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1호 박사가 말하는 탈북자 지원 정책

통일 한반도. 누구나 꿈꾸는 미래일 텐데요. 통일을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연구하고 또 일하고 있는 전문가들과 이야기 나눠보는 ‘통일대담’ 시간입니다. 한국 사회 내 북한이탈주민숫자가 3만 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이들 탈북자들의 한국 정착과정은 그 자체로 작은 통일이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요. 하지만 이들 탈북자들에 남한사회의 지원정책은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잘 정착하는 것이 통일 준비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효과적인 탈북자 지원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8월 28일 이 시간에는 한국 정부의 탈북자 지원정책과 향후 개선방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님 전화연결 돼있습니다. 

1. 소장님께서는 한국 사회에 탈북자 1호 박사로 널리 알려지신 분인데요. 1979년도에 서부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처음 한국에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그 당시는 탈북자가 1년에 1,2명 정도만 휴전선이나 동서해안을 따라서 왔고, 국경을 넘어 제3국을 거쳐 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탈북자 수가 적다보니 처음 제가 한국에 왔을 때는 상당히 외로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우리정부와 국민들이 많이 지원해 주었고 당시 저는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르고 왔지만 탈북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살게 됐습니다. 

2. 소장님께서도 한국에 오신지가 어느 덧 40여년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탈북자 1호 박사라고 하는 명함이 때로는 부담스러우실 때도 있으셨을 텐데요. 한국사회에서 탈북자로 살아갈 때, 어떤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저에게 탈북자, 귀순용사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사실 그런 타이틀을 빼기 위해서 공부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부터 학사, 석사, 박사까지 14년을 공부했고, 졸업식 날 박사학위를 받을 때 저는 더 이상 제가 탈북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졸업식장에 갔습니다. 그런데 언론사에서 저를 그날 취재해 탈북자1호 박사라고 뉴스를 보도했습니다. 지금까지 벌써 10년 넘게 탈북자1호 박사 타이틀이 붙어있는데 이제는 익숙해졌습니다. 탈북자라고 하면 아직도 우리사회에서는 좋지 않은 시각도 있지만, 그런 시각에 개의치 않고 오히려 통일을 위해서 북한인권 실현을 위해서 당당하게 일하고 방송하고 있습니다.  

3. 말씀하신 마음가짐이 잘 발휘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탈북자 분들을 잘 도와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한국 정부의 탈북자 지원정책을 지켜보셨을 텐데요. 한국 정부의 탈북자 지원 정책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탈북자 수가 적을 때는 주택도 주고 물질적 혜택을 많이 줬는데, 이제는 그 탈북자 수가 많아지지 않았습니까? 탈북자 수가 2만 7천명이 넘었는데, 이는 강원도 인제군 전체가 북한에서 여기로 온 것입니다. 과거처럼 똑같이 무상 주택을 제공하는 것은 어렵고, 아무래도 탈북자들에 대한 인식,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편견 이런 것을 정부가 극복하도록 도와 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에서는 연간 260억 이상을 북한이탈주민 재단에 지원을 해주고 있는데, 이는 막대한 예산을 탈북자 지원에 쏟는 것입니다. 다만 예산이 배분되는 과정에서 탈북자에게 탈북자 정책을 일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탈북자 사회 내 여론이 있습니다. 

4. 탈북자에 대한 정부의 지원정책에 관해서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한국 정부의 지원정책 중에서 가장 잘 되었다고 평가하시는 게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가장 잘된 정책 중 하나는 하나원 설립과 한겨레 고등학교를 통해 적응을 못하는 학생들을 관리해 준 것입니다. 또한 이를 위해서 봉사단체들이 와서 대안학교도 세워준 것은 바람직한 정책입니다. 실제로 이 정책이 잘 실행돼서 탈북자들의 큰 불편을 해소해 줬습니다. 다만 정부가 사용하는 막대한 예산이 실제적으로 탈북민 2만7천여 명에게 직접적으로 와 닿을 수 있는 정책들만 보완된다면 탈북자 정착 지원문제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5. 일각에서는 탈북자 지원이 단순한 재정지원이 아닌 본인이 스스로 한국사회의 귀중한 일원으로 성장하기 위한 지원과 지지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렇죠, 아무래도 개인에게 임대주택을 준다든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국가에서 주는 막대한 혜택입니다 그런데 탈북민들이 이후에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어떻게 가지는가가 관건입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가족형 탈북이 이루어지다보니 한 가정에서 한사람만 제대로 취직해도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음식을 파는 ‘푸드 트럭’을 만들어서 북한 음식을 판매한다든지 이런 아이디어도 적극 중소기업청에서 나서서 협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탈북자들이 여기서 먹고산다고 할 것이 아니라 통일이 닥칠 때, 북한 사회를 통합하고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거시적 관점에서 탈북자들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6. 탈북자 지원 정책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궁금했던 것을 여쭤보고 싶은데요. 탈북자 통계를 보니 탈북자 중 여성의 비율이 80%에 가까운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여성 탈북자의 비율이 높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북한의 식량위기 당시 1995년 이후에 북한경제가 무너지면서 공기업이 문을 다 닫았습니다. 그동안 남편들이 가장으로 가족을 먹여 살렸는데, 남편들이 직장을 잃으니까 여성들이 나와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장사를 했습니다. 장마당 생활이 또 힘들다보니 북한 여성들이 중국에 건너가 돈을 벌며 가정을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용기를 내서 탈북한 여성들이 또 한국으로 건너오다 보니 탈북자들내 여성의 비율이 높아지고, 중국에서 또 선교사들을 만나 한국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7. 한국 정부가 이들 여성 탈북자들을 위해서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여성 탈북자를 위한 한국 정부의 지원 정책, 어떤 것이 있나요?

