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美·北관계, ‘시료채취’ 문제로 공방 이어갈 듯”

09년 북핵 정국은 일단 08년의 연장선상에서 북한의 과거 핵활동을 검증할 수 있는 ‘검증의정서’ 채택을 우선순위로 관련국간 지루한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북한의 ‘신고서 제출’과 냉각탑 ‘폭파쇼’,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등에 따라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됐던 북핵 정국은 결국 ‘검증의정서’의 벽에 막혀 뚜렷한 성과없이 한해를 마감했다.

최소한 비핵화 2단계를 마무리하고 3단계로 가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려고 했던 6자회담 관련국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핵심 당사국인 미국은 불능화에 따른 에너지 지원의 잠정 중단을 발표했고, 언제든지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재지정’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로 인해 6자회담 역시 상당부분 동력을 상실했다. 때문에 2009년은 버락 오마마 차기 미국 행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재개될 미-북간 협상 결과에 따라 ‘검증’ 합의와 북핵폐기 3단계 협상을 비롯한 6자회담의 향방도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북핵문제의 키(key)를 쥐고 있는 북한의 ‘핵포기’ 의사가 불분명해 그 동안의 지루한 공방이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6者‘, 시료채취’ 포함 검증의정서 마련에 총력=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관련국들은 북한이 제출한 신고서에 대한 ‘검증의정서’ 채택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시료채취’ 포함 여부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선 우선 미·북간 이견을 좁혀야 한다. 미국은 2008년 10월 ‘평양협의’에서 ‘시료채취’에 합의했다는 입장이지만, 북한은 이를 부정하며 ‘시료채취는 3단계 폐기협상에서 논의할 대상’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구체적인 회담 결과를 원하는 한국과 일본도 ‘시료채취’가 가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일은 더 이상 불분명한 합의로 인한 공전을 바라지 않고 있다. 때문에 검증의정서 채택 실패에 따라 에너지 지원도 중단했다. 하지만 북한이 자신들의 핵능력이 명백히 드러나는 ‘시료채취’에 합의 할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실제 원자로에서 인출한 ‘사용 후 연료봉 시료’, 재처리시설에서 방출된 ‘액체 폐기물 시료’, 원자로 건물 내외의 ‘환경 시료’ 등을 채취해 분석하면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량, 재처리 횟수, 원자로 가동 주기, 재처리 기간, 심지어 플루토늄의 품질까지도 추정할 수 있다.

게다가 최신 첨단기술은 시료분석을 통해 나노(10억분의 1)나 피코(1조분의 1) 단위의 핵물질도 검출할 수 있어 북한의 은닉시설까지 추적할 수 있다. 플루토늄 핵프로그램을 넘어선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보유 여부까지 추적한다면 북한의 과거, 현재의 핵능력이 명백 히 드러날 수 있다.

때문에 북한이 내부에서 ‘핵포기’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정리하지 않는 이상, 한·미·일의 ‘시료채취’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와 관련, 김태우 국방연구원 부원장은 “오바마 행정부는 6자 후속회담을 위해서라도 ‘검증의정서’ 채택 문제에 우선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도 “북한이 아무런 대가 없이 오바마 행정부와의 협상에서 시료채취 등을 포함한 검증의정서 도출에 합의할 가능성은 낮다”면서 “결국 미북간 지루한 밀고 당기기가 반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북 ‘직접대화’로 돌파구 찾을까?=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출범 직후 교착상태인 북핵문제의 돌파구 마련을 위해 북한과 직접 접촉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초기에는 부시 행정부의 연장선상에서 ‘검증의정서’ 마련을 위해 북한과 담판에 나서 입장차를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협상과정에서 북한의 ‘핵포기’ 의사가 불분명해 진전이 기대되지 않을 경우 보다 원칙을 강조하며 부시 행정부 때보다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할 가능성도 높다.

다만 오바마 행정부가 대외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북핵 문제를 어느 정도 순위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그 진전 속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또 신고서에 대한 ‘검증’ 협상이 마무리되더라도 신고서에 누락된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해외 핵확산 의혹 등의 해법도 녹녹치 않다. 오바마 행정부가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에 관심이 지대한 만큼 이에 대한 미·북협상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북대화 중심으로 북핵협상이 어느 정도는 진행될 것”이라면서도 “교착 국면의 북핵정국에 큰 돌파구 마련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 선임연구위원은 특히 “오바마 행정부는 ‘검증의정서’를 리뷰(review)해 새로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며 “북한이 이미 제출한 신고서에 우라늄농축프로그램 및 확산 의혹 등이 빠진 것을 문제 삼아 신고를 다시 하자고 제기할 가능성도 크다”고 전망했다.

김 부원장은 “북한은 부시 행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검증의정서’ 채택 여부를 두고 정치적 타협을 시도할 것”이라며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도 ‘북한의 입장을 들어주는 타협을 할 것인가’ ‘핵포기 원칙을 준수할 것인가’를 두고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부원장은 “북한은 형식적인 검증만 하라고 할 것”면서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지, 정치적 ‘타협’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시 행정부 때보다 정치적 타협 가능성은 낮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오바마 정부는 임기 초 북한에 유연한 입장을 보이겠지만, 북한이 궁극적으로 핵포기 의지가 불투명하다면 원칙을 준수할 것”이라며 “일정기간 대화노력은 지속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미북간 대결국면이 펼쳐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오바마 행정부가 6자회담 틀 내로 북한을 끌어들이기 위해 양자대화를 시도하겠지만 적극적으로 ‘주는’ 정책을 취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 원하는 것에 북이 호응해야 주겠다’는 미국식 실용주의 원칙에 엄격한 오바마 행정부는 보다 엄격한 원칙을 강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6자회담의 향방은?=2008년 북핵 6자회담은 미·북협의 결과를 ‘추인’하는 정도로 위상이 추락했다. 때문에 재개될 회담도 미·북간 협의 과정에 따라 개최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돼 ‘실효성’ 문제를 두고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2002년 10월의 ‘HEU(고농축우라늄) 파동’으로 촉발된 2차 북핵위기를 풀기 위해 부시 행정부가 선택한 6자회담이 2003년 8월 출범 이후 5년여만에 동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을 만들어 내 이를 토대로 북한의 핵신고서 제출과 불능화,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등 비핵화 2단계를 마무리하는 상황까지는 기여했지만, 미·북간 합의결과에 따라 회담의 방향이 결정되는 등 그 한계가 분명했다.

미국 등 관련국들이 여전히 6자회담 유지 입장을 보이고는 있지만, 개최 시기 여부는 불투명하다. 미북간 협의를 통해 일정 수준의 성과가 도출되지 않으면 개최 가능성조차 낮은 상황이다. 따라서 북한의 핵포기 의사가 확인되지 않는 한 오히려 6자회담 무용론이 더욱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전 연구위원은 “북한이 핵폐기 의사가 없기 때문에 북핵문제의 진전은 기대할 수 없다”며 “결국 6자회담도 장기 공전상태에 빠져 실효성이 의심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은 6자회담 보다는 미·북 양자구도를 원한다”며 “특히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 검증협상에서 조금만 양보하면 중단된 중유지원이 재개될 것으로 계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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