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2일] “북한, 개혁·개방 통해 식량난 해결해야”

▶전날 북한 주민들이 청취한 대북 라디오 방송 중 주요 내용을 소개합니다.

<열린북한방송/2월 11일>

이런생각 인권생각-아기방에 새겨진 ‘불멸의 구두자국’

북한동포 여러분 안녕하세요. 열린 북한방송의 최철민입니다. 요즘엔 지난 8일부터 열린 동계올림픽 소식으로 들썩하지요?

물론 다 알고 계시겠지만, 이번 국제대회는 러시아 소치라는 관광도시에서 열렸는데요. 이달 24일까지 약 18일간 진행되는 대회랍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북한이 참가하지 못해 정말 서운하더군요. 아마 국제경기조직위원회로부터 참가자격을 박탈한 것 같은데 자세한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이번만이라도 꼭 참가시켰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북한이 그동안 체육 사업에 어지간히 품들이여 왔다는 말은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죠. 특히 김정은은 스키장 완공을 위해 마식령 속도라고 하는 속도전 봉화를 높이 들고 부지런히 현지지도하지 않았나요? 김정은이 스키 발전을 위해 무지 고생을 했는데 국제경기에 참가시켜 빛을 보게 했더라면 오죽 좋았으랴 하는 아쉬움이었지요.

아무튼 4년 뒤에 동계올림픽이 다시 열리는데 그 장소는 바로 마식령 코앞에 있는 남조선 강원도 평창이니깐 그땐 북조선 선수들이 꼭 방문하기를 기대할게요.

자, 그럼 동계올림픽 이야기는 다음번으로 미루고 오늘은 조선중앙텔레비전에 소개됐던 이른바 ‘김정은 원수님의 하해 같은 어버이 사랑’ 이야기를 다뤄볼까 해요. 지난 4일이었지요? 아동보육시설인 육아원을 찾았다는 김정은의 행보 소식 말이지요.

듣기만으로는 정말 눈물겹고 감동적인 소재지만 사진을 보면 왜 불쾌하길 짝이 없는 걸까요?

네, 다름 아니라 김정은의 구두 때문이죠. 아이들의 보금자리와 같은 노란 장판 바닥에 검은 구두를 신고 성큼성큼 들어선 김정은과 그 앞에 같은 모양을 하고 주렁주렁 서 있는 수행원들을 보셨지요?

세상 사람들은 처음 목격하는 사진이라 깜짝 놀라서 난리인데 방안에 앉아 직접 당한 그 어린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충격이 크겠어요.

제가 보기에는 꽃 양말을 신고 방바닥에 귀엽게 앉아있는 어린것들의 그 초롱초롱한 눈빛은 마치 ‘어버이 원수님 이러시면 정말 안 되는데…’ 라고 애원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김정은은 왜 구두를 신고 방안을 오락가락했을까요? 새해 벽두부터 쉴 새 없이 군부대를 시찰했다고 떠들던데 그 과정에 혹시 양말이라고 꿰진 건 아닐까요?

아니면 4년 전엔 ‘발걸음’이란 노래를 북한 전역에 보급하며 난리더니 이번엔 ‘발자국’이란 새로운 노래 음반을 내려는 건 아닌지 진짜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요.

약삭빠른 아첨쟁이 창작가들을 시켜 방바닥에 찍힌 구두 자국을 놓고 ‘사랑의 서사시’를 지으려고 꼼수 부리는 것은 아니겠지요.

저는 구두 신고 어린이집 방안에 서 있는 김정은의 그 몰골을 보는 순간 이전에 북한에서 보았던 조선기록영화 ‘현지지도 길 우에 새겨진 불멸의 자욱’이란 영화장면들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2000년대 말이었지요. 대홍단군의 새 주택 마을을 방문한 김정일이 진눈 묻은 신발을 그대로 신은 채 신혼부부 방에까지 올라가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그 충격적인 장면 말이죠.

당시 아나운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제대군인 신혼부부와 함께 기념촬영까지 하시어 대를 두고 길이 전할 고귀한 온정을 베풀었다고 목메어 외쳤지요.

하지만 그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김정일이 신발을 벗게 되면 집주인보다 키가 작아서 굽 높은 신발을 그냥 신고 있었을 거라고 귓속말로 소곤소곤 비하했었지요.

그러나 아무리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남의 집 방안에까지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건 진짜 아니잖아요.

그래요. 그러한 옛 기억이 생각나기에 김정은의 이번 행실을 보면서 역시 ‘그 아비에 그 아들’이란 말, 또 ‘웃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말이 맞는구나, 바로 저런 인간들을 두고 하는 말이로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새삼스레 느끼게 됐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북한에선 저러한 행동들이 얼마나 보편화 됐으면 이처럼 편집도 하지 않고 그대로 거리낌 없이 방영했겠느냐는 생각에 수치감이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지난해만 해도 담뱃대 김정은이라는 비난을 얼마나 받아왔나요.

병원의 입원실과 농구경기장, 그리고 남녀노소 대상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가는 곳마다 담배 연기를 내뿜는 김정은의 행동을 놓고 국제사회가 얼마나 비난했느냐 말입니다. 한국에서는 이 같은 행동을 두고 ‘싸가지 없다’고 말하지요.

