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원칙 어긴 말실수 때문에 요덕수용소 갔다”

북한이 최근 수정한 것으로 알려진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이하 10대 원칙)은 북한 인권문제의 근원이자 최종 해결점이란 지적이 나온다.


1974년 4월 당시 후계자 신분이었던 김정일이 김일성의 환심을 사고 효과적으로 주민을 통제하기 위해 발표한 10대 원칙은 지난 39년간 북한주민들의 사상과 생활을 통제하는 중요한 통치 수단이었다. 북한 주민들은 10개의 원칙과 이를 뒷받침하는 각 세부 조항을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암기해야 한다.


북한 주민들은 소학교 ‘혁명역사’ 수업시간에 배우는 ‘김정일 혁명역사’ 수업에서부터 10대원칙을 배우게 된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 가장 뛰어났던 김정일이 몸소 10대원칙을 만들고 실천했다는 내용이다.


10대 원칙의 구체적인 학습은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청년동맹)에 가입하기 시작하는 중학교 시절에 본격화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노동당 산하 외곽조직들이 가입하게 되면 매 주말마다 진행되는 ‘조직생활총화’ 시간에 10대 원칙을 인용하여 자신의 사상과 생활을 반드시 비판해야 한다.


국내입국 탈북자 김영순(가명)씨는 데일리NK와 통화에서 “북한에서는 일반 당원은 물론이고 비당원들까지 빨간색 표지의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위한 10대 원칙’ 작은 책자를 항상 소지하고 다니면서 암기 여부를 검증받아야 했었다”고 말했다.


10대 원칙 8조 5항에서는 “2일 및 주 조직생활총화에 적극 참가하여 수령님의 교시와 당정책을 자(尺)로 하여 자기의 사업과 생활을 높은 정치사상적 수준에서 검토총화하며 비판의 방법으로 사상투쟁을 벌리고 사상투쟁을 통하여 혁명적으로 단련하고 끊임없이 개조해 나가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죽어서야 끝난다는 주(週) 총화 모임에서는 10대 원칙을 주로 인용하여 자신을 비판하도록 지시 받는다. 한편으로는 10대 원칙을 인용해 이웃이나 동료, 친구를 억지로라도 비판해야 할 때도 있다. 북한에서 말하는 ‘호상(互相)비판’이다. 정치범 수용소나 교화소 등 구금시설에 수용될 경우에는 취침전에 다른 수감자들과 단체로 매일 10개의 주요원칙을 큰소리로 제창(齊唱)해야 한다.


10대 원칙에는 주민들의 가치관이나 조직생활 기준만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  준칙까지 담겨있다. 김일성의 얼굴이 들어가 있는 사진, 조형물, 현지 교시판(版), 당의 구호 등을 정중하게 관리하고 철저하게 보위(保衛)하는 것은 물론이고 김일성이 다녀간 시설이나 김일성의 과거사를 전시한 시설물도 잘 지켜야 한다(3조 6항,7항)는 내용도 있다. 이번 수정에 따라 김정일과 관련된 것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러한 조항들은 북한당국이 북한주민들을 징벌하는데 있어서 임의적인 해석과 초법적인 조치를 낳는 근거가 된다. 10대 원칙을 위반하거나 소극적으로 대하는 것을 김일성에 대한 불충(不忠)이자, 10대원칙을 제정(制定)한 김정일에게도 반(反)하는 행동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특히 5조 1항에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를 곧 법으로, 지상의 명령으로 여기고 사소한 이유와 구실도 없이 무한한 헌신성과 희생성을 발휘하여 무조건 철저히 관철하여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당초 집권층의 정적(政敵)이나 반(反)공산주의자들을 숙청하기 위해 들어선 정치범수용소에 일반 주민들까지 광범위하게 수용되게 된 배경에도 10대 원칙이 자리잡고 있다. 북한인권정보센터가 국내입국 탈북자들과 인터뷰를 기초로 발간한 ‘북한정치범수용소의 운영과 체계’에서는 정치범수용소 수감자의 수감사유 중에 ‘북한 체제와 김정일성부자에 대한 말실수’를 첫번째로 꼽았다. 


이 보고서에서 탈북자 A모씨는 남편이 사람들 앞에서 “김일성 후계를 내오면서 아버지가 아들로 정한 것은 좋은데 김정일 사진을 올려 놓은 것은 아버지(김일성)가 살아 있을 때는 좋지 않다”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가족과 함께 1976년부터 1980년까지 요덕 15호 관리소에 수감됐었다고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