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개월 통일장관 마감한 정동영

30일 종무식과 함께 통일부 장관직을 떠난 정동영(鄭東泳) 장관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18개월을 보냈다.

그는 이날 종무식에서 지난 1년 6개월 간을 “빛과 그림자가 교차했고 좌절과 희망이 교차하기도 했다”고 표현, 파란만장했던 장관 생활을 회고했다.

작년 7월 취임 때만 해도 순탄할 전망이던 그의 장관 생활은 1주일 만에 고(故)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 문제가 불거지면서 초반부터 힘든 하루 하루를 보내야 했다.

설상가상 격으로 미 하원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되고 탈북자 468명이 두차례에 나눠 입국하면서 8월 3일로 잡혀 있던 그의 남북회담 데뷔전인 제15차 장관급회담마저 무산됐다.

취임 직후부터 데뷔전을 준비하느라 북한 공부와 회담 준비를 위해 매일 남북회담사무국을 찾고 선배 장관들에게도 조언을 구하는 노력도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그 해 9월까지 열기로 한 제4차 북핵 6자회담마저 무산되면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까지 겸한 그는 남북회담과 6자회담의 동시 재개를 목표로 전력투구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난 구정 연휴 끝 무렵인 2월 10일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고 6자회담에 나가지 않겠다고 하면서 상황은 더욱 암울해 졌고 열린우리당의 4.30 재.보선 참패 이후에는 당 조귀복귀론까지 들어야 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그는 작년 12월 말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 중국 고위급과 6자회담 재개 방안을 협의하는 한편, 북한을 상대로는 대남책임자인 림동옥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에게 대화재개를 촉구하는 서신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시마네현(島根)현 의회의 조례 제정을 비롯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불거지자 지난 3월 NSC 상임위원장으로 직접 마이크를 잡고 ‘제2의 한반도 침탈’로 간주하고 강력 대처한다는 ‘대일 신(新)독트린’을 발표, 이목을 집중시켰다.

정부의 대북노력은 지난 5월 비로소 남북차관급회담이 재개되면서 빛을 보게 됐고 그간의 구상은 행동으로 하나 하나 옮겨지기 시작했다.

정 장관은 30일 종무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6.17 면담과 제4차 2단계 6자회담 결과물로 9.19 공동성명이 나오던 순간을 꼽았다.

6.17면담을 통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2005년 6월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5시간 가까이 만나 북핵에 대한 입장을 듣고 6자회담 복귀의사 등 다양한 합의까지 이끌어내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고 그 직후 열린 제15차 장관급회담에서는 밀린 숙제를 한번에 해치웠다.

또 9.19 공동성명을 통해서는 취임 때부터 밝힌 냉전 해체에 대한 구상을 담아낼 수 있었다는 점에 그는 의미를 두고 있다. 더욱이 9.19 성명이 산고를 겪을 때는 제16차 장관급회담 참석차 평양을 방문,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았다.

정 장관은 30일 종무식에서 그간의 성과로 개성공단과 남북관계발전법을 들었다.

그는 “취임할 때 개성을 통해 냉전의 벽을 넘자는 비전을 제시했다”면서 취임 직후 허허벌판이던 개성의 변화된 모습을 강조한 뒤 “개성공단은 남북 화해협력사에서 가장 실리적이고 실질적이며 장래성 있는 사업”이라고 확언했다.

이 달초 국회에서 통과된 남북관계발전법에 대해서는 국가보안법과 비교해 신법이 구법에 우선한다며 “국가보안법 시대의 터널을 빠져나오게 된 것”이라고 평가한 뒤 “북한을 정치적 실체로 인정함에 따라 정부의 대북정책은 국민적 합의와 법적 안정성의 기반 위에 추진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종무식 직후 사표를 제출한 그는 당 복귀에 임하는 구상을 묻자 “절에 머물면서 시간을 갖고 생각할 것”이라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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