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집에’ 주인공처럼…현관문에 접착제 발랐다가 관리소行?

[북한 비화] 예심과장에 복수하려던 10대 형제 결국 체포…주민들 "알렉스 누구냐" 궁금증 쏟아내

미국영화 나 홀로 집에
영화 ‘나 홀로 집에 3’ 중 한 장면.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지난 2019년 봄, 평양시 중구역 보안서는 인민보안성(現 사회안전성) 특별보안국의 명령에 따라 경림동에 살고 있던 10대 형제를 불시 체포하고 보안성 산하 관리소(정치범수용소)에 보냈다. 국가기관의 주요 간부들만 취급하는 특별보안국이 어린 10대 청소년들을 별안간 붙잡아 소년교양소도 아닌 관리소에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중구역 보안서 간부들과 그 가족들 사이에 알려진 경림동 10대 형제 체포사건은 이렇다.

2018년 4월 어느 날. 중구역 보안서 예심과장 리모 중좌는 수사과로부터 40대 중반의 남편 한 모 씨와 40대 초반의 아내 조 모 씨 부부의 사건 수사기록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이들을 재판에 넘겨 15년 교화형을 받아냈다. 이에 따라 남편은 제4교화소(강동교화소) 본소로, 아내는 여성들만 따로 수용하는 강동교화소 산하 형산관리과로 이송됐다.

이 부부는 10여 년간 북한이 ‘불순녹화물’로 금기시하는 외국영화 등이 담긴 알판(CD), 메모리(USB) 장사를 하며 돈을 벌어온 이들이었다. 대외적으로 남편은 성실한 중구역 보안서 경리과 운전사였고, 아내는 동사무소 여맹(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 초급단체 위원장이었다.

남편 한 씨는 신의주(평안북도), 혜산(양강도), 라선 등 국경 지역에 보안서 공급물자 접수나 외화벌이 업무용 출장을 다니면서 비교적 외부의 영상물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이렇게 그는 10여 년간 물건들을 차에 숨겨 평양에 들어와 몰래 CD리더기나 중앙 24국 및 보위부에 등록되지 않은 노트콤(노트북)으로 복제하고는 다시 국경이나 지방에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넘겨왔다.

그러던 중 수년간 알고 지내던 지방의 도매업자가 밀수품 단속반에 걸려 집 수색을 당하면서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 집에서 복제된 CD와 메모리가 발견됐고, 이후 체포된 도매업자가 앞선을 불어 이들 부부가 제작 왕초로 붙잡힌 것이었다.

이 부부는 바로 특별보안국이 체포해 관리소로 보낸 10대 형제의 부모였다.

이들은 2018년 4월부터 10월까지 6개월간의 예심 과정을 거쳐 그해 11월 교화 1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이들의 집은 중구역 보안서와 인민위원회의 통지에 따라 국가에 몰수됐다. 그렇게 형제는 부모와 집을 한순간에 잃게 됐다.

이듬해 4월 어느 날 자정, 형제들은 부모를 교화소에 보낸 중구역 보안서 예심과장이 살고 있는 만수동의 12층짜리 아파트에 몰래 숨어들었다. 예심과장의 집 현관문은 200달러 가까이 주고 설치한 값비싼 제작문이었는데, 이들 형제는 장마당에서 산 고강도 접착제를 열쇠 구멍과 문틈에 겹겹이 바르고는 ‘알렉스로부터’라고 쓰인 A4용지 한 장을 붙이고 달아났다.

다음 날 아침 예심과장은 열쇠가 돌지 않고 문이 안 열리는 것을 이상히 여겨 급히 보안서 계호원을 불러냈다. 그리고서야 현관문 바깥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차렸다. 이후 이 사건을 보고 받은 보안성은 “법관에게 복수하거나 맞서는 것은 국가에 정면 도전하는 것과 같으니 무조건 잡아내 절대 용서치 말라”고 지시했고, 간부들을 취급하는 특별보안국 수사조도 이 사건에 달라붙었다.

이 일은 ‘사회주의 계급 진지 전초선에 선 보안원의 영상에 먹칠한 반동분자 체포 작전’으로 명명됐다. 특별보안국은 중구역 보안서 예심과장에게 악감정을 갖고 있을 만한 사람들부터 용의선상에 올려 조사했다. 15년형이 선고돼 교화소에 간 부부의 두 자식에게도 초점이 모아졌다.

영화 ‘나 홀로 집에 3’ 중 한 장면.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특별보안국 수사조 책임자는 친척 집에 얹혀살고 있던 형제를 찾아갔다. 정확한 증거가 발견된 것도 아니었고 10대 청소년들이 저지른 일이라 단정 짓기도 어려워 그저 확인 차원에서 그날의 행적을 묻기 위해 찾아간 것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형제 중 형(14세)은 “사건 당일 그 시각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물음에 “예심과장이 우리에게서 부모와 집을 빼앗아 갔다. 그러면 우린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그래서 복수하고 싶어 알렉스처럼 했다”고 답했다. 영화 ‘나 홀로 집에 3’에 등장하는 주인공 ‘알렉스’를 언급하며 접착제를 바른 사실을 시인한 것이었다. 여기에 더해 동생(11세)은 “알렉스만큼 혼내주진 못했어도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복수했다”고 덧붙였다.

특별보안국 수사조 책임자는 이를 그대로 상부에 보고했다. 그리고 보안성은 이번 사건이 호기심 넘치는 아이들의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오랜 기간 불순녹화물로 돈을 벌어온 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사상이 변질된 청소년들의 비사회주의적 행동이라며 엄중한 문제로 다뤘다.

“미제(미국) 영화 속 주인공 소년을 흉내 내면서 자기 부모를 합법적으로 교화 보낸 법관에게 복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철저히 격폐시켜야 한다” “사상 이완과 변질은 청소년 때부터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는 것이 상부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친척 집에서 자고 있던 형제는 간밤에 특별보안국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갔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그 가족들을 통해서 이들 형제가 보안성 산하 관리소에 수용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주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알렉스는 도대체 누구냐” “알렉스는 몇 살짜리 애냐”는 등 알렉스에 대해 궁금증을 쏟아냈다. 보안성은 이 사건을 비밀에 부치려 했으나 이미 퍼진 소문은 걷잡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한동안 주민들 사이에서는 영화 ‘나 홀로 집에 3’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