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년 北후계구도…‘2인자’ 장성택 주목

영국의 대표적인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2009년 눈여겨봐야 할 중요한 국제적 이슈로 ‘김정일의 통치 가능 여부’를 꼽았다. 그만큼 올 한 해 국제사회의 눈과 귀는 김정일의 건강 이상과 이를 둘러싼 북한의 정치 구도 변화에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김정일의 후계자 구도 문제와 관련,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사진) 노동당 행정부장이 가장 주목된다.

‘수령 절대주의’와 ‘김일성 가계 우상화’라는 양대 축으로 유지되고 있는 북한의 통치 시스템에서 장성택은 비록 김일성 가문과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김경희(김정일의 여동생)의 남편으로써 ‘로얄 패밀리’의 핵심 인물이다.

특히 와병중인 것으로 알려진 김정일이 여전히 ‘후계자 지목’을 미루고 있는 가운데, 현재 북한 최고위층 중에 유일한 ‘친족’인 장성택이 2009년 북한 구계구도 전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된다.

◆장성택은 누구? 북한판 ‘신데렐라’=북한 내 권력 2인자로 불리는 장성택이 ‘김일성 로얄 패밀리’에 합류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북한판 신데렐라’가 따로 없다.

장성택과 김경희의 결혼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두 사람의 만남과 결혼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황장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전 조선노동당 비서)에 따르면 김일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경희의 고집에 의해 결혼이 성사됐다고 한다. 다음은 황 전 비서의 회고록에 담긴 두 사람의 만남에 관한 일화다.

장성택과 김경희는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 동급생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두 사람이 사귀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 소문은 김일성의 귀에도 들어갔다. 김일성은 당장 장성택의 가족관계를 조사토록 지시했다. 조사 결과 장성택 아버지의 쪽의 경력에 문제가 있다는 자료가 나왔다. 김일성은 자기 계열과는 다른 활동가들을 배척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를 내면서 딸에게 당장 관계를 끊으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헤어지기는커녕 은밀히 자주 만난다는 걸 알게 된 김일성은 동생 김영주에게 장성택을 김일성종합대에서 출학시켜 원산에 있는 경제대학으로 보내도록 지시했다.

김경희가 이후 어떤 식으로 아버지 김일성을 설득해 장성택과의 결혼에 성공했는지는 김정일의 처조카인 이한영이 쓴 수기에 잘 나와있다.

김경희가 워낙 장성택을 좋아해서 아버지만 집에 들어오면 장성택과 결혼하겠다고 울고불고했다고 한다. 또 원산까지 쫓아가서 장성택과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등 요란했다는 것이다. 결국 김일성도 하는 수 없이 결혼을 허락했다. 북한에서는 보기 드문 열렬한 러브스토리다.

김경희와의 결혼에 성공한 장성택은 당시 후계자로서 권력 구축에 나서기 시작한 김정일의 측근이 됐다. 김정일은 장성택과 김경희가 결혼하기 전 장성택을 영화촬영장에 데리고 다니기도 했고, 나중에는 장성택을 좋게 봐 이들의 결혼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성택은 1978년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강선제강소 노동자로 내려가 ‘혁명화 교육’을 받게 된다. 이 혁명화 교육은 김경희가 김정일을 찾아가 직접 부탁했다고 한다. 남편이 맡은 일을 소홀히 하고 술만 마시고 돌아다닌다고 불만을 터뜨렸다는 것.

장성택은 이 외에도 김정일에게 잘 보이려고 ‘오버액션’을 하다 오히려 큰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조직지도부 해외대사관 지도과장으로 있으며 외화벌이를 지휘했던 장성택은 김정일을 위한 개인전용 수중별장을 짓다가 공사 도중 화재가 발생해 김일성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두 번의 철직 후 김정일 ‘오른팔’로 등극=고 이한영 씨도 장성택이 ‘혁명화 교육’을 받은 이유를 ‘자신의 권력에 자만했다’는 점에서 찾고 있다. 그는 장성택이 1970년대 말 김정일의 측근자 파티를 흉내내 자신들의 측근을 불러놓고 파티를 열었으며, 이후 이 사실을 알게 된 김정일이 대단히 화를 냈다.

