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은 남북관계 ‘새판짜기’ 한해”

2008년 남북관계는 10년만의 정권교체에 따른 이명박 정부의 ‘새판 짜기’와 김정일의 ‘길들이기’로 팽팽한 힘겨루기가 벌어진 한 해로 평가된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에 따라 ‘햇볕정책’이라는 미명아래 지난 10년간 끌려 다니기만 했던 남북관계 재조정은 필연적인 조치였다. 정부 관계자들도 올해를 ‘남북관계 조정 시기’라고 규정했다.

◆이명박 정부 남북관계 ‘새판짜기’ 돌입=정부는 과거 10년간 우리의 노력 만큼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비판적 입장에서 대북정책을 수립, ‘상호주의’에 근간한 원칙적 입장을 보였다. 이에 대해 북한은 반발, 올해 남북관계는 악화 일로를 걸었다.

일단 ‘상생·공영’의 대북기조는 이전 김대중 정부의 ‘화해·협력’,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 정책으로 대변되는 ‘햇볕론’과 접근 방식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북한 문제를 ‘우리민족끼리’라는 ‘민족공조’의 틀에서 벗어나 ‘국제공조’를 통해 풀어간다는 기조 아래 한반도 최대 이슈인 북핵 진전과 연계해 단계별 남북경협 추진을 공약화했고(비핵·개방·3000구상), 인도적 지원을 지속하되 납북자·국군포로 송환 등 우리의 인도적 요구도 관철시키는 ‘호혜적 협력’을 강조했다.

특히 북한을 탈출한 재외 탈북자 문제에 대해 이 대통령이 직접 관심을 표명했고, ‘북한인권 개선 결의안’에 공동 제안국에 참여하는 등 이전 정부에서 침묵하거나 거부했던 북한 인권문제에 목소리를 높였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올해 대북정책은 북한인권 적극적 제기, 핵문제 등의 국제공조 강화, 인도적 지원·경협 등에 관련해 원칙을 지킨 것”이라며 “그동안 북한의 비위를 맞추는데 신경 써 주변국과 협력하는 기회를 상실했던 것을 반성해 볼 때 ‘위기’라고 하기보다는 ‘발전적 반전’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시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北, 6·15 및 10·4선언 이행 주장하며 南 ‘길들이기’ 시도=당연히 북한은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에 냉담한 태도로 일관했다.

남한의 정권교체 시기마다 ‘길들이기’ 전략에 구사했던 북한으로서는 이전 정부와 다르게 ‘원칙’을 앞세운 이명박 정부의 대북 인식에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이는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졌다. 이 대통령이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6·15공동선언, 10·4정상선언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채 남북기본합의서(1991년)를 강조한 다음 날인 3월27일 북한은 개성 남북경협협의사무소의 우리 당국자를 추방하는 것으로 대남 공세를 시작했다.

곧이어 당국간 대화 중단도 선언했다. 표면적으로 김하중 통일부 장관과 김태영 합참의장의 발언 등을 문제 삼았지만 결국 ‘최고 권력자’ 김정일이 서명한 6·15, 10·4선언에 대한 남측의 이행 의지가 없다는 문제 제기였다.

이 대통령이 4월17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서울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두자고 제안했지만 북한은 같은 달 26일 노동신문을 통해 이 제안을 일축했고, 최근까지 김 장관 등이 거듭 ‘대화제의’에 나섰지만 두 선언에 대한 ‘선(先)이행’만 강조할 뿐 비난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남한의 대화 진정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6·15와 10·4선언의 이행만을 강요했다”며 “북측의 주장은 ‘우리민족끼리’가 아니라 충고를 듣지 않기 위한 ‘끼리끼리’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김환석 국가안보연구원 연구원도 “북한은 올해 햇볕정책 지지자들과 개성공단 진출 기업인들을 통해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다른 한편으론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하는 이념갈등을 시도했다”며 “이는 이명박 정부의 6·15, 10·4선언 이행에 대한 정책전환을 압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금강산피살사건’부터 ‘12·1조치’까지, 남북관계 악화일로=이후 남북관계는 두 선언 이행문제를 둘러싼 지루한 신경전 양상으로 전개되다 7월11일 금강산 관광객 고 박왕자 씨 총격 피살사건을 계기로 급랭했다.

