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주체사상 연구 6인회, 그들이 꿈꾸던 북한 미래는?

[북한 비화] 김씨 일가 살려두고 개방 방안 연구...결국 배반자 칭송했다는 이유로 정치범수용소行

고(故)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왼쪽)가 1997년 4월 필리핀 항공 전세여객기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 트랩에서 환영객들에게 모자를 벗고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

“사회적 존재인 사람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갖는 존재이며, 객관세계(世界)의 변화발전은 사람을 주체로 하는 운동이다”는 이른바 주체사상을 창조한 고(故)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기리는 인물이 북한에는 존재할까?

현재는 관련 소식이 들리지는 않고 있지만 2003년 황 전 비서가 한국으로 망명한 1997년 졸업반이었던 김형직사범대학 철학부 출신 6명이 관리소(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사건은 아직도 북한 역사에 오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이는 일단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최근 데일리NK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당시 ‘선군정치’라는 명목으로 전군 주요 군사대학, 군관학교 노작강좌에 ‘교원(교사)’를 배치하는 간부 사업을 단행한 바 있다.

즉 김일성종합대, 김형직사범대 등 중앙대학 철학부를 졸업한 주체사상과 주체철학 인재들에게 ‘중위’라는 군사칭호를 부여하고, 군관 양성기지에서 김일성-김정일주의 주체사상에 기초한 혁명역사, 혁명사상을 전파하라는 임무를 부여한 것이다.

당연히 김형직사범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이 6명도 토대가 좋고, 발전성이 있다는 판단에 따라 각 주요 군사대학 및 군관학교에 배치됐다.

이렇게 뿔뿔이 흩어졌지만 마음만은 멀리 떨어지지 않았는데, 주요 원인이 그동안 황 전 비서를 참 용기있고 대단한 분이라 판단, ‘스승’으로 존경했다는 점이다. 바로 이 같은 사실 때문에 이들은 다시 뭉치게 된다.

일단 이들은 졸업 전 논문을 작성할 당시만 하더라도 모두 황 전 비서의 소론문과 집필한 자료, 학계 제출 참고자료들을 바탕으로 학술적 인정을 받게 됐다.

하지만 황 전 비서의 망명으로 중앙당은 바로 그의 강의안까지 인용 및 서술하지 못하도록 지시했고, 그들도 별수 없이 1년 남짓 준비한 주체사상, 주체철학 학사논문(당시 준박사 논문)을 재구성 및 작성해야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 6명의 인재는 황 선생이 그간 발표한 수많은 자료와 학술적 문제를 제외하면 주체사상과 철학이 빈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점을 전문가들로서 더욱 절감했다고 한다.

결국 현장에서의 경험과 사상적 고민을 토대로 이들은 황 전 비서의 망명을 탓하기 보다는 오히려 응원하면서 북한 체제의 본질을 더 파헤쳐봐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에 따라 그들은 군사대학, 군관학교들에서 교원으로 근무하면서도 1년에 2회씩 평양 모처에서 황 전 비서의 주체사상과 철학적 원리 및 북한 사회가 나가야 할 지침을 연구·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6인은 모임에서 주로 핵 폐기와 개혁개방 문제에 직면했을 때 인민들과 상위층, 지도부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와 그에 따른 조선(북한)이 나아갈 미래를 심도 있게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들의 북한 현재의 우려와 미래에 관한 연구 작업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로부터 7년 후인 2003년 여름 어느날 새벽 2시경 이들의 숙소와 살림집에 국가보위성 요원들이 들이닥쳤고 모두 체포됐다.

당국은 1년간의 수사 끝에 그들은 김정일의 비준하에 그 가족들까지 15호 관리소에 수감됐다. “나라에서 돈을 들여 공부시켰더니 국가배반자 황장엽을 칭송하는 모임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황 전 비서의 사상을 심도 있게 연구한 그들이 바라는 북한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당시 그들은 김일성을 어버이로 여기고 하나의 대가정이라는 점을 세뇌했다는 점을 가장 문제라고 여겼다고 한다. 또한 이는 천황을 중시하는 일본과 닮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을 했을 때 일본이 포츠담회담(1945년 7월)에서 천황제를 인정해주면 무조건 항복하겠다고 한 것처럼 ‘김씨 일가를 살려두고 개방하는 방안’을 깊이 연구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개혁개방 이후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면 인민들은 모두 자기들이 체제수호의 도구로 철저히 속아왔음을 알게 되고 그 후과는 엄청날 것이라는 점을 김정은 체계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점도 인지했다고 한다. 즉 황 전 비서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망명이라는 길을 선택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당시 지도부는 어설픈 철학과 사상으로는 수재들의 눈을 속일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을 것”이라면서 “이에 따라 이들을 바로 세상에 격리시켰고, 이후 누구도 올바른 철학을 갖지 못하도록 수령주의를 세뇌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