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번째 군부쿠데타…태국 민주주의 미래는?

탁신 칫나왓 태국 총리가 결국 군부 쿠데타를 통해 실각하게 됐다.

태국 군부 쿠데타 지도부인 ‘민주개혁 평의회’는 20일 푸미폰 아둔야 뎃 국왕이 쿠데타를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유엔총회 참석 차 뉴욕을 방문했던 탁신은 저항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실각하고 말았다.

쿠데타는 19일 밤 8시에 단행되었으며 다음날 푸미폰 국왕은 무혈 입성한 쿠데타 세력의 정권장악을 추인하였다. 쿠데타 세력은 성명을 내고 국왕을 알현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성명에서 국왕은 “공무원과 국민 모두 쿠데타 지도부의 지시를 따르라”고 지시했다.

또한 성명은 쿠데타 단행의 이유로 탁신 총리의 국민 분열 조장, 부정 축재, 권력 남용, 국왕에 대한 존경심 결여 등을 꼽았다. 이어 “탁신에게 부여한 권력을 거두어 들인다”는 국왕의 말을 전했다.

‘국왕은 곧 국민’으로 통하는 태국에서 국왕이 쿠데타를 승인한 것은 쿠데타의 성공을 의미한다. 불교 국가인 태국에서 국왕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국왕이 거리에 나서면 국민들은 땅에 엎드려 절을 하고 공손히 두 손을 모은다.

국왕은 국가 운영에 직접적인 어떤 권력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태국에서 국왕을 거스르는 일은 국민을 거스르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푸미폰 국왕은 국민들에게 ‘살아있는 부처’로 추앙되고 있다.

쿠데타 세력도 대외적으로 ‘국왕’과 ‘민주주의’를 위해 쿠데타를 결행하였다고 강조했다. 자신들을 국왕의 군대로 칭하면서 탱크의 포문에 국왕을 상징하는 노랙색 리본을 달았다. 쿠데타 세력의 선전 방송은 국왕의 찬가를 시종 배경음악으로 깔고 있으며, 국왕을 칭송하고 국왕에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들을 앞세우고 있다.

쿠데타의 주역은 육군총사령관 손티 장군이다. 쿠데타 세력은 자신들을 국왕에 충성하며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민주개혁평의회’라 칭하였다. 손티 장군은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역쿠데타에 대비, 전군에 주둔지 이동 금지령을 내렸다.

푸미폰 국왕 쿠데타 권력 인수 공식 인정

태국 의회 건물을 장악하고 상·하원을 해산하였으며 헌법재판소도 해산하고 헌법 중지를 선언하였다. 20일을 공휴일로 지정하였으며 모든 관공서와 학교를 폐쇄하고 국민들에게는 5명 이상 모이는 집회를 불허했다.

쿠데타 세력은 탁신의 최측근인 치타이 와나사팃 부총리와 탐마락 이사라구라 나 아유타야 국방장관을 신속하게 체포했다. 동시에 4개 권역 군사령관들에게 지방행정 권한을 부여하고 지방의회를 비롯한 모든 공공기관은 군사령부의 지시를 따를 것을 명령하였다.

라디오와 TV를 장악한 군부는 모든 정규 방송을 중지시킨 채 선전 방송을 내보냈다. 밤 10시를 기해 민영 및 국영 방송국은 쿠데타 세력이 작성한 자막을 반복적으로 방송하기 시작했다. 내용은 탁신 총리의 결격 사유와 쿠데타의 불가피성, 국민 동요를 제어하는 선전문구로 가득찼다.

국왕에 의해 정식 임명되었음을 공언한 민주개혁평의회 의장 손티는 자신은 2주간만 임시 총리를 맡을 것임을 밝혔다. 다음 달 초까지 임시헌법 초안을 마련할 것이며 그 안에 새 의회가 구성되고 새 총리도 임명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향후 1년 내에 민주주의를 회복한 후 내년 10월 경 다음 번 총선을 치르겠다고 공언했다.

