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상봉단 금강산 작별상봉 이모저모

반 백년을 돌아 만난 남과 북의 흩어진 가족들에게 2박3일 동안의 꿈같은 상봉은 다시 깊은 상처로 남았다. 남북의 가족이 함께 보낸 시간은 고작 11시간 남짓에 불과했다.

상봉 마지막 날인 28일 오전 금강산 호텔 2층 면회장에서 1시간여 동안 작별상봉이 있었다.

○…김성규(82)씨가 들어서자마자 막내 여동생 정옥(64)씨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울음부터 터뜨렸다.

아무 말도 못한 채 오빠의 팔을 붙잡고 계속 눈물을 떨구는 동생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김씨는 “열심히 살아라”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통일할 때까지 건강하셔야 해요. 식구들에게 안부 전해 주시고 앓지 마셔야 해요.”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면서 남매는 손을 부여잡고 주름진 얼굴을 비볐다.

○…“오빠 잘 따라서 잘 지내라.” 홍준모(88)씨는 다시 헤어져야 할 남매를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동생 잘 돌봐줘야 한다. 건강히 그저 건강히 잘 지내야 한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 그렁그렁한 병숙씨 등을 쓸어주며 오빠 병익씨가 담담하게 말했다. “고저 아버지 일없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인데요.” 병숙씨의 눈에서 서러운 이별이 끝내 한줄기 물방울로 떨어졌다.

○…“‘김보옥 지 신위. 어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불효자식 상호 올림. 장상후 지 신위. 형님의 명복을 빕니다. 형님 속을 썪여서 미안합니다. 동생 상호 올림.”

함남 영흥군 출신의 장씨는 “네가 이걸 들고 어머니하고 형님 산소에 가서 꼭 읽어드려라. 작은 아버지가 이런 뜻을 전했다고 내 대신 꼭 읽어드려라”고 신신당부했다. 조카의 손을 부여잡은 장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오전 9시45분께 작별 상봉을 마감한다는 방송이 나오자 남쪽의 가족들은 잠시 놓았던 손을 다시 부여잡았다. 계단을 내려가는 남쪽 가족들도, 남아있는 북쪽 가족들도 또다시 시작된 기약없는 이별에 하나둘씩 무너져 내렸다.

상봉 첫날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2시간여 동안 흐느끼기만 했던 김귀옥(89)씨는 이날 상봉장에 들어서 딸 김명숙(70)씨의 손을 붙잡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명숙씨는 “이렇게 좋은 날 우리가 울면 안돼요. 우리 울지 말고 웃으면서 헤어지자요”라며 반세기만에 만난 어머니의 손을 부여잡았다.

○…“아이고 아이고…”

작별상봉이 끝났음을 알리는 순간, 상봉장 곳곳에선 통곡이 터져 나왔다. 김기심(86)씨는 딸 최희순(63)씨가 어릴 적 어머니가 불러주던 노래라며 동요 ‘만남’을 부르며 달래자 “딸을 버리고 가는 엄마가 무슨 엄마냐”며 통곡했다.

방귀녀(80)씨의 북쪽 딸 송길녀(58)씨는 헤어지는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 만수무강하세요”라며 큰절을 올렸다.

자판례(82)씨의 남쪽 딸은 북쪽의 오빠 허기옥(62)씨에게 “오빠 이대로 어떻게 가, 이대로 어떻게…”라며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했고, 동생을 보내야 하는 북쪽 오빠는 자리에 돌아 앉아 망연자실 눈물만 흘렸다.

○…이준수(75)씨는 대기하고 있던 차량에 오르기 전 서러운 외침을 토해냈다.

“또 만날 날이 언제야. 우리 동생 또 만날 날이 언제야…” 주체하지 못할 아픔에 몸을 떠는 이씨는 “까만 머리 흰 머리 돼서 만났는데 또 언제 만나느냐”며 흐느낌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곧 떠나는 아들을 지켜봐야 하는 어머니는 아무 말도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김순단(72)씨는 “딸이 제사를 지내면 자손들이 가난해 진다고 해서 돌아가신 아버지 제사도 못 지냈는데 이번에 만난 동생들이 기일을 알았으니 제사를 지내겠다”면서 “마음이 한결 가볍다”고 애써 서러움을 달랬다.

○…남쪽 가족들이 먼저 차에 오른 뒤 북쪽 가족들은 호텔 앞까지 나와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이산가족들은 차창을 열고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빠, 나 가요”, “또 만나요”, “건강하세요” 등 마지막이 될지 모를 인사말을 건넸다.

남아있는 북쪽의 가족들도 떠나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따라붙으며 “잘 가요”, “앓지 마시라요”, “통일돼서 만납시다”라고 대답했다.

북쪽 형 일웅(74)씨를 만난 김치웅(65)씨는 붉어진 눈으로 “괜히 왔어. 마음만 더 아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마지막 가는 버스에 오른 남쪽 상봉자들은 창쪽으로 몰려 앉아 아들 딸의 이름을 목놓아 외쳤다.

이성인(83)씨의 북쪽 막내 여동생 덕연(73)씨는 자기를 부르는 언니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버스에 접근하지 말라’는 북쪽 안내원의 제지로 끝내 손 한번 붙잡지 못했다.

북쪽 가족들 가운데 일부는 막아서는 안내원을 뚫고 버스로 다가가 “꼭 다시 만나자”며 두 손을 부여잡았지만 대부분의 가족들은 멀찍이 호텔 창문에 모여 차마 다가오지 못하는 북쪽 가족들을 향해 “이리와. 이리와. 왜 안 와 왜..”라고 절규하기도 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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