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 망신주기로 공개 비판까지 받았는데…권력으로 무마?

[북한 비화] 집단 괴롭힘 기록된 남학생들 불이익 전혀 안받아…알고보니 간부집 자식·조카

북중 국경 지역에서 포착된 트럭에 북한 학생들이 타고 있는 모습.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가을철 농촌지원 총동원 기간이던 2022년 10월 어느 날 이른 아침 북한 평안남도 숙천군 검산리 농장에 동원된 전체 초·고급중학교(우리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농장 탈곡장 마당에 긴급 집합했다.

군 청년동맹의 지시에 따라 긴급 소집된 이유는 일주일 전 밤에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숙천군 읍 고급중학교 학생들은 국가적 조치에 따라 수업도 멈추고 가을철 농촌지원에 총동원돼 검산리 농장에 숙소를 잡고 내려와 생활하고 있었는데, 3학년 한 개 학급 남녀 학생들이 저녁을 먹고 주간 작업 총화를 진행하는 것을 본 농장 청년분조 선동원이 군 청년동맹에 보고하면서 사건화됐다.

당시 학급장과 주먹이 센 남학생 4명이 툇마루에 기대앉아 앞에 3명의 여학생을 세워두고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 문제시된 것이다.

남학생들은 학급 내 통통한 여학생 1명, 마른 여학생 1명, 동작이 느린 여학생 1명 이렇게 3명의 여학생을 뽑아 앞에 세우고는 통통한 여학생에게는 ‘강성부흥 아리랑’을, 빼빼 마른 여학생에게는 ‘고난의 행군 정신으로’를, 동작이 느린 여학생에게는 ‘기다려다오’를 부르게 했다.

이는 모두 김정일 시대에 창작돼 요즘 세대 학생들은 잘 모르는 노래들이다.

실제 여학생들이 이 노래를 모른다고 하자 학급장을 비롯한 남학생들은 “잘 먹고 살쪄서 작업과제 미달한 동무는 ‘강성부흥 아리랑’을, 빼빼 말라서 볏단도 제대로 못 날라 작업과제 미달한 동무는 ‘고난의 행군 정신으로’를, 동작이 굼떠서 작업과제 미달한 동무는 ‘기다려다오’를 부르게 해 망신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다음 주 작업 총화 때도 누가 나와 망신을 당하는지 보자”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다만 당시 길을 지나다 이를 광경을 보게 된 농장 청년분조 선동원이 다음날 ‘농촌 총동원 나온 학생들이 망신 주기식 작업 총화로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내용으로 군 청년동맹에 보고를 올리면서 일이 커지게 됐다.

군 청년동맹의 확인 결과 문제가 된 학급의 담임교사는 읍에 있는 집에 일이 생겨 급히 올라가고 그날 주간 작업 총화를 학급장에게 위임했다가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됐다.

이후 군 청년동맹 부위원장이 탈곡장에 초·고급중학교 학생들과 담임교사들을 모두 모이게 해 해당 사건을 언급하면서 작업과제에서 뒤떨어진 동무들 간 망신주기식 비판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질타했고 이를 집단 괴롭힘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혁명적인 노래를 학생들의 외모, 일본새와 연결 지어 비하하는 식으로 모욕을 주는 것은 당과 대중의 일심단결에 저해를 주는 중요한 반동적 요소라고 엄하게 꾸짖고 해당 작업 총화를 주도한 4명의 학생을 앞에 내세워 공개 비판했다.

또한 군 청년동맹은 이 4명의 청년동맹 조직 생활 자료에 이 사건을 그대로 기록하게 하도록 하겠다고 못 박기도 했다. 청년동맹 조직 생활 자료는 졸업 시 생활 평정 자료로 쓰여 대학추천이나 군입대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듬해 이들 4명은 대학 입학이나 군 초모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았다. 심지어 이들의 생활 평정 자료에도 이 사건 기록은 모두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후에 알려진 바로 이 4명은 모두 평안남도 숙천군 당과 안전부, 보위부 간부들의 자녀들이거나 조카들이었다.

이에 같은 학급의 학생들과 그 학부모들은 “힘없는 집 자식이 혁명적인 노래를 빗대 동무를 괴롭혔다면 아마 단련대에 갔을 것”이라며 “돈과 권력이면 죽은 사람도 살리는 나라”라며 혀를 내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