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때 석탄 구하다 왼쪽 팔과 다리 잃어”








▲북한인권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지난 18일 방한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공정회가 22일 열렸다. 세번째로 열린 이번 공청회엔 김혁(左) 씨와 지성호(右)가 참석해 증언했다./사진=오세혁 기자

북한인권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지난 18일 방한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세 번째 공청회가 22일 열렸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12호 전거리 교화소에 수감됐던 김혁 씨와 13살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왔다는 지성호 씨 등이 증언했다.


김 씨는 “비법월경을 한 죄로 1997년에 당시 16세로 전거리 12호 교화소에 수감됐었다”면서 “전거리 교화소로 함께 잡혀간 24명 중 나를 포함해 2명만이 살아나왔다”고 증언했다.


이어 김 씨는 “7살 때 어머니를 잃고 거리에서 음식을 구걸하거나 훔쳐 먹는 일명 꽃제비 생활을 하다가 13살에 고아원으로 들어갔다”면서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1997년 고아들에게 옥수수 송치만을 먹인 탓에 맥없이 죽어갔다”고 덧붙였다. 이어 “송치만 먹은 아이들은 심한 변비가 걸렸고 배가 불러오는 병으로 죽었다”고 설명했다.


지 씨는 함경북도 회령시 학보 탄광마을에서 태어나 13살부터 부모님을 도와 석탄을 팔아 식량을 구하는 일을 하다가 사고로 왼쪽 팔과 다리를 잃었다고 증언했다.


지 씨는 “새벽에 달리는 기차에 올라 석탄을 땅에 떨어뜨리고 이것을 팔아 식량을 구입해 연명했다”면서 “사고가 있기 전날도 한 끼도 먹지 못하고 기차 위에서 무거운 석탄을 내리다 정신을 잃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쪽 팔과 다리가 잘려 있었고 몸은 피와 석탄가루로 범벅돼 있었다”고 증언했다. 


지 씨는 “집안형편이 너무 안 좋아 동생들을 먹여 살리려면 약값과 치료를 포기해야 했다”면서 “마취제도 없이 수술을 받았으나 나를 포기하지 않고 간호해준 부모님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일 시작된 이번 공청회는 오는 24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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