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쓸모있는 바보들’을 위한 진혼곡

▲ 전쟁위협론, 경제지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2005년 한반도 상공에는 ‘평화 우선론’과 ‘경제지원 우선론’이라는 두 가지 유령이 배회 중이다. ‘북한인권문제를 제기하면 평화가 깨진다’고 주장하는 유령과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을 해주는 것이 인권신장에 실질적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유령이다.

먼저 평화 우선론. 좋게 표현하여 평화 우선론이지만, 기실 ‘전쟁 위협론’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이 날 수도 있으니 조용히 있으라”는 협박에 다름 아니다.

외부에서 북한 정권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인권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에 대해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인권문제가 해결된 나라가 없었다”라고 주장한다. 사실 이 주장 자체가 틀렸다. 대부분 나라들의 인권문제 해결과 민주화는 물론 내부 역량이 주축이 됐지만, 외부 지원이 함께 했고, 내부 사정이 극히 열악한 경우에는 외부의 지원이 주축을 이루기도 했다. 남아공이 그랬고,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그랬으며, 최근 레몬혁명(키르기스스탄), 장미혁명(그루지야), 오렌지혁명(우크라이나)이 그랬다. 남한의 인권신장과 민주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백 번 양보해, 외부 압력으로 인권문제가 해결된 나라가 없다는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보자. 그럼 이제, 인권문제를 제기하면 곧바로 전쟁이라도 날 듯 펄쩍 뛰는 그들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인류사에 인권문제를 제기했다고 전쟁이 났던 적은 있었던가? 없다. 그런데 이 무슨 호들갑인가.

전쟁위협론은 對국민 사기극

그들은 지금의 상태를 ‘평화’라고 한다. 그렇다면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전, 다시 말하면 평화우선주의자들이 말하는 ‘한반도 평화의 시발점’ 이전에, 우리는 늘상 전쟁의 폭풍전야 속에 살아왔던가? 남북정권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대치했던 지난 시기에도 우리는 지금보다 특별하게 전쟁의 위협을 느껴오며 살아오지 않았다. 그것이 경제성장과 외자유치의 주된 걸림돌이 되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NLL(북방한계선) 침범을 밥 먹듯 하면서 위협하고, 서해상에서 교전(交戰)이 일어나 수 명의 군인이 사망하기도 했으며,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전쟁의 위기는 감소된 것이 아니라 한층 증가되었다. 그 원인은 북한인권문제 제기 때문이 아니라 김정일 독재정권의 기(氣)를 한껏 살려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치 지난 수십 년간 우리 국민들은 모두가 전쟁의 공포에 떨며 살아왔던 것처럼 기만하고, 자신들은 그런 공포와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구원해낸 선지자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으니 세상에 이런 사기꾼들이 어디 있나.

한국의 역대 정권은 “북괴(北傀)의 침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며 시시때때로 ‘남침위협’을 내세워 그것을 통치의 도구로 삼아왔다. 이런 정권과 맞서 싸웠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는 ‘북한인권 제기하면 전쟁 난다’면서 예의 전쟁위협론을 들고 나오고 있으니 이런 시대착오는 또한 어디에 있는가.

先’식량권’ 後인권 주장은 北 역사 모르는 백치들

다음으로 ‘경제지원 우선론’이라는 유령이 있다.

이들은 크게 두 가지로 말한다. 첫째는 인권보다는 식량권이 중요하니 먼저 식량지원을 해주자는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논리다. 누가 식량지원 하지 말자고 했나? 또 식량지원을 하면서 동시에 인권을 말할 수는 없는 건가? ‘식량권’이라는 표현 자체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조어(造語)이기도 하거니와, 어느 것이 먼저이고 나중이라고 따질 필요가 없는 일에 굳이 선후(先後)를 규정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

인권문제를 제기하면 남북관계가 깨지면서 식량지원이 중단될 수 있다, 그러면 북한 주민들에게 손해라는 논법을 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 남북관계가 소원하던 시기에는 북한에 식량지원을 하지 못했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국제기구를 통한 식량지원은 꾸준히 계속 되어 왔고, 남북관계가 깨어진다 해도 북한에 식량을 지원할 수 있는 방도는 수없이 많다. 거저 준다는데 받지 않을 사람 있는가?

오히려 꼭 남북관계를 통해서만 식량을 지원하려는 굴레에 얽매이다 보니 ‘얻어 먹는’ 북한정권이 기고만장해 날뛰고, ‘확인 받지 않는 공짜 밥’에만 익숙해져 국제기구의 식량분배 확인절차를 받지 않으려 하고 국제 NGO활동가들을 내쫓아 버렸다. 결과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식량권’을 보장해 준 것이 아니라, 북한 정권의 ‘식량을 통한 통제권’을 보장해 준 꼴이 되었다.

경제지원 우선론을 펴는 사람들은 둘째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면 인권이 해결된다, 혹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비로소 인권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

갈수록 엉뚱한 논리다. 그렇다면 못 먹고 못 사는 사람들의 인권은 뒤로 미뤄도 된단 말인가? 특히나 이들이 ‘先경제발전 後민주화’를 내세우던 남한의 권위주의 정권과 맞서 싸우던 사람들이라니, 할 말을 잃게 한다. 과거의 정권과 싸워서 새로운 정권을 잡게 된 사람들이, 결국 지배논리는 과거의 것을 그대로 베껴 사용하고 있다. 사실 박정희가 그들의 스승이며, 전두환이 그들의 어머니이다.

게다가 북한의 인권문제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북한이 먹고 살만한 시절에도 정치범수용소는 있었고, 공개총살은 있었으며, 집회 ∙ 결사 ∙ 거주이전 ∙ 종교 등 일체의 자유는 통제되었고, 이탈자에 대해서 가혹하게 처벌했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북한이 먹고 살기 힘들어지니까 통제의 측면에서 갑작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수십 년 전부터 계속 있어왔던 문제라는 말이다. 북한의 먹는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면 인권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북한 역사에 대한 백치(白痴)들이다.

이러한 유령이 2005년 한 해 동안 한반도를 배회했고, 이미 그 논리적 천박함이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우기면 된다’는 이 정권 사람들 특유의 버릇과 단순 무식한 돌파본능(?) 때문에 계속 지껄여지고 있다. 유령이 갈 곳은 이승이 아니라 저승이다. 2006년에는 무덤으로 들어가길 바란다.

곽대중 논설위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