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핵위기 직후 파월 방북추진

우라늄 농축 핵프로그램 개발 문제로 제2차 북한 핵위기가 불거진 지난 2002년말 북.미 협상의 돌파구 마련을 위해 콜린 파월 당시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이 은밀하게 추진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는 10일 제레미 스톤 전 미국과학자연맹(FAS) 회장이 최근 작성한 회고록 `촉매 외교, 평화를 위한 행동 반세기’라는 회고록를 입수,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스톤 전 회장은 1970년부터 2000년까지 FAS 회장을 지내면서 군축, 인권, 외교의 중요성을 주창했으며, 특히 그가 제안해 결실을 본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은 러시아에서 `제레미 스톤 제안’으로 불릴 정도로 군축분야에서 커다란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한때 파월 장관의 방북이 추진됐다는 이런 외교적 일화는 그로부터 7년이 경과한 지금도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북핵문제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조만간 평양을 방문하는 시점과 맞물려 북핵문제 해결의 어려움을 재삼 보여주고 있다.


회고록에 따르면 스톤 전 회장은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을 계기로 제2차 핵위기가 고조된 두달 후쯤인 12월 23일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 담당 차관보(현 국무부 비확산 및 군축담당 고문)와 만나 파월 장관의 방북 추진구상을 논의했다.


이들은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 계획을 위한 해외 물품구매는 물론 흑연감속로 및 폐연료봉의 동결 해제를 연기한다는 조건을 전제로, 파월 장관이 평양을 방문한 뒤 이들 문제를 포함해 북한의 주권, 불가침 조약, 경제활동 불간섭 등 기타 핵심문제들을 논의한다는 이른바 `조용한 제안(Quiet Proposal)’을 마련했다.


북.미가 이런 협상안에 합의할 경우, 양측은 관계증진을 위한 `공동 이니셔티브’를 합의형태로 발표한다는 입장도 정리됐다.


당시 북한은 파월 장관 처럼 고위급 인사의 방북이 어렵다고 판단, 다소 격이 떨어지지만 북한에 우호적인 글을 쓰기도 했던 리처드 아미티지 당시 국무부 부장관의 방북을 희망하고 있었다고 스톤 전 회장은 외교가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스톤 전 회장은 1994년 제네바 합의의 주역인 로버트 갈루치 전 북핵특사에게 이런 구상을 설명해 “반대하지 않는다”는 대답을 들었고, 그의 주선으로 주미 한국, 일본 대사관의 고위 관계자들과 각각 접촉해 긍적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듬해인 2003년 1월 9일 한국을 방문해 한승주 고려대 총장서리(그해 주미대사가 됨)와 조찬을 하면서 `파월 방북 구상’을 설명했고, 한 총장서리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 당선인에게 전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또 그는 윤영관 당시 외교통일안보분과 간사(이후 외교통상장관이 됨)와 만났을 때 윤 간사가 “켈리 차관보와 곧 만날 예정인데, 그 때 이 제안을 얘기하겠다”며 `조용한 제안’의 복사본을 챙겨갔다고 회고록은 전했다.


당시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도 스톤 전 회장의 제안을 반겼으며, 특히 제안에서 한국의 통일부를 미.북 협상 성사를 위한 매개자로 활용하려는 계획에 사의를 표했다. 다만 임 특보는 워싱턴의 대북 매파는 이런 구상에 반대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스톤 전 회장은 전했다.


스톤 전 회장은 자신이 추진했던 구상이 어떻게 무산됐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당시 미국 행정부에서 네오콘이 득세했던 점을 감안할 때 미 행정부 차원에서 현실화할 동력을 확보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스톤 전 회장은 회고록에서 자신이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초청으로 1991년 북한을 방문한 뒤 그의 답방에 필요한 미국 비자발급을 위해 5년간 백방으로 노력한 게 황장엽 망명의 계기가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술회하기도 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