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전 소말리아서 남북한 작은 통일”

“죽음에 직면한 극한 상황에서 국가와 이념을 초월해 남북한이 한 가족이 됐습니다.”

외교관 출신 강신성(69) 씨가 소말리아 내전 당시 경험을 담은 장편소설 ’탈출’(한강출판사)을 펴내고 뒤늦게 소설가로 변신했다.

강씨는 1997년 외무부 본부대사를 끝으로 36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친 전문 외교관 출신. 이번 소설은 1987년 아프리카 소말리아 공관 창설 때 그곳 대사로 부임해 겪은 일을 다뤘다.

“소말리아 내전 때 북한 공관원 14명을 도와서 함께 탈출했는데 그 당시로는 특수한 경험이었죠. 그 경험을 소설로 써보겠다는 생각을 해오다 5년전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소설의 시공간은 1990년말부터 1991년초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 1990년 12월 31일 소말리아에서 내전이 일어나 정부군이 반군에게 패했다. 이로 인해 정부가 치안능력을 상실하자 무장강도들의 약탈이 극심해졌다. 돈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외교 공관이나 사택은 약탈의 주요 표적이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영국, 독일 등 대사들이 미국대사관으로 피했다가 전쟁 1주일만에 탈출했을 정도였습니다. 한국 대사관 직원들과 가족 8명도 모가디슈를 떠나기로 하고 공항에 갔다가 그곳에서 북한 대사관 직원과 가족 14명을 만났습니다.”

소설은 당시 상황을 마치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소설에서 김영수라는 가명으로 등장하는 북한 대사는 내전 이후 무려 여덟 차례나 무장강도들에게 약탈을 당했다고 강씨에게 밝혔다. “몽당이 숟가락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빼았겼다”는 김영수 대사는 “더이상 내놓을 것이 없으면 죽음을 당할 것 같아 공관을 버리고 2㎞를 걸어서 공항으로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북한 외교관 가족들은 이탈리아에서 보낸 구조기에 오르지 못했다. 이탈리아 대사관의 허락을 받아 미리 약속된 장소에서 기다리지 않은 사람은 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대사는 “공관으로 돌아가면 죽는다”며 공항에 남아있겠다고 했다. 강씨는 그를 설득해 한국 공관으로 함께 돌아왔다. 군사전략지여서 언제 격전일 벌어질 지 모르는 공항에 남아 있겠다는 것은 무모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한국공관에는 여섯 명의 무장경찰이 경비를 하고 있었다.

남북한 외교관 가족이 같은 공간에서 2박3일을 함께 생활한 상황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한국 공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를 운전하던 삼십대 초반의 북한 3등 서기관 박상일(가명)이 반군의 자동차로 오인한 정부군의 집중사격을 받고 심장에 총알을 맞아 사망했다.

“박 서기관은 심장에 총을 맞고도 운전대를 끝까지 놓지 않고 일행을 300m 거리의 공관까지 안전하게 이동시킨 뒤 30분만에 절명했습니다. 그가 만약 운전대를 놓아버렸다면 여러 명이 총알세례를 받을 상황이었습니다.”

강씨는 “죽음에 직면한 극한 상황에서 국가나 이데올로기보다 인간애나 도덕적 실존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며 “당시 남북한 사람들은 운명공동체로서 어떻게 하면 죽음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몰두해 있었다”고 술회했다.

한국공관에 돌아온 이튿날 강씨는 홀로 위험지역을 통과해 이탈리아 대사관에 이르러 구조기 탑승 허락을 얻어냈다. 국제적십자 구조기와 군인 수송기에 나눠타고 남북한 사람들은 케냐 뭄바사 공항에 도착해 짧지만 뜨거운 포옹을 나눈 뒤 헤어졌다.

강씨는 기왕에 소설가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앞으로 몇 편의 소설을 더 써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영문학과를 나온 강씨는 1961년 외무부에 들어가 일본대사관 3등 서기관을 시작으로 제네바 참사관, 밴쿠버 총영사, EC 대표부 공사, 칠레 대사, 호놀룰루 총영사 등을 역임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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