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 일찍 만났더라면…”

“아버지께서 지난해까지는 언니 오빠들 얘기하면서 많이 우셨어요. 그런데 올해 들어 갑자기 기억력이 떨어지셔서 기억을 잘 못하세요. 1년만 일찍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텐테….”

김삼진(87) 할아버지의 막내 딸 준자(41)씨는 처음 만난 북의 언니 오빠들에게 반가운 인사에 앞서 아쉬움을 전했다.

28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4층 남북이산가족 화상상봉장에서 김 할아버지는 50여 년만에 북의 자녀 제숙(65.여), 제만(62), 제렬(59), 제문(57)씨를 만났다.

나이가 들다 보니까 기억이 점점 없어진다는 김 할아버지는 북의 자녀가 “저희를 알아보시겠습니까”라고 묻자 무덤덤한 표정으로 “모르지 뭐”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하던 김 할아버지는 북의 자녀가 들려주는 고향 얘기에 “맞아 거기가 그 이름이야”, “그랬지 거기 굴뚝이 있었어”라고 맞장구치며 기억을 되살려냈다.

1.4 후퇴 당시 황해도 해주에 살다가 징집을 피해 잠시 집을 떠나있던 김 할아버지는 몇 달 뒤 다시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같이 남으로 내려가자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자녀와 친척들이 있는 북에 남겠다고 했고 김 할아버지는 결국 혼자 충청도를 거쳐 인천으로 내려왔다.

남에서 어떻게 살아왔냐는 자녀의 물음에 김 할아버지는 “울음으로 세월을 보냈다”는 말로 50여 년의 세월을 대신했다.

1989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남편을 그리워했다는 북의 아내 소식에 김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잠시 그림자가 스쳐갔다.

말 없이 눈물만 찍어내던 북의 큰 딸 제숙씨는 가족 소개를 하자 비로소 미소를 지었고 남의 큰 아들 제창(48)씨를 비롯한 남북의 가족들은 1시간 40분을 꽉 채워 이야기꽃을 피웠다.

김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북의 자녀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있어라”고 당부했고 북의 셋째 아들 제문씨가 부르는 ’사향가’와 함께 가족들은 아쉬운 인사를 나눴다.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나의 어머니 문 앞에서 눈물 흘리며 잘 다녀오라 하시던 말씀 귀에 쟁쟁해.”(’사향가’ 중)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