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럼즈펠드, “北정권 붕괴가 미국의 목표”

지난 2003년 4월 북한, 미국, 중국간 북핵 3자회담을 앞두고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미국의 목표는 북한정권의 붕괴여야 하며 김정일 정권과의 대화는 안된다고 강력히 반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12일 캐런 디 영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보가 발간한 파월의 전기 ‘군인: 콜린 파월의 생애’는 1기 부시 행정부 북핵 정책의 배경을 소개, 관심을 끌고 있다. 다음은 주요 내용.

◇ “부시,北도발에 부드러운 것 싫어해”= 2003년 2월 리처드 아미티지 당시 국무부 부장관이 상원외교위에서 미국의 대북 선제조치를 통한 ‘정권교체’ 가능성을 우려하던 의원들을 진정시키려 “미국이 언젠가는 북한과 직접 대화를 가질 것”이라고 말한데 대해 수일 뒤 부시 대통령은 의원들에게 “그러한 대화는 나의 정책이 아니다”며 부인했다.

백악관은 강경파가 이라크에서 날개를 펴는 사이 파월이 북한에 대해 ‘배반의’ 비둘기 처럼 행동한다고 여겼다. 파월은 “부시 대통령이 가장 싫어하는 일은 북한의 도발 앞에서 부드럽게 보이는 것”이라고 술회했다.

◇ 럼즈펠드 메모= 파월은 2003년4월 3자 회담을 준비하면서 중국측에 “절대로 북-미간 양자 회담은 없을 것” 이란 점을 못박았다.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안보담당 보좌관의 격려로 부시가 중국 지도층과 직접 협의, 3자 회담 약속을 받아내자 럼즈펠드는 일련의 메모를 통해 “미국의 목표는 북한 정권의 붕괴이지, 김정일 정권과의 대화는 아니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럼즈펠드는 자신의 노력이 무산되자 미측 수석대표인 제임스 켈리 국무부 아태 차관보를 강경파인 존 볼턴 당시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파월, “북측과 테이블 대좌는 안돼”= 북한측과 직접 협상을 불허하는 백악관의 원칙에 따라 파월은 켈리에게 “구석에서 북한사람들과 두시간 정도 얘기하는 것은 괜찮지만 절대로 테이블에 마주 앉아서는 안된다”고 지시했다.

협상 지침은 국무부의 책임이었음에도 국방부와 부통령실이 개입, 켈리가 말하는 요점들이 수정되거나 강경하게 바뀌었다.

◇ 보수파, “6자회담 성과없다고 판단해 수용”= 국무부 관리들은 부시 대통령이 6자회담에 동의한 것은 8월초여서 텍사스 목장으로 가던 때였고, 체니 부통령실 요원을 포함한 국가 안보팀의 상당수가 휴가를 갔거나 이라크에 골몰해 있었던 덕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보수파들은 6자 회담이 장애가 많아 별 성과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따라 6자회담을 수용했으며, 체니 부통령은 6자회담을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다른 4개국의 지지 아래 미국이 북한에 협상 불가능한 요구를 개진하는 자리로 여겼다.

◇ 부시, “체니가 말않던가?”= 2004년 2월 제2차 6자회담 당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CVID) 핵폐기를 요구하는 미국에 북한측이 ‘검증가능 하고 불가역적인’ 적대 정책의 포기 약속을 요구하면서 협상이 난관에 부딪쳤다.

켈리로 부터 상황을 보고받은 파월은 북한과 다른 참여국들을 협상에 묶어두기 위해 북한의 이러한 요구에 대해 미국의 입장을 유지하되 외교적 표현을 쓰라고 새 지침을 내린 뒤 저녁 파티에 갔다.

그러나 스티븐 해들리 안보담당 보좌관이 파월에게 전화를 걸어 새 지침에 대해 물어보더니, 그 뒤 체니가 이를 강경한 표현으로 바꾼 뒤 부시의 인가를 받아 켈리에게 내려보냈다.

그 다음날 자신도 모르게 지침이 바뀐 것을 알고 분노한 파월이 백악관을 찾아가 부시에게 다짜고짜 “어제밤에 바쁘셨나요?” 라고 말을 건네자, 부시는 “그들이 말 안하던가?”라고 되물었다는 것.

당시 2차 회담은 공동성명없이 다시 회담을 갖기로만 합의하는 바람에 체니의 지침이 북한측에 전달되지는 않았다.

파월은 부시에게 만일 켈리가 새지침 대로 했다면 6자회담은 끝장났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워싱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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