법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북한은 ▲2022년 2월에 발발한 러-우 전쟁을 당면한 경제-외교적 어려움 탈피와 군사과학기술 향상을 위한 호기(好期)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전쟁물자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러시아의 보급창고 역할 자임을 통해 푸틴의 대북 군사기술-경제 지원과 대북제재 방패막이 역할을 유도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반동사상문화배격법·평양문화어보호법을 비롯한 초강경 단속법을 연쇄적으로 제정한 데 이어 ▲2개 국가론하에서 민족·통일 관련 용어 삭제, 기념물 파괴와 같은 선대 흔적 지우기를 시도하고 있다. ▲금명간 헌법개정을 통해 이른바 새로운 국경선도 선포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 볼 때 향후 북한의 헌법·당규약 개정은 남북관계의 근본적 대전환과 선대 김일성·김정일 노선과의 완전 차별화의 대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바, 북한의 핵 질주와 함께 2025년 해방·분단 80주년을 맞는 한반도의 미래에 엄청난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편 2개 국가론 선포와 때를 같이하여 ▲김정은과 김여정이 직접 나서 일본에 수교협상의 제스처를 보내고 이후 최선희 외무상·리용남 주중 북한대사 등이 전면에 나서 밀당을 전개한 점이 주목되는데, 한미일 연대 약화와 식민지 배상금 획득이라는 ‘2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저의로 평가된다. 여기에다 올해 북중 수교 75주년을 맞아 양국 간 교류·협력의 대폭 확대도 예견되고 있다.
주요 정치 일정과 정책 전망
북한의 한반도 위기 조성과 관리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대전략, 중장기정책, 북한 및 국제 정세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진행될 것이다. 특히 김정은은 단기 정세 조작은 물론이고 중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김정은의 눈(eye)이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선거와 2026년 1월로 예정된 북한의 9차 당대회에 놓여 있을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그 사이 주요 계기를 보면 ▲내부적으로는 헌법개정 문제를 다룰 최고인민회의(제14기 마지막 회의 또는 제15기 개원 회의), 군사정찰위성 발사, 7차 핵실험, 지방 발전 20×10 정책 ▲대남 면에서는 접경지역 대북전단 살포, NLL 인근 함정 충돌, 8월 한미합동군사훈련 ▲대외적으로는 5월 푸틴 방중과 한중일 서울정상회담, 김정은-푸틴 회담(추진 중), 9월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 10월 김정은-시진핑 회담(추진 중) 등이 중점 고려될 것이다.
좀 더 장기적으로는 2025년 1월 김정은 생일과 미국 신행정부 출범, 8월 해방 80주년, 10월 당 창건 80주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김정은 4기 체제가 출범하는 2026년 1월 9차 당대회를 고려하면서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이다. 한편 미중 패권 경쟁에서의 중국의 운신 폭 변화, 러-우 전쟁 지속 기간 등과 같은 국제환경 변화에도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다.
지금 김정은은 헌법개정 작업, 한류열풍 확산 차단, 선대 지우기 및 홀로서기, 경제난 해소 등 대내 문제에 총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북한은 2024년도를 ‘2025년도로 가는 징검다리 해’로 보고 ①내부단속 ②경제·국방발전 5개년 계획 마무리와 지방 발전 20×10정책 정상궤도 진입 ③전략전술무기 고도화 ④북중러 연대 강화 등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말 폭탄과 도발을 통한 긴장감 조성과 대미-대남 협상력 제고, 일본과의 대화 모색을 통한 한미일 연대 약화 기도는 계속 병행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 2025년도에는 일본과 미국 신행정부와 ‘Again 2018’(핵군축회담으로 가는 길)을 시도할 것이며, 2개 국가론에 기초하여 대한민국 정부는 철저히 배제하면서 우리사회 내 ‘남남갈등’을 증폭시키려 할 것이다.
특히 2026년도 1월로 예정되어 있는 ‘9차 당대회’는 ‘김정은 완전 홀로서기’의 대변곡점(great turning point)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발 더 나아가 9차 당대회는 주민 총동원 분위기 조성, 대외정책 기선 제압 등을 위해 2025년 10월 당 창건 80주년에 맞춰 조기 개최함으로써 의의를 배가시킬 가능성도 있다.

