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뉴스

올해 북한은 미국의 압박에 반발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하고 이에 대응해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가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북 제재 결의를 채택하면서 한반도에는 첨예한 긴장이 조성됐다.

연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을 비공식 방문하는 등 의욕적인 출발을 했으나 6자회담 공전 장기화와 남북관계 경색, 대규모 수해 등 대내외적인 악재에 시달렸다.

그러나 긴박한 국제정세 속에서 잇단 북한 남녀축구선수들의 국제대회 우승 소식도 들려왔다.

무엇보다 연말에 극적으로 6자회담이 재개되는 등 대화의 틀이 복원되면서 한반도 긴장완화의 희망 속에 새해를 맞게 됐다.

다음은 연합뉴스가 선정한 2006년 북한 10대 뉴스다.

◇ 핵실험.미사일 발사
북한은 10월9일 오전 미국과 대결구도 속에서 핵실험을 전격 강행했다. 북한 외무성은 10월3일 “미국의 고립압살 책동이 극한점을 넘었다”며 이례적으로 핵실험 의지를 천명한 뒤 노동당 창건 61주년 하루 전인 이날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핵실험을 단행했다. 이날 조선중앙통신은 “우리 과학연구부문에서 지하 핵시험(핵실험)을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앞서 북한은 7월5일 새벽 ‘대포동 2호’를 포함해 미사일 6발을 동해로 발사했다. 미사일 발사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사회가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하는 등 압박을 강화하자 북한은 핵실험이라는 초강수로 맞선 것이다. 그러나 핵실험은 미국과 일본은 물론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 등 모든 주변국의 반발을 샀으며 같은달 15일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이 중국과 러시아의 적극적인 동참 속에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 6자회담 복귀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1월1일 ‘북.미 간 금융제재 해제 문제를 논의, 해결한다’는 전제 하에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실험 이후 열흘만에 방북한 탕자쉬안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에게 회담 복귀 의사를 밝히고 북.미.중 3국이 베이징 회동을 통해 회담 조기 재개에 합의한 직후 나온 발표였다. 이로써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으로 조성된 위기 국면은 대화를 통한 해결의 가능성을 열었다. 또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11월말 베이징에서 다시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회동, ▲영변 핵시설 가동중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 ▲핵 계획 신고 등을 내용으로 한 ‘조기 이행조치’를 제안했고 북한은 ‘돌아가 검토해 보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후 연내 재개에 대한 기대와 비관이 교차했으나 중국의 노력으로 12월18일 우여곡절 끝에 2단계 5차 6자회담이 열리게 됐다.

◇ 김정일 방중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연초인 1월10∼18일 네 번째로 중국을 비공식 방문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김 위원장은 회담에서 6자회담의 난관을 지적하면서 회담 진전을 위한 방도를 찾기 위해 중국과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은 밝혔다. 특히 김 위원장은 방중 기간 우한.광저우.주하이.선전 등 남부의 경제특구를 집중 방문해 ‘김정일식 남순(南巡)강화’라는 평가를 낳기도 했다. 또 김 위원장의 방중 수행원 대부분이 박봉주 내각 총리, 박남기 노동당 부장, 로두철 내각 부총리 등 군부 인사가 아닌 김 위원장의 경제브레인이었다는 점에서 향후 북한의 경제개혁 전략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는 관측을 낳았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방중 기간 내내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마지막 날 언론을 통해 공개했다. 한편 김 위원장의 방중에는 그의 네번째 부인으로 알려진 김옥씨도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 7월 대규모 수해
북한 평안남도와 황해남도 일대가 7월 중순 집중호우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특히 평남 신양.양덕.성천군에는 6시간 동안 280∼320㎜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북한당국이 정확한 피해 상황을 밝히지 않는 가운데 세계식량계획(WFP)은 긴급보고를 통해 6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3만ha의 농경지가 훼손, 10만t 가량의 식량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사상자가 4천명에 육박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북한은 수해로 ‘아리랑’ 공연에 이어 8.15축전을 취소했으며 남측에 복구물자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북한의 수해 소식이 알려지자 8월부터 민간단체의 지원이 이어졌으며 정부도 쌀과 시멘트 각 10만t과 260억원 상당의 장비 및 구호품을 북송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물품 수송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 남북관계 경색
남북관계는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정부가 식량 및 비료지원 중단 조치를 취하고 북한이 이에 반발해 이산가족 상봉 중단을 선언하면서 급속히 냉각됐다. 남북 당국간 회담은 올스톱 상태에 들어갔으며 남북경협의 상징인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사업도 핵실험의 파장을 피할 수 없었다. 북한이 경의선.동해선 열차시험 운행을 하루 앞둔 5월24일 시험운행을 일방적으로 무기 연기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던 남북관계는 미사일 발사 후 악화일로를 걸었다. 정부가 8월 들어 북한 수해 복구를 지원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경색된 남북관계가 조금씩 풀릴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으나 핵실험이라는 메가톤급 타격을 입고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11월 유엔의 대북 인권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져 남북관계의 장기 경색을 예고했다.