당시 김정일은 “네가 뭔데 내 흉내를 내가며 연회 하느냐. 이 땅에서 세도 부릴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장성택이 다시 비상하게 된 계기는 1989년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평축) 당시 평양 건설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면서부터다. 당시 김정일은 광복거리 건설을 비롯한 건설사업 지휘를 장성택에게 맡겼는데, 장성택은 전국적으로 자재와 인력을 끌어들여 기일 내에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 공로로 장성택은 ‘노력영웅’ 칭호를 받는 한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승승장구했다.

1992년에는 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으로 선출됐고, 1994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자리에 오르게 되며 실질적으로 북한 내 ‘권력 2인자’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큰형인 장성우는 3군단장으로 있으면서 평양을 방어하는 주요 임무를 수행했고, 둘째형 장성길은 군단 정치위원으로 근무하는 등 3형제 모두 북한 권력층에서 막강한 정치세력을 형성했다.

이후 장성택에게 또 한번의 시련이 찾아온다. 2004년 당 내 파벌을 만들어 세력화를 꾀하고, 김정일 별장에 버금가는 화려한 전용별장을 건설하는 등의 방탕행위를 했다는 명목으로 실각한 것이다. 당시 노동당 내부에서는 ‘장성택의 사람’으로 꼽혔던 간부들까지 모두 좌천됐다.

그러나 2년 뒤, 장성택은 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복귀해 검찰, 인민보안성, 국가안전보위부를 관장하는 등 권력의 핵심으로 다시 부상했다. 최근에는 당과 군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다시 임명됐다는 첩보도 전해진다.

▲ 김일성 일가 가계도 <2006년 자료>

◆‘카리스마’ 있고 사리밝은 장성택…김정일도 질투= 장성택은 오랫동안 극심한 가정불화를 겪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김경희는 오래 전부터 대외 활동이 힘들만큼 심각한 알코올 중독에 빠져있고, 이로 인한 별거 상태가 장기간 지속됐다는 것이다. 프랑스 유학 중이던 딸 금송도 부모의 결혼 반대에 비관해 지난 2006년 자살했다.

장성택은 올해 나이 63살로 김정일보다 4살 아래다. 김정일과 비슷한 세대임과 동시에 김정일이 질투와 위협감을 느낄 정도로 매력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전해진다.

실제로 장성택을 근처에서 지켜봤던 황장엽 위원장은 장성택의 학창 시절에 대해 “장성택은 그 반에서 공부를 특별히 잘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예술서클 책임자로서 아코디언 연주가 일품이었고, 노래와 춤에도 능했으며 무엇보다도 사리에 밝고 영리했다”고 회고하고 있다.

고 이한영 씨도 “장성택은 내가 봐도 매력 있는 남자다. 우선 잘 생겼고, 굉장히 재주가 많다. 예능방면에도 소질이 많다. 특히 아코디언을 기가 막히게 연주한다. 술도 잘 마시고 말도 재미있게 잘 한다. 장기도 잘 두고 주패(트럼프)도 잘하는 등 잡기에 능했다”고 설명했다.

노래와 춤에 능하며 이른바 ‘놀 줄 아는’ 장성택은 그만큼 김정일의 비밀파티에도 자주 불려갔고, 결과적으로 김정일의 ‘오른팔’ 역할도 톡톡히 할 수 있었다.

장성택은 또한 호방한 성격에 대인관계도 좋고, 카리스마까지 지니고 있다고 한다. 김정일도 장성택을 인간적으로 좋아하면서도 그의 인기가 자신보다 높은 것을 질투, 경계하고 있다는 말도 떠돌고 있다.

장성택과 함께 당 행정부에서 근무했던 고위층 탈북자 이장우(가명) 씨도 장성택의 성격에 대해 “유머감각이 뛰어나고 부드러운 편에 속한다”며 “김정일과 같이 급한 성격이 아니고, 기분을 맞춰주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김정일을 옆에서 잘 맞춰주었다”고 밝혔다. 개인적으로는 생선회와 일본 소주를 즐겼다고 한다.

이 씨는 또한 “리더십이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따르는 스타일이고, 카리스마도 있지만 현재 김정일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다”며 “한때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김정일을 보좌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 장성택이 ‘강경파?’…김정일 뜻만 수행= 한편, 2년 만에 북한 권력의 중심부로 복귀한 장성택은 실각 이전보다도 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정일 와병 징후가 포착된 9월 이후에는 북한 권력의 노른자라고 할 수 있는 노동당 조직지도부를 사실상 장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성택은 현재 보위사업과 검열사업을 넘어 내부 통제사업과 김일성 탄생 100주년기념 건설사업, 중앙당 내부 인사까지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지방 주요 시·군 당 조직이나 군부에 대한 검열 사업까지 직접 진행했다.

