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는 더 이상 노다지가 없다

6.15 행사에 참석한 남측 민간대표단

“황금광시대(黃金狂時代)라 불리던 그 시절, 삼천리 방방곡곡 바위가 있고 흙이 있는 곳이라면 망치를 든 탐광꾼들이 없는 곳이 없었다. 양복쟁이, 상투쟁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눈코 박힌 사람이 두 세명만 모이면 금광 이야기를 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봉관 교수가 쓴 책 <황금광시대>에 나오는 대목이다. 1930년대 실제 한반도를 휩쓸었던 골드러시를 잘 묘사하고 있다. 최근 한반도를 휩쓸고 있는 ‘6.15’라는 광풍은 흡사 1930년대 황금열풍을 연상시킨다. ‘평양’이라는 금광에서 ‘민족공조’라는 노다지를 캐기 위해 떼지어 몰려가는 사람들. 이들에게 평양은 신화가 돼가고 있다.

그곳에는 통일부 수장부터 한총련 의장까지 망라돼 있다. 정치인들은 평양행 티켓을 잡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통일부는 과열된 방북경쟁으로 잡음이 나오지 않도록 자제 요청까지 했다.

한겨레신문은 6.15 공동행사 시작을 알리면서 ‘남북 평화의 노래 평양을 흠뻑 적시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노래는 평양에만 울리는 국지(局地)성 호우(豪雨)다. 국민들은 한반도의 변덕스러운 날씨에 혼란스럽다. 지금이 위기인지, 위기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여론조사에서 한국인의 40% 정도가 북핵이 위협적이지 않고, 장래 한반도 국력신장에 도움이 된다고 이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SBS 여론조사, 남북관계 성공적이지 않다 67.6%

6.15 거품은 조금씩 빠지고 있다. SBS가 6.15 5돌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실제 변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절반 이상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회담 이후 최근까지 남북 관계도 성공적이지 않다는 견해가 67.6%나 됐다. 2000년 정상회담 직후와 극명하게 달라졌다.

15일 정부 대표단이 참여한 가운데 ‘민족통일선언’을 발표 자리에서 안경호 북측 준비위 위원장은 “민족 자체의 강력한 힘을 키우는 길만이 평화를 지키는 유일한 선택”이라며 “반전평화공조의 전초선에서 내외 호전세력의 전쟁책동을 부숴버리기 위한 통일운동을 계속 힘차게 벌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이번 대회가 어떤 의미를 갖고 치러지는지 잘 말해준다.

정동영 장관이 도착하자 북측은 백화원 초대소를 정부 대표단 숙소로 제공했다. 이곳은 김정일 위원장이 국빈을 맞이하는 곳이다. 김정일은 ‘깜짝 외교’의 전문가다. 그는 사람을 잘 안다. 정 장관이 얼마나 감동하고 고마워했을지 눈에 선하다. 이러한 배려에 응답하기 위해 정 장관은 나름의 노력을 할 것이다.

김정일은 30년 동안 남한을 상대해온 대남 전략가다. 남북을 통털어 김정일만한 남북관계 전략가는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 정상회담에서 보여줬듯이 그는 남한 인사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정 장관은 정치부 기자, 앵커 출신이다. 그는 북한 전문가도 아니다. 정 장관이 전략이라도 제대로 세웠는지 의문이 든다. 노무현 대통령이 보내준 친서 하나 들고 김정일 방을 노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 전부는 아닐까.

정장관, 김정일에게 대선행 직행티켓 구걸하나

황금광 시대 백만장자를 꿈꾸며 망치 하나 들고 전국에 있는 산을 헤맨 사람들. 그들 중에 백만장자가 된 사람은 몇 사람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적당히 포기하거나, 쪽박을 찼든지, 아니면 금을 훔치거나 빼돌리는 데 몰두했다. 민족공조로 처음 대박을 터트린 주인공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뒤를 이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나서고 있다. 그도 황금부자 대열에 올라 설 수 있을까.

기자에게 직접 그 답을 묻는다면 단연코 “아니올시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평양에는 더 이상 노다지가 없다. 이것이 현실이다. 김정일 정권이 핵을 품고 몰락하든지, 핵을 포기하고 권좌에서 쫓기어 나든지 결론은 매 한가지로 보인다. 남은 것은 결국 시간 문제다.

그렇다면 이 정권도 온전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핵개발의 장본인인 김정일을 찾아가 대선(大選)행 직행 티켓을 구걸한 이 정권을 국민들이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결과는 뻔한 것이다.

6.15 5주년이 진정 온당한 평가를 받으려면 남북화해를 지렛대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민족의 공존과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는 남북화해는 부질없다. 정 장관이 묶고 있는 백화원 초대소는 핵무기를 개발하는 영변과 109Km 떨어진 곳이다. 평양-회천 고속도로를 타면 1시간 반이면 족하다. 정 장관은 자신의 어깨에 놓여진 엄중한 과제를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6.15 5주년을 경과하면서 남북관계가 변했다, 북한이 변했다는 말이 많다. 일본의 북한전문가 다케사다 히데시는 정작 변한 곳은 남한이며 햇볕정책의 주인공은 김정일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북한 보다 더 변했다는 것이다. 그 변화로 인해 우리는 핵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눈감게 되었다. 우리는 그 변화의 마지막 변태(變態)를 보고 있는 중이다.

신주현 취재부장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