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렸던 대북 포용정책 ‘제자리로’

북한의 핵실험은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정권 출범 이후 일관되게 추진됐던 대북 포용정책에도 엄청난 부담을 안겼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대북 포용정책의 효용성과 지속여부를 놓고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들은 ‘포용정책이 북한 핵실험을 가져왔다’는 비난을 쏟아냈고 열린우리당에서는 ‘포용정책 외에 대안은 없다’며 맞섰다.

이같은 남남갈등 양상은 핵실험 한 달이 다 돼가는 현재까지도 완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정부 내에서도 핵실험 직후에는 대북 강경론이 다소 우세한 듯 보였다.

10월9일 핵실험 직후 나온 정부 성명에는 온통 북한에 대한 경고만 담겨있을 뿐 대화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고 이날 오후에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이 마당에 포용정책만을 계속 주장하기는 어려운 문제”라며 대북 정책의 재검토를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노대통령이 핵실험 이튿날 여야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포용정책이 핵실험을 가져왔다고 하는데 인과관계를 따져봤으면 좋겠다”고 밝히며 포용정책 실패론에 신중한 입장을 취했고 곧 `포용정책의 근간은 유지하되 부분 조정한다’는 방향으로 입장이 정리됐다.

포용정책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지난달 15일 유엔 대북 제재안이 채택되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정부 당국자는 “유엔 결의 1718호에 제시된 제재는 이미 우리 정부가 해오던 것이어서 추가로 취할 게 없었다”며 “결의안이 제재와 함께 대화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적시한 점도 포용정책에 힘을 실어줬다”고 말했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사업 등 핵심 남북경협사업에 대한 국내외의 중단 압력에도 정부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결의안과 무관하다”며 지속 방침을 천명할 수 있었다.

최근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선언하면서 정부 분위기는 더욱 대화로 기운 듯 하다.

노대통령은 6일 시정연설에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북한과 대화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큰 틀에서 대북 평화번영정책의 기본원칙은 지켜나가겠다”는 등의 표현으로 포용정책의 근간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노대통령은 다만 “정책의 속도와 범위는 조절한다”는 단서를 붙였지만 이는 대북 쌀.비료 지원 유보와 개성공단 추가 분양 연기 등 이미 시행하고 있는 조치들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돼 추가로 대북 포용정책에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핵실험 이후 국내외의 공세에 다소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결국 대북 포용정책은 대체로 오롯이 근간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 당국자는 “대통령도 말했듯 평화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 최상의 가치”라며 “초반에는 다소 혼돈스런 상황이 없지 않았지만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는 포용정책 외의 대안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정치외교적 요인 외에 예상외로 차분했던 시장도 포용정책 유지에 한 몫을 했다는 후문이다.

핵실험 당일 주식시장이 폭락했지만 외국인 투자자의 대규모 매수로 바로 진정되면서 정부 당국도 냉정하게 북핵사태를 평가할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다.

거시적으로는 대북정책의 방향이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았지만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여전히 고민중인 사안도 있다.

대표적인 게 PSI(확산방지구상)로 국제사회, 특히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과 남북 간 무력충돌을 포함해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 아직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핵실험 정국에서 외교안보부처 수장들도 후폭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반기문(潘基文) 외교부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당선으로 발생한 인사요인은 윤광웅(尹光雄) 국방장관, 이종석(李鍾奭) 통일장관, 김승규(金昇圭) 국정원장의 연쇄 사의로 외교안보라인 전면 교체로 이어졌다.

청와대는 문책성 인사가 아니라 했고 이종석 장관도 “정책 실패때문에 물러나는 것이 아니다”고 역설했지만 핵실험 정국에서 적잖은 상징성을 지녔다는 평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