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원 생활 답답했지만 새로운 시작 꿈꾸며…

“북한에서 글짓기를 참 좋아했어요. 문학, 글쓰기는 항상 1등을 했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잘해도 북한에서는 희망이 없어요. 출신성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죠”

한국의 발을 딛는 순간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는 최아인(가명. 함경북도·45) 씨. 북한과 중국의 날씨는 워낙 춥고, 제3국은 날이 너무 더워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고 했다. 한국 입국 당시 하늘을 바라보며 “한국은 따뜻하구나. 이제 살았다”라고 몇 번이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 최 씨가 한국 입국 당시 쾌적한 날씨에 감동을 받았다기보다 그동안 겪었던 육체적, 심적 고통 그리고 안도감이 교차했는지도 모른다. 과거 북한에선 아버지가 남한 출신이라 좋지 않은 출신성분으로 분류됐고, 이런 영향은 3대까지 이어져 더욱 삶이 힘들었다.

학창시절엔 주변에서 ‘괴뢰군의 자식’이라며 수군대거나, 왕따를 당하는 등 어린나이에 감당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차가운 시선으로 인해 매번 학교에 나가는 것이 고통스러웠지만 그럴수록 책도 열심히 읽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만 7세가 되면 조선 소년단에 가입하는데 최 씨는 이마저도 마지막으로 입단했었다며 북한에서의 경험을 토로했다.

남들보다 공부도 잘하는데 항상 꼬리표가 붙어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최 씨. 당시 북한이란 나라가 너무 싫어 외국어 공부를 해 유학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며 소회를 말했다.

17세가 되던 해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셔 혼자가 됐다. 국가에서 주는 된장, 간장, 강냉이로 생계를 간신히 이어가다 보니 종종 쓰러지기도 했다. 생계를 위해서라도 일을 빨리 시작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김정일 집권 시기에는 출세에 대한 제한이 보다 완화돼 시험을 보고 탄광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돼 2년간 야간 통신 일을 했다.

길고 길었던 하나원 생활

중국과 북한에서 힘든 시기를 견딘 최 씨는 한국생활 중 하나원 생활이 기억에 많이 난다고 했다. 물론 현재는 좋은 추억도 많지만 당시 하나원에서의 생활은 결코 즐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고, 다른 문화에 적응하는 데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최 씨는 하나원 생활을 두고 철장이 없는 감옥 같았다고 표현했다. 대부분의 탈북민들이 몇 개월 동안 제3국을 거쳐 오는데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게 되고, 그러다 보니 하나원에서 싸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최 씨는 한국에 함께 오지 못한 5세 딸이 생각나 눈물도 많이 흘렸다. 무엇보다 교육 환경이 좋은 한국에서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고.

남한과 북한의 문화적 이질은 때때로 정착에 대한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과 중국에서 고생했던 나날을 생각하니 좋은 환경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무엇보다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주변 사람들이 도움을 많이 줬다. 원망도 부담도 많았던 한국행. 차가웠던 마음은 점차 녹아내렸다. 현재는 한국에서 좋은 남편을 만나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전했다.

차별은 곳곳에, 이겨내고 열심히 일해야

최 씨는 정착 초기 몇 개월간 약 40여만 원 상당의 기초수급비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핸드폰 사용방법을 몰라 통신비만 20만 원이 들어갔다. 이후 울며 겨자 먹기로 무작정 구직활동에 나섰다. 여러 식당을 둘러본 결과 서울대입구역 부근의 곱창집을 발견했다.

최 씨는 12시간 근무에 120만 원을 주겠다는 사장님 말에 흔쾌히 일하겠다고 답했다. 직업을 구해 자랑스러웠던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근로시간에 비해 급여가 작다며 최소 150만 원은 받아야 하는것이 아니냐며 다시 급여 협상을 하라고 조언했다.

화가 난  최 씨는 곱창집 사장과 담판을 지으려 했다. 이에 돌아오는 답변은 “말투 때문에 급여를 올려줄 수 없으니 차라리 그만둬라”였다. 한국생활은 예상대로 녹록지 않았다. 물론 현재도 불합리함을 이겨나가는 중이다.

현재 가정을 이뤄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최 씨. 그러나 북한과 중국에서 겪은 고통을 잊으려 했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가끔 북한에 잡혀가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남편이 마음을 다시 잡아줘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최 씨는 현재 14평의 작은 집에 살고 있다. 큰 집을 사서 자식도 낳고 잘 키우면서 소박하지만 재밌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