정부는 금강산 관광을 즉각 중단하고 우리 당국자의 현장 조사를 통한 진상규명, 재발방지 등을 요구했지만 북은 ‘남측 관광객 책임론’을 펴면서 일체 응하지 않았다.

이어 남·북은 7월말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금강산 사건과 6·15, 10·4선언 관련 문구를 넣고 빼는 문제로 외교전을 벌이기까지 했다.

그 후 약 4개월간 남북관계는 김정일의 건강이상설 확산, 민간단체의 대북 삐라 살포, 유엔 대북 인권 결의안 공동제안국 참여 등 이슈를 거치며 살얼음판을 걷다 북한의 ‘12·1 조치’시행을 계기로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다.

북한은 ‘자유 민주주의 체제하에서의 통일’을 언급한 이 대통령 발언에 대해 11월22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북침전쟁을 최후목표로 선포한 것”이라고 반발하더니 급기야 개성관광 및 경의선 철도 운행 중단, 남북경협협의사무소 폐쇄, 개성공단 상주인력 감축, 육로 통행 제한·차단 등 고강도 남북관계 차단조치를 행동에 옮긴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남과 북은 두 차례 군사실무회담까지 벌였지만 북측이 ‘삐라’문제를 거론하면서 일방적인 남북경협 관련 제한 조치들을 예견하며 위협하기만 했다. 더불어 김정일 건강이 불거졌던 8월 이후 북한의 대남 비방횟수도 한 주에 50~60건 가량으로 늘어났다.

유 교수는 “남북관계가 금강산 피살사건, 김정일의 와병, 북핵문제, 미 대선 등 내외적인 문제로 경색국면이 지속되고 있다”며 “이는 남북관계를 우리 정부의 의도대로 재조정하려는 것에서 북한과의 협력이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남북관계 돌파구 찾을 수 있을까?=출범 초기 북한의 대남 ‘길들이기’ 전략에 따른 냉각기를 겪어 왔던 남북관계는 이같은 북측의 강경조치로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김정일의 돈줄’인 개성공단 만이 유일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남북관계 ‘새판 짜기’를 시도하는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을 경우 이마저도 중단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상황 반전의 전망은 밝지 않다. 출범 당시 지난 10년의 남북관계를 ‘잃어버린 10년’으로 비판하며 정권창출에 성공한 현 정부가 대북정책을 급선회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기간 남북관계가 정상화되긴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특히 북한이 북핵문제와의 협상과정에서 미·북관계정상화를 노리며 ‘통미봉남’ 정책을 우선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도 당분간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올인’할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당분간 북한은 대남관계에서 ‘고자세’를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남북관계의 변화는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북미관계 진전 여하라는 변수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유 교수는 “오바마 정부가 등장해 미국의 새로운 대북정책이 등장하고 남북간 ‘금강산 피살사건’ 등 내부문제가 일단락돼야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 연구위원은 “오바마 정부는 이명박 정부와 상호보완적인 측면에서 대북 접근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장기적 전망에서 남북관계의 ‘새판 짜기’가 불가피하다면 ‘기다리는 것도 때로는 전략’이라는 이 대통령 발언은 시사 하는바가 크다. 정부가 대북정책의 원칙을 견지하고 있는 만큼 당장 2008년 남북관계의 현상적 모습만을 보며 ‘퇴행의 시기’라고 규정하긴 시급한 판단으로 보인다.

박 연구위원은 “단순히 외형적으로 남북 당국자간 관계가 ‘퇴보’ 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조정 과정이었다고 평가된다”고 말했다.

실제 당국간 교류는 ‘꽉 막힌’ 한해였지만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은 지속적으로 발전했다. 남북왕래인원은 11월 기준 지난해 대비 24.8% 증가한 17만5천명이고, 남북교역은 3.7%증가한 약 17억달러 수준이다.

개성공단도 작년 동기 대비 가동기업 수는 11월 기준 88개로 38%증가했고 북측 근로자도 3만7천명으로 74%증가했다. 생산액도 10월 기준으로 2억958만달러로 43%로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연구원도 “원칙과 일관성을 지키면서 유연성을 발휘, 상황관리에 주력한 한 해였다”면서 “당분간 남북한의 접점 찾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원칙을 지키며 북한의 태도변화를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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