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에는 태극기가, 후미에는 ‘구출! 통영의 딸 국토대장정’이라고 적힌 노란깃발이 펄럭인다. 사흘째 대장정을 함께 하면서 몸은 갈수록 무거워져 온다. 그때마다 대장정단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감동어린 목소리는 다시금 힘을 싣는다.
‘통영의 딸’ 신숙자 씨의 고향 경상남도 통영을 출발해 690km를 걸어서 오는 12월 11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서 종단식을 갖는다. 북한에서 김일성 우상화를 위한 ‘배움의 천리길’에 참가, 한반도 반쪽을 종단해 본 경험이 있는 기자로서 이번 대장정은 그 목표 이외에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기회였다.
첫째 날은 몰랐는데 이틀째 되는 날 부터는 발바닥이 아파왔다. 유엔에 신숙자 씨 모녀를 구출해달라고 청원하기 위한 엽서를 나눠주느라고 여기저기로 뛰어다녀서 무릎이 많이 아팠지만 묵묵히 선전활동을 하는 대장정 단원들의 모습에 말을 하지 못했다.
발에 물집이 많이 생겨 절면서도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만나는 이들, 김정일 독재 하에서 억류되어 있는 그들을 꼭 구해주고 싶은 마음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이 신숙자 모녀의 고통을 알고 함께 아파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힘들지만 임진각까지 가겠다는 의지로 걷는다고 말할 때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다.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다. 비록 사흘간의 구간 참여지만 나는 북한에서 김일성의 우상화 교육인 ‘배움의 천리길’을 걸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인간사랑, 나라사랑을 배우며 걷고 있다.
그래서 단원들도 ‘배움의 천리길’ 답사행군에 참가했던 탈북자가 국토대장정에 참가한 소감이 어떠냐고 자주 물어왔다. 그때마다 “한 마디로 이번 국토대장정은 정의롭고 의로운 일이며 또 불의와 맞선 정의의 실천이다. 대장정에 2만여 명의 탈북자들이 몸과 마음을 하나로 합쳐 함께 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걷는다”고 답했다.
데일리NK 기자로 취재하려는 이유도 있지만 독재정권의 억압 속에서 신음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현재 요덕수용소에 수감 중인 신숙자 모녀를 구출하는 의로운 일에 참여함으로써, 그들의 송환이 하루빨리 이루어지는데 자그마한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대장정에 함께 하는 단원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나눈 이유다.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바쁘게 사는 북한에서는 이 같은 대장정은 꿈조차 꾸지 못한다. 대장정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신숙자 씨 가족이거나 친척, 또는 인연이 있는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말로만 ‘인간중심의 사회’, ‘사람을 가장 귀중히 여기는 나라’라고 대외에 선전하지만 주민들 사이에선 ‘남의 죽음이 내 감기보다 못하다”는 말이 도는 이유다.
김해에서 만난 한 시민은 탈북자인 내가 대장정을 걷는다는 말에 두 손을 꼭 잡고 “장하다”며 “부끄럽다. 끝까지 좋은 결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말에 괜스레 으쓱해지는 내 모습에 흐뭇하기도 했다.
엽서를 나누어줄 때 시민들 모두가 관심을 가져주는 것, 주변 사람들에게도 주겠다며 엽서를 더 달라던 어르신들, 꼭 구해내라며 어깨를 다독거리는 그 분들. 사흘간의 짧은 구간 참여자인 나를 오히려 부끄럽게 하기도 했다.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돌아오는 나에게 마지막 완주를 다짐하며 환하게 웃음 짓는 단원들에게 ‘건강해라. 임진각에서 보자’고 짧게 인사한 뒤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사흘이라는 짧은 기간에 정의와 불의, 사랑과 증오, 인내와 배려를 배울 수 있었던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통영의 딸’을 끝내는 구해내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인 대장정이 국민들의 뜻을 하나로 결집시켜 마침내 신숙자 모녀를 우리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