여성들에 대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여성연령 역시 20~30대보다는 40~50대가 많다보니 이런 분들에게 직장을 주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들은 직업훈련이나 전문성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음식을 할 수 있는 기회나 현재 북한 전통 음식 등 탈북단체들이 나서서 추진하고 있는데 정부가 이를 적극 도와주면 40~50대 여성들의 취직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30대도 대학을 가고는 있지만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어서 궁극적으로 여성들에 대한 배려가 더 많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8. 여성 탈북자뿐만 아니라 많은 탈북자들이 탈북과정에서 겪었던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에서 탈북자분들의 이런 심리적 고통 해소를 위해 어떤 지원을 하고 있나요? 

그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인신매매도 당하기 때문에 사후 스트레스, 즉 외국 땅에서 겪었던 트라우마가 남아있어 심적 고통이 있습니다. 심리적 치유가 사회 나오기 전에 이루어져 그들이 사회에 잘 정착하고 가정도 잘 이룰 수 있도록 보건당국이나 의료분야에서 지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9. 탈북자 분들의 심리적 고통을 해소시켜 주는 시설뿐만 아니라 많은 탈북자 지원정책이 서울권에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요즘은 탈북민들이 하나원에서 교육을 마치고 나올 때 지역별로 균형 있게 배치합니다. 부산에도 보내고 심지어 제주도에도 200여명의 탈북민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역균형으로 배치한다고 하지만 탈북민들도 대부분 서울 정착을 원합니다. 이들은 단계적으로 경기도에서 거주하다 서울내에 터를 마련하고 하는데 이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분들이 어디를 가든 안정된 직장을 얻고 더 높은 생활수준을 좇아 가다보니 서울로 집중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지자체들이 잘 고려해서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 일꾼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이들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필요합니다. 

10. 상대적으로 지방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습니다. 지방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을 위한 한국 정부의 지원정책,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현재 다문화 정책에서 반면교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문화 가정과 탈북민 가정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다문화 가정은 애당초 한국에 올 때 남편을 만나서 생활의 기반이 확실하지만 탈북민들은 난민이나 다름없기에 생활의 기반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그들을 전라남도 해남에 배치하면 그 지역의 행정기관이나 여성봉사단체에서 이들이 안정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책들을 시행한다면 좋을 것입니다.  

11.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잘 정착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인데요. 탈북자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한국 사회의 편견과 선입견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런 편견들을 해소시키기 위해서,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현재는 민주평통 실시하는 멘토정책이나 한 가정에 한 탈북자 돕기 등 여러 가지 정책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기관 및 그 지역의 단체들이 탈북민들을 진정으로 이웃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우선되는 것은 탈북민들에 대한 편견을 고쳐나가는 것입니다. 먼저 탈북민들을 따뜻하게 보살펴주어야 한다는 인식부터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2. 이런 편견들을 해소시키기 위해서, 민간 부문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멘토, 한 가족 연계 탈북민 정책 그리고 개개인의 노력과 보살핌 등이 필요합니다. 탈북민들이 우리 사회에 발을 들어다 놓으면 사실 적응하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습니다. 사기당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교육을 하나원에서 잘 교육해서 그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하고 사회생활 하더라도 이러한 연속성을 잘 보장해서 이루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13. 소장님께서 한 언론과의 회견에서 “나는 성공한 적이 없다. 다만 성공을 향해 가고 있을 뿐”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방송을 듣고 있는 많은 분들이 본받고 싶어 하는 삶의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소장님의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탈북할 때도 그렇고 시종일관 언젠가 북한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태어난 고향이 있고 혈육이 있다는 것과 함께 한국에 정착한 것도 통일에 기여하는 일꾼이 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그런 목표를 향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탈북민들이 북한을 대한민국처럼 만드는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일각에서 정부나 사회에서는 탈북민들을 그렇게 보지 않는 시각도 있지 않은가라고 생각됩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