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무샤라프 사임, 반테러 협력 안개 속으로

탄핵 위기 속에 사퇴 압력을 받아온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결국 스스로 사임하는 길을 선택했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18일 CNN 등 TV로 생중계된 대국민연설에서 “정적들이 내게 무고한 혐의를 씌우고 있다. 어떤 혐의도 인정할 수 없다”면서도 “현 정국을 고려해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나의 미래는 국민 손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1999년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8년 10개월간 지속된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통치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다.

1999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무샤라프는 작년 11월 대통령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지난 2월 총선에서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N)와 파키스탄인민당(PPP) 등으로 구성된 반무샤라프 연정이 상·하원 의석의 3분의 2에 육박하는 의석을 확보한 후 현 무사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점쳐져 왔다.

집권연정은 무샤라프가 군(軍) 참모총장 자격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던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3월 대법원장 파면 ▲지난해 11월 대법원 재판부 축출 및 감금 등 2차례에 걸친 사법부 탄압 ▲발루치스탄 분리독립을 외치던 정치인 나와브 아크바르 부그티 살해 ▲이슬람 급진 ‘랄 마스지드(붉은사원)’ 유혈 진압 ▲파키스탄 국민에 대한 무력 사용 등 수많은 사안들을 탄핵의 사례로 들며 무샤라프를 압박했다.

탄핵안이 실행에 옮겨지자 무샤라프는 탄핵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그동안 버텨온 자신의 자리를 전격 사임한 것으로 풀이된다. 탄핵을 통해 강제로 물러나는 것보다는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그나마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본 것이다.

무샤라프가 사임을 발표하자 집권연정측은 즉각 환영 의사를 밝혔다. 연정 대변인인 셰리 레먼 정보부 장관은 “오늘은 민주세력이 승리한 날”이라며 “오랜 기간 이 나라를 짓눌러왔던 독재의 그림자가 종말을 고했다”고 논평했다.

그 동안 무샤라프 정권을 지지해오던 미국도 무샤라프가 사임 발표 직후 밝힌 성명을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파키스탄 민간 정부를 강력히 지지한다”며 무샤라프의 사임을 받아들였다.

고든 존드로 백악관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은 알-카에다와 극단주의 집단과의 싸움 그리고 파키스탄의 민주화에서 보여준 무샤라프 대통령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사한다”고 밝히고 “파키스탄 정부와 경제, 정치, 안보 문제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협력해 가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 동안 미국과 함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는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집단인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단속하는 데 긴요한 파트너 관계를 형성했던 무샤라프의 사임으로 인해 미국 주도의 ‘대테러 전쟁’에는 일정한 타격이 예상된다.

한편, 무샤라프의 사임 직후인 21일 파키스탄 군(軍) 당국이 운영하는 무기공장에서 자살폭탄 테러로 추정되는 2건의 폭발이 일어나 최소 60명이 사망했다. 파키스탄 탈레반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이번 공격이 자신의 소행이라며 “파키스탄이 공습을 중단하지 않으면 이슬라마바드를 포함한 다른 대도시에서 폭탄 테러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무샤라프의 사임으로 인해 파키스탄은 이제 새로운 대통령의 선출을 비롯해 국내 정치세력간의 갈등, 미국과의 대테러 협력 유지 등 향후 정국 안정을 위한 중요한 기로에 놓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