저는 김정은에게 국제사회의 비난과 한국 언론의 돌직구 기사를 놓고 최고 존엄 모독이다, 응징하겠다며 열 올릴 것이 아니라 편집이라도 좀 잘 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조금이라도 자각했더라면 구둣발 김정은이란 비난이야 면할 수 있지 않느냐 말입니다.

그리고 또 김정은은 이번 어린이 보육시설 방문 끝에 ‘어린이는 나라의 왕’이라면서 아기들에게 물고기와 곶감을 먹이라고 지시했다면서요. 정말이지 이처럼 세심한 어버이 사랑이 이 세상 또 어디에 있겠어요.

물고기를 먹어본 경험이 없는 아이들에게 배탈이라도 생길까 봐 곶감을 약처럼 먹이게 한 그 민간요법이야말로 신통한 구급 대책인가 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어쩌다가 곶감을 먹는 아이들에게 변비라도 생길 땐 또 뭘 먹여야 하는지 또 어떤 민간요법이 필요한지, 한마디 더 하고 가실 걸 그랬습니다.

어린이가 나라의 왕이란 말은 김일성집권시기부터 벌써 수십 년간 귀에 못 박히도록 들어왔던 말이었지요.

할아버지가 염불처럼 외워왔던 그 말이 손자 김정은 대에까지 그대로 이어졌지만, 구둣발로 어린이 방에 들어간 김정은이야말로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르지 않나요.

며칠 전 한국에서 윤진숙 해양수산부의 여성장관이 전격 해임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장관은 북한의 당중앙위원회 부장급이지요.

해임 원인은 여수에서 발생한 기름 유출 사고와 관련하여 현장에 나간 윤장관이 상황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코와 입을 막았다는 이유입니다. 불행하게도 이 장면이 사진에 찍혀 신문에 게재된 거죠. 본인은 독감이 걸려 기침을 하는 과정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될까 봐 우려되어 코와 입을 막았다고 해명했었지요.

하지만 기름 냄새 때문에 코와 입을 막았다는 신문기사와 여론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기름 유출 1차 피해자는 기름 회사라고 말한 것이 또 빌미가 되어 결국 쫓겨나고 말았답니다.

기름 손실을 본 회사가 비록 수십억 달러의 자금 손실피해를 봤다 하더라도 바다와 공기 오염으로 그 주변 주민들이 1차 피해 대상이라는 강한 질타를 받고 더는 배겨내지 못한 거죠.

이처럼 한국과 같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장관 정도는 물론이고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김정은처럼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찍히거나 못마땅한 표정으로 국민을 대한다면 영락없이 탈락입니다. 이것이 바로 독재사회와 자유민주주의사회의 서로 다른 판이한 차이점이라는 겁니다.

김정은이 진정으로 아이들을 사랑했다면 온종일 방바닥에서 놀고 있을 그들의 보금자리에 감히 구둣발로 올라가진 않았을 겁니다.

이처럼 인간에 대한 초보적인 상식조차 갖추지 못한 인간을 두고 사랑 얘기는 더 이상 꺼내 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북한동포 여러분, 오늘은 여기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열린 북한방송의 최철민이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자유조선방송/2월 11일>

논평-식량난이 제국주의 탓이라고?

김정은이 지난 6일 전국 농업부문 분조장대회에 식량난이 제국주의자들의 압력과 제재 때문이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습니다. 분배에서 평균주의를 벗어나야 한다고 밝힌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식량문제는 이것만 가지고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문제를 정확히 바라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해결책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먼저 식량난의 원인부터 잘못 짚었습니다. 제국주의자들의 압력, 제재와 북한의 식량난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60년대 이전부터 자립적 민족경제노선에 따라 주체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제국주의 때문에 농사를 망쳤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오히려 북한에서 식량난이 발생하자 당국에서 외면하는 인민들을 도와주기 위해 식량을 보내줬던 게 바로 서방국가, 즉 저들이 말하는 제국주의자들이었습니다.

식량난이 발생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첫째는 농민들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린 협동농장체제에 있습니다. 이는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사회주의 국가들의 공통적인 문제였습니다. 둘째는 잘못된 농업정책인 주체농법 때문입니다. 산의 나무를 베어내고 논과 밭을 만들어 식량 생산을 늘리겠다는 발상은 결국 해마다 큰물피해를 입게 했습니다. 셋째는 고립과 폐쇄로 인한 기술과 비료, 농기구 같은 원자재 부족입니다. 농업도 산업이기 때문에 다른 경제부문과의 연관성이나 외국과의 기술적 교류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스스로 고립을 택하면서 산업이 무너졌고 결국 농업도 그 영향을 받아 식량난을 불러왔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간단합니다. 첫째는 협동농장체제를 없애야 합니다. 분조단위를 잘게 쪼개고 평균주의를 없애는 것도 조금 효과는 있겠지만 결국 개인 농을 도입하지 않는 한 식량 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없습니다. 둘째로 주체농법을 과감히 폐지하고 외국, 특히 한국의 우수한 농업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셋째,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를 살려 농업부문에 필요한 비료나 농기계를 확실하게 보장해야 합니다.