◇김영남 모자 상봉
고교 재학 중 납북된 김영남(45)씨가 6.15공동선언 6돌을 기념한 제14차 남북 이산가족 특별상봉(6.19-30, 금강산)을 통해 어머니 최계월씨와 누나 영자씨를 만났다. 북녘 가족과 함께 나온 김씨는 상봉기간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입북 경위와 재북 생활, 전 부인인 요코다 메구미씨의 사망 등과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 자리에서 납치도 자진월북도 아닌 ‘돌발입국’이라는 애매한 표현을 썼으며 남측 가족을 평양에 초대하기도 했다. 김씨 가족의 상봉이 고교생 납북경위와 요코다 메구미씨의 사망 등 의혹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지만 남북간 납북자 문제 해결에 진일보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북 여자축구팀, 국제축구대회 우승
올해는 북한 축구가 국제무대에서 맹활약을 펼친 해였다. 북한팀은 9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20세 이하 세계여자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결승에서 강호 중국을 5대 0으로 크게 이기고 정상에 올랐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최한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남북한을 통틀어 처음이었다. 북한은 세계여자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단 전원에게 노력영웅.인민체육인 칭호와 김일성청년영예상 등을 수여했다. 또 북한 여자축구대표팀은 2006 도하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따냈다. 김광민 북측 감독은 아시아 팀을 제압한 만큼 다음 단계는 세계 패권이라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앞서 남자 청소년대표팀도 11월 인도 콜카타 아시아청소년(U-19)축구선수권대회에서 승부차기 끝에 일본을 꺾고 우승했다. 1976년 대회에서 이란과 공동 우승을 차지한 뒤 30년 만의 영광이었다.

◇장성택 복귀
2004년 초부터 업무정지 처벌로 사실상 실각됐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제 장성택 노동당 제1부부장이 1월28일 설 연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는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아닌 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복귀했다. 장 제1부부장은 김 위원장의 부인 고영희(2004년7월께 사망)씨 세력에 밀려 ‘권력욕에 따른 분파행위자’로 낙인 찍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제1부부장은 복귀 후 3개월만에 중국을 전격 방문해 주요 개발지역을 둘러보기도 했다. 그가 2002년 10월 경제시찰단을 이끌고 남한의 산업시설을 참관하는 등 남북간 교류.협력과 북한 경제개혁에 깊숙이 관여했던 만큼 그의 복귀는 북한이 본격적인 경제개혁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교육혁명’ 열풍
올해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교육혁명을 강조한 북한은 연초부터 시험방식, 교육내용, 교수방식 등 전반 부문에서 ‘생각하는 교육’을 위한 변화를 추구했다. 수 십년 동안 주관식으로만 이뤄졌던 대학입시 문제에 처음으로 객관식이 등장했고 과목별 문항수도 3∼5문제에서 10∼30문제로 늘여 변별력을 높였다. 교육과정 전반에서 암기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탈피하는데 힘을 쏟아 중학교의 경우 실기위주로 시험방법을 바꾸고 외국어는 구술시험, 자연과학은 실험 및 관찰시험, 컴퓨터 및 국어는 실기시험을 위주로 실시했다. 영재교육에서도 ‘후천적 학습’을 강조하던 데서 벗어나 ‘선천적 재능’을 중시하면서 과학영재 발굴에 주력하고 특화된 교육을 실시하는데 주력했다. 아울러 김정일 위원장이 올해 첫 공개활동으로 북한 최고의 이공계 대학인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찾고 방중 기간 하이테크 기업들을 집중 방문한 것을 계기로 과학과 기술교육의 저변을 넓혀 경제성장과 교육이 연관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모든 기관.단체에 중소탄광 개발.운영권 부여
북한 내각은 올해 말 에너지난 타개를 위한 해결책으로 ‘중소탄광 개발 및 운영 규정’을 채택했다. 이 규정에는 기관.기업소.단체들이 경영활동에 필요한 석탄과 주민용 땔감을 해결하기 위해 중소규모의 탄광을 개발.운영하는데서 지켜야 할 원칙과 구체적인 절차.방법이 명시돼 있다. 이 규정은 특히 기관.기업소의 독립채산제와 경영권 강화 등 시장경제 요소를 담은 그동안의 7.1경제관리개선 조치에서 진일보한 조치로 평가된다. 북한에서는 종전 중소탄광을 포함해 모든 탄광 개발권이 전적으로 국가의 권한이었고 생산도 대규모 기업소를 중심으로 국가 차원에서 이뤄졌으며 특히 비생산 기관.단체에게는 탄광 개발권이 없었다. 그러나 이 규정의 채택으로 규모와 업종에 관계없이 어떤 기관.기업소.단체라도 국가의 허가를 받으면 자체적으로 탄광을 개발하고 운영할 수 있게 됐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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