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가족 6천km 인도한 화제의 여장부

▲ 한국 공관에 망명을 요청해 입국하는 탈북자

한국의 정착지원금 축소, 중국의 탈북자 단속, 북한의 국경봉쇄 강화 등으로 인해 탈북자들의 입국을 돕는 브로커들이 크게 줄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북한에 있는 가족을 데려오려는 남한거주 탈북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가운데, 자신이 직접 중국에 가서 라오스를 거쳐 태국까지 가족 등 4명을 인도한 젊은 ‘여장부’가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남한에 입국한 지 2년된 탈북자 임영옥(가명, 27세)씨는 지난 7월초 중국으로 탈출한 가족들을 무사히 태국주재 한국대사관까지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고 9일 밝혔다.

임씨는 “그동안 북한에 남겨둔 가족 때문에 하루도 편히 지낼 수 없었다”며, “이제 한숨을 돌리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임씨가 탈북한 북한의 가족들을 중국-라오스-태국까지는 장장 6천km, 수만리 여정이다.

임씨가 함경남도 함흥시에 살던 가족들과 연락이 닿은 것은 1년 전. 당시 임씨는 가족들이 중국으로 막 탈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만사를 제쳐두고 중국으로 향했다.

1997년 “중국 금광에서 일하면 월급 1천원을 준다”는 말에 솔깃해 국경을 넘었던 임씨는 거의 8년만에야 어머니와 언니를 상봉했다.

다시 돌려보낼 수 없어, 자유사회로

가족들을 다시 북한으로 다시 돌려보낼 수 없다고 생각한 임씨는 가족들의 남한행을 계획했다. 그러나 브로커들과 연계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북으로 다시 돌려보내 달라”는 언니의 고집에 부딪쳐야 했다.

임씨는 “브로커를 찾는 것보다 언니를 이해시키는 것 더 큰일이었다”고 말한다.

“언니는 중국 구경도 한 번 못해봤으니 외부 세계의 실정을 전혀 몰랐어요. ‘북한에 다시 가고 싶다’고 했고, 나를 보고는 ‘몇 년 나가 살더니 변했다’고 퉁명하게 말하곤 했죠.”

그런 언니가 변하게 된 계기는 중국의 대도시에 들어서면서부터. 중국 요녕성의 성도(省都)인 선양(沈陽)시에 머무르는 동안 언니는 현대화된 중국의 모습과 사람들의 풍요에 놀랐고, 결국 마음을 돌렸다.

먼저 임씨는 제3국으로 인도할 브로커들을 찾았지만 쉽게 선이 닿지 않았다. 한국에서 알고 있던 브로커들은 이미 손을 뗐고 중국 내 브로커들도 종적을 감춰버려 한동안 임씨는 중국에 머물러야 했다.

“중국은 한시도 마음 놓을 곳이 못 돼요. 우리 가족 일행은 중국 신분증이 없고 중국말도 못하니 단속에 걸릴까봐 매일 바늘방석에 앉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어렵사리 찾은 브로커들이 요구한 돈은 태국까지 1인당 한국 돈 4백만원, 몽골까지는 3백50만원. 가족 4명을 탈출시키자면 대략 1천5백만원 정도가 소요됐다. 임씨의 형편으로는 어림도 없는 액수였다.

할 수 없이 임씨는 자신이 탈출할 때 밟았던 길을 따라 가족을 인도하기로 결심했다.

국경통과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은 중국-라오스 국경이었다. 국경을 넘는 과정에 중국 경비대에 걸리면 대부분 북송된다. 라오스나 태국과 달리 중국은 북한과 ‘범죄자 인도조약’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남방 도시 쿤밍(昆明)에 도착한 임씨는 현지 지리에 밝은 브로커들을 찾고 직접 월경코스를 답사하는 등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운 끝에 지난 6월 20일 가슴을 졸이며 중국-라오스국경을 넘는 데 성공했다.

“돌아보니 북한이 제일 가난하구나”

“북한에서 암흑세상만 보아온 언니는 네온사인이 번쩍이며 대낮같이 환한 선양 거리를 보고 현기증을 느꼈어요. 그리고 라오스, 태국을 보고나서 ‘북한이 세상에서 제일 가난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고 말하더군요.”

▲ 화려한 중국 선양의 밤거리

임씨는 메콩강을 건너고, 태국경찰을 피하며 방콕주재 한국대사관에 들어가기까지 가족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가족들에게 자유를 찾는 길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노정인가를 실제 경험하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 가족애도 더욱 돈독해진 것 같다”고 임씨는 덧붙였다.

남자들도 어려워하는 길을 여자 몸으로 해낸 임씨. 서울로 돌아온 그녀는 “가족들에게 자유를 찾아준 것만으로 딸 구실을 다 한 셈”이라며 “이제는 두 발을 뻗고 잘 수 있겠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현재 임씨의 가족과 일행은 태국 방콕주재 한국대사관의 보호를 받으며 대한민국으로 입국하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