쿠데타가 발발할 당시 탁신은 태국을 떠나 뉴욕에 체류 중인 상태였다. 쿠데타 소식을 접한 탁신은 밤 9시 15분 경 TV 연설을 통해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불법적인 군의 이동을 중지할 것을 명령하였다. 또한 손티에게 국방장관 앞으로 출두할 것을 명령하였다.

탁신 추종하는 관료들도 결국 떠나

그러나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군부의 우세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최측근 부총리와 국방장관은 이미 연행된 상태였으며 평소 탁신을 추종하던 관료들도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쿠데타 소식을 접한 국민들도 이상하리만치 잠잠했다. 총 한방 쏘지 않고 군부는 수도를 완전 장악했다.

탁신의 복권 가능성은 태국민들의 관심에서 한층 멀어져갔다. 탁신은 결국 몰락하고 마는가. 탁신은 놀라운 이력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그는 경찰관이었으나 통신 사업에 뛰어들어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가 설립한 시나와트라 그룹은 태국에서 1위는 물론 세계 굴지의 통신 재벌이 되었다.

탁신은 정치적으로도 뛰어난 수완을 발휘했다. 1998년 신생정당을 만들어 2001년 총선에서 집권정당이 되었으며 2005년 재선에 또다시 승리함으로써 태국 역사상 최초로 4년 임기를 채운 총리이자 재선을 달성한 총리가 되었다. 그는 태국을 IMF 관리 체제에서 탈출시켰다.

이처럼 성공가도를 달려온 그가 정치적으로 위기를 맞은 것은 재선에 성공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작년 말 경부터였다. 탁신은 독선적이고 독단적인 통치 스타일로 그동안 정적을 많이 만든데다 그의 개인 비리 문제가 부상했다.

결정적으로 탁신 일가 소유의 대기업을 싱가폴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20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차익을 보게 되었으나 태국 정부에 세금 한 푼 안낸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분노한 국민들은 야당까지 가세해 탁신 퇴진 운동에 불을 지폈다. 탁신은 국민들의 원성에 밀려 의회를 해산하고 4월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야당은 총선 연기를 주장하였고 탁신은 이를 무시, 야당의 보이콧 속에서 총선을 강행하였다. 결과는 57% 지지로 탁신 당의 승리였다.

탁신은 성난 민심이 가라앉지 앉자 차기 정부에서 총리직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야당은 선거 무효를 주장하여 장외투쟁을 계속 진행했고, 헌법재판소가 총선 무효를 판결하였다. 5월 23일, 약 두 달 만에 탁신은 자신의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총리직에 복귀하였다.

탁신은 10월 15일 재선거를 치르겠다고 발표하였으나 푸미폰 국왕은 조속한 정국 안정이 필요하다며 7월 말 실시를 요구했다. 탁신이 국왕의 요구를 묵살한 가운데 7월 들어 쿠데타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군부 세력의 무혈 입성 후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는 국민 84%가 쿠데타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굴지의 재벌 회장이었지만 농민과 빈민, 노동자 등 서민층의 두터운 지지를 받았던 탁신에게 민심은 매정하게 등을 돌리고 말았다.

부정축재 의혹으로 국민의 반감을 산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면 총리 사임과 재복귀 과정에서 보여준 약속 번복은 국민감정을 크게 악화시켰다. 게다가 헌법재판소의 총선 무효 판결에도 불구하고 일정을 늦추며 국왕과 대립하는 무리수를 둠으로써 끝내 군부 쿠데타라는 극단의 파행을 맞고야 말았다.

이번 쿠데타는 태국에서 19번째다. 1992년 민주화 시위로 반복되는 군부 쿠데타를 좌절시켰지만 14년 만에 쿠데타가 재발한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이를 지지하고 있다. 탁신에게 큰 문제가 있다고 해도 군부가 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관행이 반복된다면 태국 정국은 또 다시 혼미해질 수 밖에 없다. 군부 쿠데타가 태국 민주 정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종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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