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완 칼럼] 북한 주민은 우리가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몽골 주재 북한 대사관.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지금, 이 글을 쓰는 곳은 몽골 주재 북한대사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울란바토르 시내 어느 호텔입니다. 회색빛 건물에 내걸린 인공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이라 쓴 붉은색 명판이 오늘따라 더욱 선명합니다. 통일의 눈으로 몽골을 다시 보기 위해 그동안 여러 번 몽골을 오갔지만 이번 여정은 특별했습니다. <서울시건축사협의회 북한개발연구위원회> 소속 건축사들과 함께한 답사로, 몽골에서 북한 관련 건축물을 찾아보고 통일과정에서 남북한과 몽골의 협력을 모색하기 위한 여정입니다. 구소련 시절 계획도시로 세워진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평양과 참으로 많이 닮았습니다. 가장 번화가인 수흐바트라 광장에 서 있노라면 마치 평양 김일성광장에 선 듯한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네 개의 대리석 기둥이 떠받치는 파스텔톤 건물의 몽골 국립오페라극장은 평양 모란봉극장과 건축양식이 비슷하지요. 몽골에서의 여정은 어쩌면 분단인으로서 지금은 닿을 수 없는 반쪽 조국에 대한 그리움의 발걸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5박 6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된 이번 답사에서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한 건 숙소로 사용할 호텔 때문이었습니다. 평소에도 한국 관광객이 많이 이용하는 호텔이었는데, 체크인을 하는 사이 일행 중 몇 분이 호텔건물 바로 옆 공사장의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터파기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호텔건물 바로 옆까지 굴착을 했습니다. 호텔건물을 지탱해 줄 어떠한 안전장치 하나 없이 땅속 깊이 굴착공사를 하다 보니 호텔건물의 골조가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위태롭게 서 있는 건물은 언제 균형을 잃고 무너진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한국에서 이런 공사는 안전문제로 인해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며 혀를 내둘렀지요. 건축의 문외한인 제가 봐도 상황은 심각해 보였습니다. 물론 ‘하루 밤새 큰일이 벌어질 정도는 아니기에 그냥 하루쯤 묵어가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건축사님들의 행동은 단호했습니다. 그중 한 분이 던진 말에 모두가 뜻을 같이했지요. “일반인이면 몰라도 건축사로서 이런 위험을 보고도 못 본 척한다면 그건 전문가로서 사명을 망각하는 것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몽골 현지 건설현장의 안전문제를 한국의 건설기준을 적용해 지적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우리 국민의 안전은 우리 건축사가 지켜야 한다는 말에 모두 의기투합했습니다. 그 즉시 몽골 주재 한국대사관에 이 사실을 통보하고 관련 조처를 요청드렸지요. 안전과 관련한 문제는 어떠한 것과도 타협할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였습니다. 자신이 가진 지식과 직업이 공공의 안녕을 위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건축사님들의 행동과 대처를 보며 분명히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전문가로서 책임과 사명, 그리고 자신의 분야에서 발생한 불의에 결단코 눈감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 그들의 대처를 지켜보며 저 자신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안녕을 위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전문가로서 책임과 소명을 다하고 있는가라는 자책감이 먼저 들었습니다. 우리 ‘국민의 안전은 우리 건축사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말이, 저에게는 ‘북한 주민의 안전은 우리가 지켜야 하지 않는가’라는 메아리처럼 들렸습니다. 독재와 억압으로 고통받는 북녘 주민들의 인권을 위해 나는 지금 침묵하지 않고, 불의에 눈감지 아니하며, 행동하는 양심으로 일하고 있는가 자문해 보았습니다.

모든 정의의 시작은 불의한 일에 대해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외치는 자의 작은 용기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마음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음날, 몽골 주재 한국대사관 담당자로부터 친절히 연락이 왔습니다. 직접 공사현장에 가서 확인하고 관련 조처를 했다는 답변이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는 든든한 정부가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 켠이 뿌듯해졌습니다.

그런데 몽골 주재 북한대사관은 높은 펜스에 가려져 안을 볼 수 없습니다. 세상과 고립된 채 홀로 ‘사회주의 지상낙원’을 외치는 북한을 보는 듯합니다. 언제가 되어야 저 북녘땅에도 자유의 봄이 올런지요. 북한 주민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신다면 오늘 우리의 귓가에 울렸던 그 한마디가 길잡이인 듯합니다. “우리 국민의 안전은 우리 건축사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말처럼 불의에 눈감지 아니하고 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도 대한민국 국민처럼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을 누렸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입니다. 그리고 그 바람은 바로 우리의 작은 관심에서부터 이루어질 것입니다. ‘북한 주민은 우리가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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