이처럼 장성택은 김정일의 신임을 바탕으로 권력 전면에 부상했지만 각종 검열과 통제조치를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면서 그에 대한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 내부 소식통은 최근 ‘데일리엔케이’와의 통화에서 “일반 백성들 뿐 아니라 간부들 사이에서도 ‘장성택은 천하의 간신’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장성택이 권력이 커질수록 북한 내 통제정책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통일연구원 박형중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장성택의 지위가 강화된 2006년 이후부터 북한이 보수적 대내정책으로 전환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반면,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6일 ‘데일리엔케이’와의 통화에서 “장성택이 시장 억제 등 사회통제 정책을 주도해 경제정책적인 측면에서 ‘강경파’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7·1경제개선관리조치나 공장 현대화와 같은 경제시책 등을 주도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로서는 장성택이 두 가지 역할을 다 한다고 볼 수 있다”며 “김정일이 한때 건강이 악화되고 자기가 모든 것을 챙길 수 없을 때, 가장 믿을만한 장성택에게 여러 일을 다 맡겼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탈북자 이 씨는 “북한에서는 김정일외에 ‘결정권’을 갖는 사람이 있을 수 없다”며 “장성택은 김정일의 뜻을 오차 없이 수행하는 일만 맡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장성택이 사회통제적 측면에서 영향력이 높기 때문에 개방이나 시장화 조치를 반대 하는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북한의 이른 바 ‘혁명자금’을 마련하고 관리하는 등 경제 문제에 대해서도 경험이 많기 때문에 개인적 판단을 앞세워 개방 정책을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김정일의 통치가 흔들리지 않는 한 장성택의 역할도 항상 제한적”이라며 “장성택도 눈치가 빠르기 때문에 김정일의 건강이 회복되고 통치행위가 지속되는 한 많은 부분을 대신하거나 책임질만한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일이 후계자 결정…장성택은 지원만 =장성택과 관련한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북한의 후계구도에서 그의 역할이다.

일각에서는 김정일이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자신의 아들들보다는 장성택에게 일시적으로 권력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김정일이 갑작스럽게 사망할 경우 장성택을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가 구축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특히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공개 활동을 하지 못했을 때는 장성택이 실제로 북한을 통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외신들의 추측성 보도가 줄을 이었다.

이와 관련, 최진욱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장성택이 현재 북한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다”며 “김정일의 건강이 좋을 때도 다른 주요 인사들이 장성택을 찾아 정책을 논의하는 것이 목격된 만큼 김정일 사후에 북한을 통치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정보기관도 김정일이 건강 이상으로 대리인을 내세우거나 사망할 경우 장성택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이 밖에 장성택과 김경희가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을 후계자로 세우려 하고 있으며, 이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은 차남인 김정철을 후계자로 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은 지난해 12월 북한 정권에 가까운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김정일의 후계자로 장남인 김정남을 지지하는 장성택 부장은 2007년 말 이제강에게 ‘김정남으로의 후계자 단일화’를 요청했다 결렬됐다”며 “이로써 두 후견인 사이의 균열이 본격화됐고, 이후 김정일의 건강 악화까지 더해져 후계 문제가 혼돈을 거듭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김광진 연구위원은 “후계구도와 관련해서는 김정일의 판단이 결정적”이라며 북한 내에서 후계구도를 둘러싼 측근들의 갈등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누가 누구를 밀어준다는 시나리오는 있을 수 없다”며 “김일성이 김정일 자신을 후계자로 내정할 때 혁명 원로들과 토론했던 것처럼 측근들에게 의견을 물어볼 수는 있겠지만, 측근 중 누군가가 세력화를 꾀해서 후계구도를 결정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장성택도 권력의 한 축이기 때문에 일단 후계자가 결정이 되면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세종연구소 정성장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은 “장성택은 지도부 내에서 평판이 좋고 국가보위부와 인민보안성 등에 대한 행정적 지도 권한을 가지고 있어 유사시 권력을 장악하는 데 유리한 위치에 있다”며 “그러나 김정일이 가까운 미래에 사망하게 된다면 당 내 어느 파워 엘리트도 현재의 김정일 같은 확고한 영향력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