우리의 대응 방향
①긴 호흡을 가지고 가지와 숲을 함께 보자
김정은은 영구집권 독재자다. 시간과 절차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중장기 구상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해 나갈 수 있으며 상황 변화에도 신속 대처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우리는 5년 임기 대통령제이며 삼권분립이라는 견제와 균형 장치에 기초해 움직인다. 구조적으로 정책 수립과 추진에 있어 더디고 때로는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제도·환경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나름 가지도 보고 숲도 보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임기 3년차를 시작한 윤석열 정부는 비록 어려운 환경이지만 발등의 불만 끄려 해서는 안 된다. 한미일 연대에 안주해서도, 남북관계가 무탈하기만 바라서도,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 탓만 해서도 안 된다. 김정은처럼 새로운 중장기 로드맵과 창의적 전략전술을 가지고 남북관계를 선도해 나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11월 미국 대선 이후 북한 및 미국, 주변국 행보에 대한 큰 그림을 미리 그리고 대비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2025년 해방 80주년·2028년 대한민국 건국 80주년도 의미가 크다. 좀 더 나아가면 2048년 건국 100주년도 생각하며 국민과 함께 해나가야 한다. 다양한 시나리오에는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된다. 미국을 비롯한 한반도 핵심 이해 당사국들은 철저히 자국의 이익에 기초해서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누구를 탓해서도 안 된다. 그것이 국제사회의 냉혹한 룰(rule)이다.
②북한 체제 정상화 유도 정책 적극 추진
특히 북한이 반민족적·반통일적 2개 국가론을 선언한 지금이 북한 변화와 통일정책의 이니셔티브를 쥐고 나갈 절호의 기회이다. 자칫 실기(失機)를 하면, 지난 시기 고난의 행군을 거치며 절치부심하던 김정일 정권에 핵 개발의 시간과 돈을 주었던 것처럼 김정은에게도 내부를 재정비할 여유를 줄 수 있다. 그건 바로 다음 정부와 미래 세대에게 큰 부담(핵인질)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북한 사회가 물밑에서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우리는 이 변화의 물결이 사방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한다. 김정은이 한류 콘텐츠를 매개로 우리와 하나가 되어있는 북한 MZ세대(장마당세대)의 눈과 귀를 다시 틀어막는 것을 강 건너 불 보듯 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민족애와 인류보편적 가치를 구현한다는 차원에서 범세계적 차원의 북한 체제 정상화를 위한 로드맵을 수립하여, 국민에게 진솔하게 설명하고, 북한을 담대하게 상대하고, 국제사회와 유기적으로 협조해 나가야 한다. 남북한 MZ세대가 온-오프라인에서 만날 수 있는 날이 북한 체제의 진정한 변화와 통일한국(‘사실상의 통일’)으로 가는 시발점이다.
③플랜B도 검토
2023년 4월 윤석열-바이든 대통령이 채택한 ‘워싱턴 선언’은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제2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고 할 수 있다. 큰 성과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그간의 안보외교 성과에 만족하고 안주해서만은 안 된다. 북한을 비롯한 대내외 환경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자주국방과 한미일 공조 강화를 통한 안보 현안 대처는 물론 김정은의 2개 국가론 대응과 시대조류 변화에 부응한 새로운 통일정책, 주한미군 감축시 대응책, 전술핵 재반입-자체 핵무장 문제, 미·일의 대북 협상과 수교, 중·러와의 대화 전략까지 포함하는 위기관리 및 웅비(雄飛) 플랜을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추진할 시점이다.
맺음말
이 글을 마치며 다시 한번 강조한다. 필자는 김정은이 이른바 《한미일 대 북중러 신(新)냉전구도》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판단하에서 ▲사회 전반의 한류-반체제 의식 확산에 강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주민들의 마음속에서 대한민국(‘동경의 대상’)을 완전히 지워버리기 위해 큰 승부수를 던졌다고 평가한다.
다시 말해 김정은은 “핵을 죽도록 개발해도 사상의 뚝이 무너지면 다 소용이 없다.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①영구 분단 선언(대한민국 제1주적론으로 내부통제) → ②완전 홀로서기(선대 노선과의 차별화를 통한 김정은 나라 건설) → ③유사시 한반도 무력 평정 노선 실현(최종 목표)을 위해 중장기적 관점을 가지고 배수진을 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2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첫째는 김정은을 과소평가해서는 절대 안 되며, 둘째는 북한의 아킬레스건은 매우 구조적이고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해답은 윤석열 정부가 국민과 함께 더 치밀하고 큰 생각을 가지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면 한반도에 짙게 드리운 먹구름이 걷히고 고통받고 있는 북녘 동포들에게도 서광이 비치게 될 것이다. ‘행동하는 나라, 실천하는 국민’이 대북정책의 큰 화두(話頭)가 되길 소망해 본다.
유비무환-국론통합-주동작위(主動作爲)-적수천석(滴水穿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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