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청진시 ‘김정일 비난’ 삐라 누가 뿌렸나

2009년 6월 김정일(2011년 사망)이 청진의대병원을 시찰하고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 앞 도로에 “인민들의 피땀으로 살아가는 당중앙은 없어져야 한다”는 내용의 전단이 뿌려졌다. 북한에서 ‘당중앙’은 김정일을 의미한다.


심야에 병원 앞 도로를 가로 질러 20∼30m 간격으로 뿌려진 전단은 바람에 날려 주변 도로와 골목으로 흩어졌다. 북한 일반 공책(16절지 크기) 용지에는 당 중앙에 대한 비난 외에도 “당일군 놈들은 다 죽일 놈들이다” “가만있지 말고 움직여야 한다” “김정일한테 속고 있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북한 당국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만한 내용이었다. 
 
이 전단 때문에 청진시가 아침나절부터 소란해졌다. 주민들은 이 전단 사건에 엮이지 않으려고 전단을 읽고서도 못본 채 서둘러 현장을 떠났다. 신고를 받고 보안원들이 출동해 전단을 수거하기 위해 골목골목을 뒤지기 시작했다.


전단을 뿌린 자에 대한 수사는 청진시 보위부가 맡았다. 오전 8시경에 전단을 읽은 십여 명을 데리고 철수했다. 당시 끌려간 주민들은 전단 내용을 일체 발설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풀려났다. 보위부는 수거한 전단 200여 장이 모두 같은 필적이라는 점에서 정권에 앙심을 품은 자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함경북도 보위부 전체회의도 열렸다. 국가안전보위부 중앙에서는 사건을 해결하는 보위부원에게 ‘영웅칭호’를 수여하라는 지침을 내렸고, 한 달 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해당 도 보위부장은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도 보위부는 모든 정보망을 총동원하고, 청진시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필적조사와 신상파악에 돌입했다.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사람에게는 즉각 정보원이 투입됐다. 


1차적으로 보위부는 종이를 판매하는 장사꾼들 주변에 정보원들을 배치시켰다. 또한 전단 필적을 감정한 결과 작성자가 왼손으로 글씨를 썼다는 판단을 내리고 청진시 모든 주민들에게 오른속과 왼손으로 글씨를 써보라고 직접 지시했다. 


보위부는 전단 내용으로 미루어 오랫동안 체제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50~70대의 소행이라고 보고 수사망을 좁혔다. 또한 200여 장을 하나하나 손글씨로 반복해서 쓴 것을 볼 때 시간이 많은 무직자라는 추론도 내놨다. 


매일 정보원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용의자로 보고됐다. 정보원들이 전단 내용에 대해 ‘그럴 수도 있지’ 식의 반응을 보인 주민들을 모두 신고하면서 용의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보통 한 개 동 담당 보위부원이 50여 명의 정보원을 관리하고 있는데, ‘영웅칭호’를 받기 위해 신분노출까지 불사하며 모든 정보원을 총동원했기 때문이다.


당시 전단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사람은 모두 정보원이라는 판단에 피하는 경향까지 생겼을 정도다. 결국 수사에 혼선만 빚게 됐고, 보위부는 정보원 철수를 지시했다.


결국 사건 발생 이십여 일이 지난 후 청진시 송평구역 보위부에서 범인을 검거하면서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해당 보위부 부장과 반탐과장이 정보원을 통해 ‘나도 삐라를 뿌리려고 했다’는 말을 한 용의자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체포, 고문을 통해 가짜 자백을 받아낸 것이다. 이 용의자에 대한 취조는 6개월 간 진행됐다.


당시 보위부는 그를 물탱크에 넣고 발뒤꿈치를 들지 않으면 숨을 못 쉴 정도로 물을 채워놓고 하루 동안 세워두기도 했다. 이후 도부위부에서 해당 보위부로 자료검토를 하기 위해 내려왔고, 해당 진술서를 확인하는 절차를 밟았다. 이후 중앙 국가안전보위부에 보고가 올라갔다.


그러나 최종심사 과정에서 조사결과가 뒤집히고 말았다. 해당 용의자가 재조사 과정에서 “나는 정보원의 ‘정권에 반감이 있으면 삐라를 뿌리겠는가’라는 말에 ‘그럴 수 있다’고 대답만 했을 뿐인데, 다음 날 체포해 고문하는데 건강도 좋지 않고 너무 힘들어 ‘다 했다’고 대답했다”고 진술한 것이다. 중앙 차원에서 사건에 대한 재심의가 진행됐고, 정보원과 용의자의 대질신문까지 벌였다. 결국 국가안전보위부는 해당 용의자를 무혐의로 결론지었다.


26일 만에 용의자를 체포하고 6개월 동안 취조해 범인을 조작한 송평 보위부장은 직위 해제됐다. 수사 실무를 맡았던 반탐과장은 노동단련대행으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국가안전보위부는 체포됐던 사람을 평생 송평보위부가 책임지고 돌봐주라는 지시를 내리고 철수했다. 결국 전단을 뿌린 사람은 체포하지 못한 채 수사가 마무리 됐다. 영웅칭호에 혈안이 돼 무모한 주민을 체포·고문한 보위부 간부 2명만 해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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