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필성ㆍ필화 남매, 국제통화 실현 (1971.2.17)

▲한필화씨와 가족들(출처:조선DB)

“필성 오빠, 필성 오빠” “필화야? 필화야?” 1971년 2월17일, 한필성ㆍ필화 남매가 일본 땅에서 20년 만에 애끓는 목소리를 주고받았다. 같은 도쿄 하늘아래에 있었지만 분단의 장벽은 둘의 만남을 허용하지 않았다.

한필성씨가 전화로나마 동생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한계화라는 또 다른 분단의 희생자가 있어 가능했다. 자매가 아닌 것으로 판명됐지만 삿포로 동계올림픽에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 출전한 필화가 자신의 동생이라고 주장하는 한계화씨 사연이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필화씨 사진이 신문에 실린 것이 결정적이었다.

필화가 자신의 친동생임을 확신한 한필성씨는 곧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ㆍ4후퇴 때 18세로 고향인 평남 진남포를 떠난지도 벌써 20년이 지났으니 30세가 됐을 동생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나 동생과의 만남은 북한 조총련의 방해로 성사되지 못했고, 우여곡절 끝에 아사히 신문이 둘의 통화를 주선함으로써 동생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 만족해야했다.

남매는 다시 통한의 19년을 기다린 끝에 1990년 3월8일 일본에서 재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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