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밖 북한] ‘청부 뛰는 사람들’ 모질게 버티던 러시아 北 노동자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 모습.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은 세계 정치 지형을 바꾸고 있다. 북한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무엇보다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한 해외노동자 파견이 전면적으로 중단되었다.

기존 해외 파견 북한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실태가 언론을 통해 조금씩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지난주 “한국행을 꿈꾸던 러시아 파견 북한군인이 납치, 처형됐다”는 제보의 기사(데일리NK, 4월 29일자 기사)는 가히 충격적이다.

해외에 나와 있는 북한 사람에게 ‘제보 전화’를 받았다는 데일리NK 측은 제보 내용의 사실관계를 재차 확인하고 보도했다. 전 세계에 북한 당국의 만행을 알려달라는 제보자의 간곡한 청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건 <데일리NK>의 존재 이유이자 사명이기도 하다.

필자는 지난 2019년 12월 <러시아에서 분단을 만났습니다 : 충성의 외화벌이라 불리는 북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러시아 지역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를 현지에서 직접 심층 인터뷰한 내용이다. 그들이 처한 상황과 고통을 세상에 전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다.

러시아에 파견된 회사는 북한당국에 계획분을 바쳐야 한다. 중간, 고급 간부는 본인이 직접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파견 노동자들을 관리하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돈을 모아 국가에 바친다.

따라서 자신들이 관리하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더 많은 돈을 벌고, 계획분을 채울 수 있다. 그렇기에 관리자는 언어와 기술이 숙련된 노동자를 개별적인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한다. 단체생활을 하는 숙소가 아닌, 개인이 직접 노동을 하고 계획분을 벌어오는 방식이다. 그들 사이에서 이러한 노동자를 ‘청부 뛰는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청부 일을 하는 북한 노동자가 회사에 바쳐야 하는 계획분은 1인당 매월 1000달러 규모다. 계획분을 바치는 과정에서 한 달에 1000달러 정도 금액은 러시아 현지 물가를 고려할 때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다. 건설현장에서 노동자 한 사람의 일당이 대략 2000루블(한화 4만 원)정도이기 때문에 1000달러는 일당으로 치면 30일을 꼬박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건설현장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30일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욱 큰 문제는 러시아 지역의 날씨 사정을 고려할 때 일할 수 있는 날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겨울이면 건설 일감이 반으로 준다.

청부를 나가기 위해서는 언어와 기술 습득은 기본이고 간부와 신뢰가 형성되어야 한다. 만약 이 노동자가 도망가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관리자에게 있으며 엄중한 처벌도 따른다. 더욱이 이렇게 허가를 받으려면 당연히 뇌물이 오간다. 회사에 바치는 계획분인 매월 1000달러를 제외하고 중간, 고급 관리들에게 별도로 뇌물을 바쳐야만 청부 노동자로 생활할 수 있는 것이다.

관리자는 청부 일을 하는 노동자를 감시하기 위해 수시로 공사현장을 방문하거나 전화로 위치를 파악한다. 일주일 동안 나가서 혼자 청부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반드시 토요일에 회사 합숙소로 복귀해야 한다. 토요일마다 이루어지는 학습, 생활총화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또한 계획분을 바치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다. 매주 토요일에 한 번씩 관리자와 만나서 상납하거나 숙소에 들어와서 바치는 형태다.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필자 역시 러시아에서 만나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인 노동자와 연락을 할 때 토요일에는 연락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함께 생활하는 합숙소에서 남한 사람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는 건 생각만 해도 곤란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일주일 만에 모여서 생활총화를 하는 이유는 사상을 통제하기 위함이다.

한 북한 노동자의 증언에 따르면 생활총화에서 주로 “김씨 일가의 위대성을 반복해서 교육받는다”고 했다. 김정은의 로작, 김정일 로작, 사회주의과학 등이 주요 학습 내용이었다.

필자는 한 노동자로부터 생활총화 노트를 입수했다. 동료가 작성한 생활총화 노트인데, 북한으로 돌아갈 때 남겨놓은 것이라고 했다. 노트에 쓰인 이름을 알아볼 수 없게 지우고 필자에게 건네주었다. 빼곡한 글자로 채워진 노트 한 권에서 그들의 고된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생활총화 노트는 일정한 형식으로 구성되어, 매일, 매주 작성되었다. 힘든 노동의 현장에서 하루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면 바로 잠자리에 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생활총화 노트를 작성하며 투철한 사상으로 무장한 후에야 겨우 하루를 마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모질게 견디며 살아내는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의 삶이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그런 삶 말이다.

*이 글은 <러시아에서 분단을 만났습니다 :‘충성의 외화벌이라 불리는 북한 사람들>(도서출판 너나드리, 2019)의 일부를 수정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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