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핵위기 후 첫 북미대화 백악관 냅킨서 시작

“아니다. (협상) 전술일 뿐이다. 파월 국무장관에게 말해달라. 협상입지를 높이기 위한 전술일 뿐이라고”

북핵 2차 위기가 터진 이듬해인 2003년 1월 빌 리처드슨 미 뉴멕시코 주지사와 한성렬 북한 유엔주재 차석대사간 이틀째 면담을 통해 돌파구 마련을 위한 북미간 첫 비공식 대화가 진행되고 있을 때 북한이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를 선언하자 한 차석대사는 리처드슨 지사에게 이렇게 황급히 말했다고 리처드슨 지사가 최근 발간한 회고록 ’세상 사이에서’에서 밝혔다.

리처드슨 지사는 “파월 장관과 여러 차례 전화 통화 끝에 조그만 돌파구가 마련됐지만 발표는 되지 않았었다”며 ’대북 경제지원 패키지와 안전보장 대 북한 핵프로그램의 검증 가능한 해체’라는 기본틀이 당시 합의됐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미 행정부는 파월 장관이 밀어붙여 처음엔 북한과 양자대화를 승인했으나,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발칵해(went ballistic)” 다자구도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입장이 됐다고 말했다.

리처드슨 지사와 한 차석 대사간 산타페 면담은 한 차석 대사의 휴대폰 전화와 리처드슨 지사의 백악관 냅킨 메모로부터 시작됐다.

리처드슨 지사가 아직 당선자 시절 한 차석 대사로부터 “부시 행정부와 얘기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우리는 대화할 준비가 됐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며칠 후 워싱턴에서 열린 주지사 당선자 연수에 참석한 리처드슨 지사는 백악관 모임에서 냅킨에 북한의 메시지를 적어 앤드루 카드 백악관 비서실장에게 건넸으나, 카드 실장은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후 한 차석대사로부터 거의 매일 전화가 왔으나, 백악관으로부터는 아무 소식도 없이 2주가 지난 후에야 스티븐 해들리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 부보좌관이 전화를 걸어 “심각한 목소리”로 “당신의 냅킨을 내가 갖고 있다”고 말하는 바람에 서로 폭소를 터뜨렸다고 리처드슨 지사는 회고했다.

이어 파월 장관도 전화를 걸어 “우리의 대북 채널이 항상 가동되는 것은 아니니 무슨 생각인지 알아봐달라”고 요청했다.

리처드슨 지사는 한편 자신이 1994년 12월 북한을 방문했다가 미군 헬기 조종사 2명의 송환 협상을 벌였던 일을 회고하면서, 북한을 떠나기 하루전 북한측이 국제전화료로 1만달러를 요구했는데, 그 돈이 한국으로부터 “불가사의하게(mysteriously)” 북한으로 송금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송금 경로가 최근 미 재무부로부터 대북 불법 거래 혐의로 제재조치를 받은 마카오의 북한 주거래 은행인지 아니면 다른 경로인지는 이 책에 설명되지 않았다.

북한은 1996년 간첩죄로 억류했던 한국계 혼혈 미국인 에번 헌지커 석방 협상 때도 벌금으로 10만달러를 요구했었으나, 인질 몸값은 지불하지 않는다는 미 정부 방침에 따라 헌지커 가택연금에 든 ’호텔비’조로 5천달러에 낙착봤다고 리처드슨 지사는 말했다./워싱턴=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