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실험 준비 판단기준은 관측탑ㆍ케이블

지난달 30일 일본 교도통신이 첫 보도한 북한의 핵실험 준비설이 아직까지 좀체 불식되지 않고 있다. 1990년대부터 갱도 굴착 공사가 진행됐던 함경북도 길주 상공을 촬영한 최근 위성 사진을 놓고 이를 핵실험 준비의 징후로 볼 수 있다는 시각과 없다는 견해가 서로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달 6일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길주에서 관람대(review stand)가 세워지고 있으며 갱도(터널) 메우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미 고위 정보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하면서 핵실험설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같은 신문에서 9일 북핵과 관련된 정보가 미국 행정부 정책에 따라 부풀려지거나 왜곡될 수 있다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북한의 핵실험설의 진상을 둘러싼 논란을 촉발시켰다.

이런 가운데 2003년 7월 중국에서 출간된 ‘현대 무기장비 지식총서(핵무기 장비편)’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북한의 핵실험설의 근거가 미약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다양한 자료를 담고 있어 주목된다.

특히 핵실험을 실시하기 전의 동굴 내부와 관측탑 사진은 북한의 핵실험설의 진상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

이 책에 따르면 핵실험을 위해서는 먼저 수평 또는 수직의 갱도를 판 뒤 동굴 내부에 각종 탐측장비를 설치해야 한다. 동굴 내부 탐측장비를 외부 관측탑을 연결하는 대량의 케이블이 필요하다.

그런데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 현재까지 언론에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관측탑 설치 징후는 있어도 동굴 내부에 탐측장비를 설치하거나 여기에 케이블을 연결하는 징후는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핵실험 준비는 갱도굴착→갱도 내부 탐측장비 설치→관측탑 설치 순서로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다음에 탐측장비에 연결된 케이블을 동굴 바깥으로 빼내 관측탑에 연결한 뒤 대형 크레인을 동원, 관측탑을 들어 올려 설치해야 하므로 쉽게 관측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6일 뉴욕타임스가 “북한이 터널을 메우기 위해 무언가를 옮기고 있다”고 전하면서 이를 핵실험 준비 징후로 보도한 것은 다소 엉뚱하게 보인다.

‘관람대’가 아닌 관측탑이 보여야 하고 케이블의 존재 유무가 언급돼야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기 때문이다.

터널은 핵실험에 따른 폭풍과 방사능 차단을 위해 메우는 것으로 이런 징후가 핵실험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기 위해서는 탐측 장비를 동굴 내부로 들여 갔거나 관측탑과 연결하는 케이블이 설치됐는지 여부가 먼저 확인돼야 한다.

이와 관련, 고영구 국정원장은 13일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간담회에서 “길주가 암반 지대로 핵실험에 적합한 장소이기는 하지만 관측소 건설을 위한 많은 인력과 물자의 이동이 포착되지 않았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서 고 원장이 언급했다는 ‘관측소 건설을 위한 물자’에 대량의 케이블도 포함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도 지난 16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에서 미국과 일본 언론이 제기한 핵실험설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케이블 설치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때문에 미국과 한국의 정보기관에서는 북한이 실제로 핵실험을 실시할 의도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현재로서는 동굴 내부 사진을 확보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적어도 탐측장비가 운반되거나 탐측장비에 연결된 케이블 등이 포착돼야 한다는 판단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길주에서 용도 미상의 갱도를 굴착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알려진 정보들을 북한이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단정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또 1990년대부터 갱도 굴착이 진행돼 왔다는 점과 핵실험장으로 지목된 장소 부근에 주택이 건설되고 있다는 정황 증거도 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