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핵실험> 2006년 1차핵실험과 비교

북한이 25일 지난 2006년 10월 9일에 이어 두번째 핵실험을 강행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거듭된 자제 촉구에도 약 2년7개월 만에 강행한 이번 실험은 1차 때보다 강력한 것으로 당국과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정보 당국이 실험 장소인 함북 길주군 풍계리 인근에서 감지한 지진파는 리히터 규모 4.5로, 1차 실험 당시의 3.6보다 강했다. 그만큼 북한의 핵 능력이 향상됐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이번 핵실험이 말 그대로 `핵무기(nuclear weapon)’ 폭발실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북한의 지난 1차 실험을 핵무기 실험이 아닌 `핵장치(nuclear device)’ 실험으로 규정하고 있다.

핵무기 실험 전 단계인 핵장치 실험은 플루토늄 원자들을 핵분열시켜 핵폭발을 발생케 하는데 사용되는 재래식 고폭탄을 폭발시키는 것을 말한다.

러시아의 이타르타스 통신도 이날 북한의 핵실험 규모가 TNT 10~20kt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지난 1차 실험 때는 TNT 1kt 규모였다.

핵장치 실험에서 핵무기 실험으로 한 단계 능력이 업그레이드됐다면, 또 그 실험이 성공적인 것으로 판명된다면 이번 실험으로 인한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핵무기의 효용성은 소형화에 있는 만큼 실질적인 위협의 증가 문제는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북한은 이번에 2차 핵실험을 하면서 1차 때처럼 사실상 예고를 했다.

북한 외무성은 1차 핵실험을 엿새 앞둔 10월3일 성명을 내고 “앞으로 안전성이 철저히 담보된 핵시험을 하게 된다”고 핵실험을 할 것을 공식 예고했다.

이번 역시 지난달 29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4.5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장성명 조치에 대해 `사죄하지 않으면 핵시험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1차 실험은 예고시점으로부터 6일, 2차 실험은 26일만에 단행된 것이다.

하지만 1차 실험 당시에는 북한의 경고 이후 예견된 시점에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했지만 이번에는 유엔의 사과를 핵실험의 전제로 한 대외 위협성 발언의 성격이 강했다.

즉 북한이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염두에 두고 핵실험을 공식 예고한 것으로 본 이들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핵실험은 전격적이고도, 신속한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비록 핵실험을 위한 차량과 장비의 이동은 관찰됐지만 관측시설이 포착되지 않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喪)중이라는 점에서 `전격성’은 더해졌다.

북한이 북핵문제 등에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고 판단하면 위기수위를 조금씩 높이는 벼랑끝 전술을 구사해왔다는 점에서도 1차 핵실험 당시와 유사하다.

1차 핵실험 때는 2005년 9.19 공동성명 도출로 순항하던 6자회담이 북한의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 동결문제가 불거지자 미국의 양보를 얻기 위해 2006년 7월5일 미사일을 시험발사했고 그로부터 96일 만에 핵실험을 단행했다.

이번 역시 6자회담이 장기간 공전되고 남북관계가 날로 악화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월5일 장거리 로켓 발사 실험을 한 데 이어 꼭 50일 만에 핵실험을 했다.

북한이 이번 핵실험 시기를 미국의 현충일 기간으로 정했다는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 북한은 2006년 미국의 독립기념일(미국날짜 7월4일)인 7월5일에 장.단거리 미사일을 일제히 발사, 미국을 자극하고 긴장을 고조시킨 바 있다.

국제사회, 특히 미국의 관심을 끌려는 북한 지도부의 의중이 담긴 핵실험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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