물론 껍데기밖에 안 남은 사회주의를 어떻게든 지키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양손에 떡을 쥔 채로 컵의 물을 마실 수는 없습니다. 가당치도 않은 남 탓을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농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방안을 내놓기를 충고합니다.

<북한개혁방송/2월 11일>

북한인권특강-납북자의 인권2

북조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북조선 측이 납치해간 남조선 인사들의 인권문제와 관련해 함께 생각하며 말씀 나누고자 합니다.

돌이켜 보면 북조선은 6·25전쟁 시기에는 말할 것도 없고, 1953년 휴전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남녘 동포들을 납치하는 비인도적·반민족적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휴전 이후 북조선에 납치된 남녘 사람은 총 3,835명이고 이들 납북자 중 일부가 교육수준, 신체건강 등 활용도를 고려하여 본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북에 억류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납북자 중 3,310명(86.5%)은 납북 이후 6개월부터 1년 이내에 귀환하였고, 8명은 2000년 이후 북조선을 탈출해서 귀환하였으나, 2012년 말 기준 ‘전후 납북자’ 517명이 북조선에 억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북조선 측이 납치한 남측 인사의 피랍 당시 상황을 보면 어로작업 중이던 어부가 3,729명으로 가장 많고, 그래서 미귀환자도 458명이나 됩니다. 그다음은 KAL기 탑승자 즉 1969년 강릉에서 서울행 대한항공 여객기를 탔던 승객과 승무원 50명 중 미귀환자 11명이 그들입니다. 나머지는 군경이 30명이고 해외에서 납치된 남녘 사람도 20명에 미귀환자가 12명이나 됩니다.

그들 억류자를 시기별로 보면 1968년, 한해에 133명으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은 1972년의 67명, 1967년의 52명, 1970년의 36명, 1977년의 28명 순입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에는 대체로 각각 1명 정도씩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조선 측은 그러한 납북 사실을 부인하고 ‘자신들의 의사에 따라 북조선에 입국한 의거 입국자’ 또는 ‘북조선에 남아 살기를 희망한 자’라는 이유로 납북자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면서 한국 정부의 논의 제의를 거부해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북조선에서는 납북자들의 인권을 침해함은 물론, 자기들 마음대로 납북자들을 이용하고 있다 합니다. 납북자 가운데서 대한항공기의 여자 승무원 등 일부는 대남방송이나 간첩교육에 활용하고, 남자 승무원들 역시 남파간첩을 훈련하는 교원으로 이용됐다는 것입니다.

한편 1993년 북조선에서 탈출한 사람의 증언을 따르면 납북자 가운데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20여 명이 평양 용성구역에 있는 이른바 ‘이남화 혁명관’이라는 곳에 배치되어서 남파간첩을 교육하는 교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남화 혁명관’이라는 것은 남파간첩 양성기관인 중앙당 3호 청사 내 작전부가 관할하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 (1992년 개칭) 출신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실상과 한국에서의 생활방법 등을 훈련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축소된 한국모형관이라고 합니다.

서해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납치되어 북조선에 억류되었다가 2000년 6월에 탈출한 납북어부의 증언에 따르면 납북된 어부들 가운데 일부는 일정한 교육을 받은 뒤 대남사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그 자신도 대남 간첩교육을 받은 바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이용가치가 없는 나머지 납북자들은 한때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러한 사실은 국제앰네스티 즉 국제사면위원회라는 인권단체의 1994년 보고서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한편 남측은 2005년 8월(23~25일)의 제6차 남북적십자회담과 그해 9월(13~16일)에 열린 제16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시범 생사확인사업 등 납북자 문제와 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지속적으로 촉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북측은 생사확인 대상을 군인, 민간인 구분 없이 ‘전쟁 시기 행불자’로 한정하여 실시하고, 일반 이산가족 상봉행사 시 생사확인에 포함하는 포괄적인 방식을 주장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남과 북은 2006년(2.21~23)의 제7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이산가족 문제에 ‘전쟁 시기 및 그 이후 시기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에 대한 생사확인문제를 포함해 협의‧해결해 나가기로 공식 합의함에 따라 전후 납북자 문제가 남북 간 공식 의제로 다루어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어떻든 그러한 합의는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 합의가 반드시 지켜지고 제대로 이행되어서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하루빨리 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2009년 9월(9.26~10.1) 금강산에서 개최된 ‘2009년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 때 생사확인을 의뢰한 전후납북자 12명 중 생존이 확인된 납북자 2명만이 남측 가족과 상봉했을 뿐이고, 2010년 이산가족 상봉행사 시에도 전후납북자 11명의 생사확인이 북측에 의뢰되었으나, 전원 확인 불가능 통보를 받았습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납치 행위는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납치되어서 북조선에 남아 있는 남녘 사람들은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북조선 당국은 납치 사건의 재발을 막고, 그러한 만행을 저지른데 책임 있는 자들을 처벌해야 마땅합니다. 또 납북자는 즉각 돌려보내야 합니다. 다음 이 시간에 이어서 말씀 나누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