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김정은 “북중단결 강화”…미중 갈등 속 넓어진 北공간

시진핑 방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6월 방북을 마치고 돌아가기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들어섰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미중 고위급회담에서 미국과 중국이 현안을 놓고 강하게 충돌한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진핑(習斤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구두친서를 보내 북중 단결과 협력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시 주석에게 보낸 구두친서에서 올해 초 8차 노동당대회 상황을 설명하면서 “적대세력들의 전방위적인 도전과 방해책동에 대처하여 조중(북중) 두 당, 두 나라가 단결과 협력을 강화할 데 대하여 강조”했다고 노동신문은 전했다. 여기서 적대세력은 미국을 주축으로 한 대중국 포위세력, 범서방세력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도 김 위원장의 구두친서에 대해 역시 구두친서를 보냈다. 시 주석은 친서에서 “전통적인 중조(북중) 친선은 두 당, 두 나라, 두 나라 인민의 공동의 귀중한 재부라고 하면서, 새로운 형세하에서 조선(북한) 동지들과 손잡고 노력함으로써 중조관계를 훌륭히 수호하고 … 두 나라 사회주의 위업이 끊임없이 새로운 성과를 거두도록 추동하며 두 나라 인민들에게 보다 훌륭한 생활을 마련해 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또 “국제 및 지역정세는 심각히 변화되고 있다”고 밝혔다고 노동신문은 전했다.

북한과 중국이 친선을 강조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북중 정상 간 이번 친서 교환은 시점이 미묘하다. 앵커리지에서의 미중 고위급회담에서 미중 대표단이 격하게 충돌하면서 미중 갈등이 표면화되는 시점에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도 김 위원장이 시 주석에게 친서를 보낸 이유가 “두 당 사이의 전략적 의사소통을 강화해야 할 시대적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중국과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속에 중국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 북한의 살 길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친서 외교를 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 정세 분석 뒤 나온 북한의 친서 교환

지난 16일 김여정 담화, 18일 최선희 담화, 19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연일 미국에 대한 경고를 쏟아내던 북한은 주말을 지나는 동안 침묵했다.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한국과 일본을 방문해 “북한의 권위주의 정권이 자국민에 대해 광범위한 학대를 자행하고 있다”는 직설적인 말을 쏟아냈지만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미 국무, 국방장관의 한일 방문과 앵커리지에서의 미중 고위급회담 등 변화하는 국제정세를 놓고 분석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북중 정상 간 이번 구두친서 교환은 주말을 보내며 북한이 분석한 현 정세에 대한 대처방안 중 첫 번째 행동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이 격하게 부딪히는 상황에서 북한과 중국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 북한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다, 미중 갈등이 격화된다면 미국과의 관계에 굳이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북한이 내린 현 시점에서의 판단인 것 같다. ‘적대세력에 대처한 북중 단결과 협력’은 북한과 중국이 협력해 미국에 대항하자는 말이나 다름없다.

미중 갈등 속 북중 밀착, 북한의 공간 넓어져

북한의 행동이 옳고 그름을 떠나 북한이 변화하는 정세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줘야 할 것 같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속에서는 북한이 중국에만 붙어있으면 생존하는 데 지장이 없다.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생각하는 중국이 대미 협상의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생존을 지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국제정세 속에 북한이 도발할 수 있는 공간도 넓어졌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 등의 도발을 하더라도 중국은 형식적인 비난을 할지언정 실질적인 제재는 강화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1,400km 가까운 북중 국경에서 중국이 북한을 봐주기로 하면 얼마든지 봐줄 수 있다. 북한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북중 단결과 협력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냉정하게 움직이는 북한에 대해 우리 정부도 냉정한 시각에서 전략을 가다듬고 있는 것일까.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물론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이지만, 북한은 지금 남한을 염두에도 두고 있지 않다. 북한의 행동이 머지않아 가시화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평화를 지키면서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나아가 북한과 중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인지 전략적인 대응을 사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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