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美一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

“전후납북자 특별법이 지난 4월초 국회에서 통과됐으니 이제 국회 행자위에 계류중인 전시납북자 특별법도 정부가 제정할 것이라 믿습니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미일(李美一.58) 이사장은 2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시납북자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은 저희도 알지만 정부가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는 이상, 특별법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사안”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2006년 3월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이 구두로 전후납북자 입법을 먼저 하고 이어서 전시납북자 입법을 약속했다”며 “이 약조를 통일부가 이행하리라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전시납북자 해결 방안과 관련, “생사확인과 소재파악, 서신교환, 송환을 단계적으로 해야 하며 대북 경제지원과 반드시 연계해야 한다”며 “특히 북한의 성의.성과 여하에 따라 경제지원의 양과 범위를 결정하는 ’인센티브’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이사장이 전시납북자 관련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 직후부터.

6.25 당시 서울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던 아버지가 북한에 끌려간 뒤 의사인 어머니와 함께 살아온 그는 “정상회담 후 연일 언론에서는 전후납북자만을 납북자 문제로 인식하는 보도가 나와 어이가 없었다”며 “전시납북자 가족이 나서주기를 기다렸지만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어 전시납북자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가족회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가족회는 처음 5가족으로 시작했는데 현재는 약 800가족으로 늘었다.

가족회는 지난 6년5개월간 납북자 관련 명부를 5종이나 발굴하는 등 전시납북자 관련자료 수집에 주력해 왔으며 지난해 9월에는 납북관련 자료를 집대성한 1천140여쪽의 ’한국전쟁납북사건사료집1’을 발간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 이사장은 “저희의 활동은 현재진행형의 고통에 대한 절규이면서 동시에 미래를 향한, 기성세대의 책임을 묻는 작업”이라며 “가족회 산하 자료원을 중심으로 증언 수집과 관련 문서 발굴을 계속해 내년에는 2차 사료집을 발간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전시납북자 현황에 대해 “흔히 ’의용군’이라고 불러온 젊은이들을 제외한 순수 납북자 수는 대략 1만5천명 정도이지만 의용군 젊은이들 중에서 과연 몇 명이나 자진해서 북한군에 입대했겠느냐”며 “이 젊은이들을 납치로 청춘을 빼앗긴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굳이 납북자 분류에서 제외시킬 이유가 없다”면서 납북자는 8만명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전시납북자가 납북자 범주에 속하느냐’는 일부 반론에 대해 “대한민국은 1953년 휴전 이후에 성립된 국가가 아니라 명백히 1948년에 정부를 수립한 나라”라며 “전시납북자도 당연히 대한민국이 보호 책임을 갖고 있는 국민일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그는 특히 “경찰이나 공무원 등 국가에 기여한 이유로 또는 이념적인 이유로 납북된 사람들을 군인(국군포로)과 구분해야 하는 까닭을 알 수 없다”며 “정부는 대북협상 이외에 정보기관을 활용해 직접 전시납북자들의 소식을 탐지하는 활동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납북자는 없다’고 주장하는데 대해서는 “평상시에도 납치를 일삼은 북한이 전쟁이라는 최적의 납치환경에서 남한 민간인을 납북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며 “김일성의 1946년 7월31일자 교시문 ’남조선에서 인텔리들을 데려올데 대하여’를 비롯해 북한당국이 작성한 납북관련 문서기록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가족의 생활상에 대해 “남북화해가 시작되기 전에는 피해 보상은 고사하고 오히려 연좌제로 감시를 당하며 고생했으며 남북화해 시대에는 정부의 소극적인 자세로 소외감을 떨칠 수 없다”며 “정부는 전시납북자 문제를 남북화해의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인식하고 조속히 해결에 나서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 이사장은 납북된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표하면서 “어머니의 평생에 유일한 사랑은 아버지 한 분 뿐이셨고 우리는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며 “아버지가 잡혀가신 그 곳에서 우리 가족은 아직도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다”면서 인터뷰를 끝맺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