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다시보는 北주민과 화물열차

최근 북한의 화물열차를 타고가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동영상으로 생생하게 잡혔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www.nkgulag.org)는 두만강 북-중 국경지역에서 화물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북한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22일 공개했다.

동영상은 지난 4월 중국 카이산툰 지역에서 촬영되었으며 함경북도 회령시 신천역(驛)을 담고 있다. 동영상에는 석탄을 싣고 있는 화물열차의 지붕에 올라탄 주민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화물열차를 얻어타기 위해 보따리를 메고 철로를 달려가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오늘날 북한의 전력사정을 엿볼 수 있다.

6월 13일 중국 투먼(圖們)에서 만난 탈북자 신영옥(가명. 32세. 함북출신)씨를 통해 북한의 철도사정을 들어 보았다. 올해 2월 탈북한 신씨는 함북도 △△역에서 올해 1월까지 7년간 매표원으로 근무했다고 한다.

다음은 신씨와 일문일답.

전력난 때문에 2~3일에 한번씩 열차 도착

최근 북한의 열차 사정이 어떤가?

= 내가 근무했던 △△역은 2~3일에 한번씩 기차가 들어왔다. 주로 화물열차가 들어오고 여객열차는 자주 다니지 않았다. 전기공급이 곤란하기 때문에 열차운행이 뜸하다.

90년대 후반 식량난 시절과 비교한다면?

= 97년, 98년, 99년은 가장 어려울 때였다. 그때는 보름이 넘도록 열차가 오지 않은 때도 있었다. 화물열차가 한번 들어오면 지붕까지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 앉아 사고로 죽은 사람도 많았다. 전기줄에 감전되서 죽기도 하고 달리는 열차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도 있었다.

보통 주민들은 어떤 방식으로 열차에 탑승하나?

= 열차가 들어오면 도착 15~20분 전부터 차표를 팔기 시작한다. 기차표는 증명서가 제시해야 살 수 있다. 식량난 전에는 좌석표가 없었는데 요즘은 좌석표가 생겼기 때문에 열차표를 옛날처럼 많이 팔 수가 없다. 증명서가 없거나 열차표를 구하지 못한 장사꾼들은 화물열차가 들어올 때 역무원들에게 돈을 좀 쥐어주고 몰래 타는 경우가 많다.

좌석표가 있다면 입석표도 있나?

=입석표도 있다. 그런데 가격은 좌석이나 입석이나 똑같다.

혹시 침대칸도 있나?

침대칸이 달린 열차가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침대차는 많이 비싸다. 보통 일반객차의 운임보다 5~6배 정도 비싸다고 보면 된다. 좌우 3단으로 침대가 있어서 6명이 들어간다.

5년동안 열차요금 30배 올라

객차의 요금은 얼마나 하나?

= 요즘 국가에서 책정한 요금은 한 정거장마다 3원쯤 된다. 남양에서 청진까지 가는데 예전에는 국정가격이 5원 70전이었는데 지금은 150원이 넘는다. 5년전에 비해 국정요금이 30배 올랐다.

평양 가는 열차는 각 역마다 할당된 표가 있다. 그래서 표를 구하기가 어렵다. 함경도에서 평양까지 가는 국정요금은 1천원 정도 하지만 역무원들에게 담배 사주고, 웃돈 주고 하다보면 보통 8천원은 써야 한다.

기차를 이용하는 주민들이 많은가?

= 몇 년 전에 비해 화물자동차가 많아져 열차 타는 사람들이 줄어든 편이다. 국가에서 열차 이용객을 의도적으로 줄이기 위해서 열차요금을 많이 올렸다. 열차가 제때에 오는 것도 아니니까 아무래도 장사하는 사람들은 열차보다는 자동차를 이용한다. 그래도 웃돈이라도 주고 열차를 타려는 사람은 많다.

객차 내부에 대해서 설명해달라.

= 요즘엔 객차에 유리창도 다 갈아 끼웠다. 객차마다 의자는 40개 정도 되는데 두 명씩 앉는다. 서서 가는 사람도 있다. 객차 안에는 여러 가지 정치구호들이 많이 붙어있고, 사탕이나 과자를 파는 판매원들도 있다.

매표원 월급은 쌀 1kg 값

어떻게 매표원이 되었나?

= 나는 청진철도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역에 배치되었다. 전문학교는 1년제도 있고 3년제도 있는데 나는 3년제 철도전문학교를 나왔다. 일반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도 역무원이 될 수 있고 월급도 똑 같은데 철도전문학교를 나와야 승진에 유리하다.

월급은 얼마나 받았나?

첫월급은 30원을 받았는데 2002년에는 70원까지 받았다. 그것으로는 쌀 1kg 밖에 살 수 없었다. 월급 외에 배급이 조금씩 나왔다. 그런데 2003년부터는 배급도 끊기고 월급도 제때 나오지 않았다. 국가에서 배급이나 월급을 주지 않으니까 각 역마다 자체적으로 차표 판 돈과 화물 운반비용으로 받은 돈의 일부를 역무원들에게 나눠줬다. 하지만 액수가 변변치 않아 매표원들까지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 돈으로 어떻게 생활을 했나? 장사를 했나?

=역무원들은 기차가 들어오지 않아도 반드시 출근을 해야 한다. 그러니까 장사도 마음데로 못한다. 나도 가끔 미리 예약한 사람들에게 웃돈을 받고 표를 팔았다. 가족들이 생활을 도와줘서 굶어 죽지는 않았다.

북한을 떠난 이유가 무엇인가?

=작년에 오빠랑 어머니가 중국으로 나와 자리를 잡았다. 나 혼자 조선(북한)에 있어봐야 먹고 살기도 힘들고,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싶어서 나왔다.

중국 투먼(圖們) = 김영진 특파원kyj@dailynk.com
박인호 기자 park@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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