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현대듀크-北만폭호 충돌 전말

1999년 3월31일 인도양에서 발생한 현대상선 소속 대형 컨테이너선 현대 듀크호와 북한의 시멘트화물선 만폭호간 충돌 사건은 듀크호가 정상항로를 운항 중 만폭호가 항로를 가로지르며 일어난 것으로 당시 언론에 보도됐었다.

사고 현지시간으론 오후 6시20분께. 날도 그리 어둡지 않았고 기상상태도 양호했다는 게 당시 듀크호의 보고 내용.

듀크호는 5만2천t급, 만폭호는 3천300t급. 남한과 북한 선박이 공해상에서 충돌한 첫 사례였고 현대상선이 대북 금강산 관광사업을 하던 현대계열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었다.

특히 듀크호는 뱃머리 왼쪽에 가벼운 손상뿐이었지만, 만폭호는 침몰해 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39명 중 2명만 구조되고 37명은 실종되는 대형 인명피해가 남으로써 주목받았다.

그러나 선원 숫자는 추정치였지 확인된 것은 아니었으며, 스리랑카와 인도의 구조선박들도 실종자들의 흔적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도됐다.

당시 한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공해상은 물론 연안에서도 선박끼리의 충돌사고가 자주 일어났지만 대부분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다”며 선박충돌로 “선박이 침몰하거나 선원이 사망하는 사고는 흔한 사례가 아니다”고 말한 것으로 연합뉴스는 이튿날 보도했었다.

데이비드 애셔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담당 선임자문관에 따르면, 사고가 아닌 북한의 ’고의 충돌 및 폭파 침몰 사건’의 보상 등 수습은 이듬해 1월 듀크호와 만폭호 양측의 보험사간 600만달러 지급 합의로 일단락됐다.

현대와 북한측간 보상 협상 과정에서 현대는 보험사끼리 처리토록 하자는 입장이었으나, 북한은 많은 희생자가 났는데 “동포애가 없는” 처사라고 반발하며 현대와 북한측간 직접 협상을 요구해 논란이 일었다.

이 때문에 그해 5월 현대의 금강산 관광선 풍악호의 장전항 입항 금지, 6월 금강산 관광객 민영미씨의 억류 등 사건이 북한의 만폭호 보상 요구와 관련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었으며, 국회에선 민영미씨 석방과 만폭호 보상간 관계에 대한 추궁도 이뤄졌다.

그러나 애셔 전 자문관이 18일 미 의회 청문회에서 주장한 ’북한의 고의 충돌 및 폭파 침몰’ 가능성은 공개 제기되지 않았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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