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외화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공채를 발행했던 북한 당국이 지난달 초 돌연 공채 발행을 중단시킨 것으로 뒤늦게 전해졌다.
결국 공채 발행 정책이 실패로 돌아간 셈이지만 내부에선 평양종합병원 건설이나 당 창건 75주년 기념일 준비 등 당장 필요한 국가 재정을 마련하는 데 다소 도움이 됐다는 평가도 나왔다는 전언이다.
22일 데일리NK 평양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달 초 중앙당 경제부는 내각과 산하 기관에 공채 발행 중단과 관련된 지시서를 하달했다.
지시서에는 ▲국가기관공채 및 국가무역공채 류통(유통) 림시(임시) 중단 ▲국가계획위원회의 재정위원회 중심의 매각분과 재고량 확인 검수 ▲각 기관에 할당된 공채 회수 후 중앙은행에 집결 및 동결 등의 내용이 담겼다. 즉 이미 유통·판매된 공채 분량은 제외하고 나머지는 무효화한다는 것이다.
또한 ‘중앙의 지시에 따라 공채 리용(이용)을 집행한 기관들의 현재 재정 상태를 진단하고 올해 계획량을 조정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이는 정책에 충실히 따랐던 하급 단위의 어려움을 풀어주고 혜택을 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려는 의도다.
이 같은 지시는 지난 8월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경제정책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후 나온 결정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 위원장은 “혹독한 대내외 정세가 지속되고 예상치 않았던 도전들이 겹쳐드는 데 맞게 경제사업을 개선하지 못하여 계획됐던 국가 경제의 장성 목표들이 심히 미진됐다”며 내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기존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실패를 인정하고 새로운 목표 설정 계획을 밝힌 후 중앙당 경제부에서도 공채 관련 계획분에 대한 수정이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공채 관련 지시문에서도 ‘공채 류통으로 인한 년말(연말) 및 래년(내년) 5개년 인민 경제계획에 대한 과제수정을 승인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한다.
북한 당국은 애초 국가 재정을 확충하려는 목적으로 돈주 등 개인 사업자에게 사업권을 주고 외화로 공채를 매입하게 했다. 하지만 공채 발행이 중단된 이상 현실적으로 관련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복수의 소식통을 통해 확인한 결과 북한 당국이 이번에 계획한 공채의 규모는 올 한 해 국가 예산의 0.6%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내부 취재 결과 올 해 예산의 60%를 공채로 발행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으나 이는 소식통이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은 지난 4월 국가기관공채와 국가무역공채 두 가지 형태로 공채를 발행했으며 전체의 60%에 해당하는 국가기관공채는 기관기업소에 현금 대신 발급하고 나머지 40%인 국가무역공채는 돈주들에게 외화로 매입하도록 했다.
지난 8월 중앙당 내부 조사 결과 국가무역공채의 경우 초기 계획의 20%도 매각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됐다고 한다.
당국이 돈주나 개인 사업가들에게 공채 매입을 유도하기 위해 ‘애국 표창’ ‘사업 권한’ 부여 같은 유인책은 물론 강제 할당 조치까지 시행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 셈이다. 결국 이 부분도 공채 발행 중단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내부 평가에서 ‘이번 공채 정책이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며 코로나 사태와 태풍 및 수해라는 예상치 못한 난관 속에서도 당창건 75돐(돌)이라는 큰 행사를 치르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됐고, 시범적이지만 과감한 시도였다’는 목소리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소식통은 “이번 공채는 인민경제 현장의 실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조치였다”며 “하지만 당장 필요한 자금 마련에 임시적으로나마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 만큼 예산 부족 문제가 발생하면 다시 공채를 발행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