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 빨리 만났어도…”

“1년만 빨리 만났어도 어머님도 함께 뵐 수 있었을텐데…”
24일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4층 남북 이산가족 화상상봉장.

북측 김영보(57)씨는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님 소식을 남측 아버지 근철(88)씨에게 전하며 안타까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평남 용강군 대대면에서 정미소 일을 하던 김근철씨는 6.25전쟁 발발 전 아내와 3남1녀를 북에 두고 남으로 내려왔다.

북 인민군에 강제징병된 그는 군부대의 위세 과시 차원에서 남에 파견됐다가 전쟁이 발발해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게 됐다.

남에서 새 아내를 맞아 결혼하고 슬하에 3남2녀를 두며 새 가정을 꾸렸지만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기억에서 지울 수 없었다.

꼭 살아서 다시 한번 북의 가족들과 만날 날을 기약하며 운동도 많이 하고 식사량도 조절하며 건강을 유지했다.

아들들의 양복 주머니에는 북측 집 주소를 적은 종이를 넣어놓고 자신이 죽더라도 나중에 통일되면 꼭 한 번 가보라고 자식들에게 당부해왔다.

북에서는 김씨가 전쟁통에 죽은 줄로만 알고 김씨의 생일인 1월4일 매년 제삿상을 올려 왔다고 아들 영보씨는 전했다.

영보씨는 “아버님이 살아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에 한숨도 잠을 잘 수 없었다”며 “돌아가신 두 형님도 살아서 아버님을 뵜으면 더욱 좋았을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김씨는 “너희들 가르치지 못하고 나만 여기 와 미안하다”며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흔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물에 북의 자식들도 안타까운 나머지 “아버지, 울지 말라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내 너희들 꼭 한 번 만나보고 죽을란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탓에 말수가 적었던 김씨는 그래도 마지막 한 마디 말만큼은 옹골차게 내뱉고 화상상봉장을 떠났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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